6월 10일 늦은 오후 시간,
나는 시청앞의 서울광장에 있었다.
6•10 항쟁의 뜻을 기념하고
민주주의를 짓밟고 있는
이명박 정권의 강권 정치에 항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난 이런 정치적인 자리에는 거의 혼자 나간다.
대체로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연락해도 어지간히 친하지 않고는 연락도 받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혼자 나갔을 때의 어색함이 싫어
사람들을 모아서 나가기도 하는 듯하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는 아는 사람들끼리 끼리끼리 어울릴 때,
집단에 휩쓸리는 그 느낌이 싫어
이런 집회엔 혼자나가서 뒤에 서 있다가 온다.
난 머릿수를 채워 그들의 뜻에 동의해준다.
난 누구의 정치적 견해를 바꿔놓을 생각도 없지만
그러나 나의 정치적 견해를 양보할 생각도 전혀 없다.
나는 충돌이 뻔한 그런 얘기는 가급적 꺼내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 그런 불편한 얘기를 꺼내
나에게 정반대의 정치적 견해를 강요한다 싶을 때는 나는 양보가 없다.
언젠가의 일이다.
존경하는 한 교회의 목사님과 장로분들이
한자리에서 식사하는 황송한 자리에 끼게 되었다.
어떻게 얘기가 흘러가다 그만 목사님이
“아무리 민주고 자유고 하지만 공산당 세상이 되었으면
예수믿을 자유가 어디에 있을 수 있겠어요”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러한 얘기를 종교를 빙자한 교묘한 정치적 얘기로 받아들인다.
그날 난 목사님께 빈정거렸다.
“그래 예수 믿을 수 있는 이 대한민국이 그렇게 행복하세요?
박정희 시대 때 얘기 두 가지만 해드릴께요.
유학하고 갓 귀국하여 세상 물정 모르는 한 정치학 교수가
강의 시간에 김일성 주석이라고
김일성의 이름 뒤에 주석이란 존칭을 썼어요.
그 교수는 잡혀가서 2년을 살아야 했어요.
그때 주에 1년, 석에 1년해서 2년 살았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왔어요.
북한도 대통령제였다면 아마 3년을 살아야 했을 거예요.
그런 대한민국이 예수를 믿을 수 있다는 그 이유 하나로 그렇게 행복하세요?
한 만화가가 남산의 대공분실에 끌려가
몇 시간 동안 두려움에 떨며 기다려야 했어요.
그런데 몇 시간만에 나타난 웬 녀석이 당신 만화 말야, 아주 재미있더군.
그런데 인민군을 너무 미남으로 그렸어.
앞으로 인민군 그릴 때 좀 신경써, 이렇게 말하더라는 군요.
이런 코미디 같은 얘기가 정말 있었다는 이 믿기지 않는 대한민국이
예수를 믿을 수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렇게 행복하세요?”
갑자기 그 자리가 썰렁해지고 말았다.
식사 자리의 모든 사람들이 아무 말없이
고개를 아예 밥그릇 속으로 들이밀고
묵묵히 밥만 먹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 목사님을 존경한다.
목사님은 허허 웃으시며
“역시 정치적 얘기를 식사 자리에서 꺼내는게 아닌데 말야” 하고는
그 분위기를 무마해 주셨다.
그 정도면 서로를 확인하는 선에서 서로 각자 자기 길을 갈 수 있다.
또 나는 그 정도면 정치적 견해가 달라도
얼마든지 상대를 존경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그 뒤로도 그 목사님에 대한 나의 존경은 여전하다.
물론 그 날의 내 견해 또한 그 뒤로도 한치의 물러섬이 없다.
난 내 견해가 소중한 만큼 목사님의 길도 존중해주고 싶다.
우리는 다만 개개인이 스스로의 길을 선택할 뿐,
누구도 자신의 길을, 비록 그것이 옳다고 해도,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다만 내 견해를 밝히고 상대의 견해 또한 들어볼 수 있을 뿐.
그것이 대체로 나의 입장이다.
나에게 희망이란 세상이 바뀔 것이란 기대가 아니다.
나에게 희망이란 뜻하지 않게 생각이 같은 사람을 만나는 순간이다.
그것도 조용히 생활 속에 자신을 묻고 있다가
기회가 될 때마다 자신의 머릿수 하나를 앞에선 깃발 아래 내주는 사람이다.
나는 가끔 내 생각 앞에 스스로가 외롭다.
생활 속에서 생각을 나눌 수 없는 상황은 더더욱 그 외로움을 부채질한다.
서울광장의 잔디밭에 앉아 있는데 아는 청년이 눈앞을 지나간다.
아는 척은 하지 않고 그냥 몰래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청년은 잔디 광장을 가로질러 가더니
이명박 정권 퇴진 100만인 서명 운동에 서명을 하고 간다.
청년과 나는 얼굴을 아는 사이이다.
청년은 내가 아는 교회를 다니고 있다.
