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표, 최연소 봉사자되다

홍진표는 내가 알고 지내는 홍순일, 송선자 부부의 아들이다.
현재 초등학교 2학년.
홍송부부는 다니는 교회의 장애인 봉사를 갈 때마다
아들과 딸을 항상 함께 데리고 다닌다.
이번에는 딸은 사정이 있어 빠지고 아들인 진표만 데리고 왔다.
6월 13일과 14일 이틀 동안
여주로 다녀온 봉사 활동의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진표의 사진이 의외로 많다.
사진에는 진표가 남긴 재미나고 또 기특한 일들의 추억이 함께 서려 있다.
사진을 보며 자꾸만 웃게 된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6월 13일 서울 상일동의 한영고에서

예배가 끝나고 진표가 휠체어를 밀고 나온다.
내가 한마디 했다.
–진표야, 너는 오늘의 최연소 봉사자다!
녀석이 킥킥 웃고, 휠체어에 탄 형도 하하 웃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6월 13일 서울 상일동의 한영고에서

타고 갈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진표 놀려먹기를 했다.
–진표, 너. 휠체어 면허증 있어?
이거 면허증 있어야 몰 수 있는 건데.
혹시 좀전에 너 무면허 운전한 거 아냐?
난감한 얼굴로 쳐다보는 진표를 옆의 형이 구해주었다.
–괜찮아, 진표야. 형도 어릴 때 그냥 시작했어.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6월 13일 서울 상일동의 한영고에서

용래형과 키를 나란히 맞추어 보고 싶었던 것일까.
한번 그 앞에서 펄쩍 뛰어본다.
아니면 용래형이 들고 있는
커다란 자동차 사진을 좀 가까이서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6월 13일 서울 상일동의 한영고에서

모자에 쓴 햇볕 가리개를 벗더니 허리에 걸친다.
내가 또 한마디 했다.
–야, 그거 빨리 머리에 써.
그걸 거기 걸치니까
머리가 배 밑으로 내려오려고 하잖아.
아이구, 아저씨는 정말 못말린다는 표정으로 나온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6월 13일 여주 세종천문대에서

여주에 도착해서 사진 한장 찍자고 했더니
냉큼 분수대 위로 올라가 팔을 벌린다.
곧바로 멀리 보이는 산과 키를 맞출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산만큼 높이 자라고, 또 산만큼 넓은 품을 가지거라.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6월 13일 여주 세종천문대에서

형과 누나들이 사진찍는데 슬쩍 끼어들었다.
녀석이 기호가 아주 이상해서
예쁜 누나들의 꼬임에는 끄떡도 안하고
거의 나만 열렬하게 추종하고 다닌다.
취향도 참 독특하다.

Photo by Hong Jin Pyo
2009년 6월 13일 여주 세종천문대에서

래프팅하고 돌아오는 길에
카메라 주고 사진찍어 보라고 했다.
찰칵, 찰칵, 찰칵!
–야, 이 녀석아. 그만 눌러.
필름 다 떨어져!
그렇지만 확인해보니 의외로 사진이 잘 나왔다.
어, 이거 감각 있는 것 같은데.

Photo by Hong Jin Pyo
2009년 6월 13일 여주 세종천문대에서

한 장만 더 찍으면 안되겠냐고 해서
그럼 딱 한 장만 더 찍게 해줄테니
이번에는 네가 원하는 걸 아무 거나 찍어보라고 했다.
찍고 나서 뭘 찍었냐고 물어보았더니
나무가 너무 멋있어서 나무를 찍었단다.
확인해 보았다.
오호, 요거 아마추어 실력이 아닌데.
뭔가 느낌이 아주 좋은 한장의 사진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6월 13일 여주 세종천문대에서

어린 아이가 있으면 분위기가 참 좋다.
때문에 진표는 그냥 따라와서 곁에 함께 있기만 해도
그것만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즐거움이 되곤 한다.
아이들은 존재만으로도 봉사가 된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6월 14일 여주 세종천문대에서

어제에 이어 오늘도 휠체어 밀고 나온다.
당분간 최연소 봉사자의 타이틀은 깨기 힘들 것 같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6월 14일 여주 세종천문대에서

형들 이빨닦을 때도 기웃거린다.
저쪽으로 진표 아빠 홍순일씨도 보인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6월 14일 여주 세종천문대에서

중간에 삼각대 맡기고 내 조수로 삼았다.
그 삼각대 짊어지고 끙끙 거리며 다니더니
열심히 사진찍고 있는데
녀석이 삼각대를 카메라 앞으로 쑥 들이민다.
–야, 이 놈의 조수! 지금 뭘하는 거야!
삼각대 가지고 킥킥거리며 