몇 번 청년이 그 교회에서 하는 장애인 봉사를 할 때 얼굴을 봤었다.
나에게 있어 교회는 예수를 믿을 수 있는 자유가 있어 감사하고 행복한 사람들과
예수를 믿기에 그 행복으로 민주와 자유가 덮히는 것을 못견뎌 하는 사람들이
나란히 함께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난 그 둘이 나란히 함께 앉을 수 있다고 본다.
나는 물론 후자의 길에 선 사람들과 생각을 함께 하고 그들의 길을 지지한다.
청년이 지나갈 때 나는 알게 되었다.
그가 예수를 믿기에
그 행복으로 자유과 민주가 덮히는 것을 못견뎌 한 청년이었다는 것을.
그 날 광장에 모였던 수많은 사람들보다 내겐 그 청년 하나가
그날 보았던 가장 큰 희망이었다.
언젠가 청년의 옆을 지나는 순간이 오면
나는 슬쩍 말할 생각이다.
“6월 10일날 시청앞에서 나 너 봤어!”
물론 나는 ‘그날 네가 무슨 희망처럼 내 앞을 지나가더라’라는 말은
속으로 꿀꺽 삼킬 거다.
***청년의 이름을 밝힌다.
청년의 이름은 최한솔이다.
지금은 저 멀고도 높은 하늘 나라의 주민이 되었다.
그의 사진을 볼 때마다 그가 보고 싶다.
10 thoughts on “아는 청년”
우리도 슬쩍 지나쳤음,
요런 멋진 글 적어주셨을텐데요 ㅎㅎㅎ
두분 셀카 기념샷 때 딱 걸려서 ㅋ 잼났다는요!
(닭살부부는 시청광장도 멀리할 수 없었다)
사실은 닭살짓을 잘 안하는데…
그때 딱 걸려가지고 그만.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대도 그냥 즐겁게 웃으면서 하고 싶어요.
웃으면서 좋게 말할 때 알아들으라는 뜻으로 말예요.
물론 요즘 같아선 웃음도 잘 나오질 않지만요.
동원님의 희망이 어쩜 제 희망과 그렇게 같은지요…
이곳에서는 ‘생각이 같은 사람’을 만나기가 참 쉽지 않네요.
제가 만난 그 희망을 나눠드릴께요.
청년이 아주 잘 생겼답니다. ^^
강권은 술 좋아하는 이에게 잔 돌릴 때나 써먹으면 딱인데 말이죠.
개인적으로 명바귀를 보면 아주 이기적인 주변의 기독교인을 보는 것 같습니다.
주일에 기도하는 것으로 엿새동안 저지른 죄를 사하는 걸로 믿는지
가가 맏는 예수는 도대체 어떤 양반인지 참말로 궁금해 집니다.
이제 고만 종칠 때가 됐지 말입니다.
그게 참 이상한게 제 주변에는 예수를 잘 입에 올리지도 않는데 봉사하고 헌신하고 고민하는 생활 때문에 그 뒤로 예수가 보이는 기독교인들이 꽤 있는데 명바구는 서울을 하늘에 봉헌을 했다는데도 도통 그 뒤로 예수가 보이질 않고 정말 저 사람이 하느님 믿는 사람이 맞는지 자꾸 의심만 들어요. 아마 명바구 때문에 잘나가던 교회 그만둔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누군지 알겠네요. ^^
그에게서 보신 ‘희망’이 제게도 흘러 들어오네요. ^^
저 청년이 광장까지 나가게 되는 이 현실 때문에,
그리고 그 배경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특정 종교인들 때문에,
마음이 먹먹해질 뿐입니다…ㅠ
역시 아시는 분은 아시는 군요.
350으로 해도 구별이 가는 것 같아 250으로 크기를 줄였는데…
지난 번 텔레비젼에 나왔다가 분란을 겪은 후유증 때문에 가급적 작게 했어요.
깜짝 놀라고 가슴이 다 두근두근하더라구요.
난 말씀이 희망이 되는 세상이 아니라 존재가 희망이 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듯도 싶어요. 그 존재들이 말씀처럼 내 곁에 있는 듯도 하구요.
어제는 좀 힘들었는데 얼굴보면서 힘든 것 넘겼답니다. 고마워요.
사진을 크게 보일수가 없는 이세상이 슬프고 암울하여라.
잘읽고 음미하고 아픈 마음이나
동원님의 희망이 나의 희망임을..
어이하여..
우리사회가 이리되었는지
가슴이 메어옵니다
저도 이런 세상이 다시 오리라곤 생각도 못했었습니다.
광장 주변에 들어찬 경찰 버스들 보니 기기막히더군요.
그러나 뜻밖의 얼굴을 보고 기분은 아주 좋았습니다.
그는 모를 거예요.
자신이 누군가의 희망으로 광장을 가로질러 갔다는 것을.
전 구호보다 그냥 한 100만 정도가 모여서 아무 말없이
한 두 시간 정도 침묵 시위를 하는 꿈을 꿔보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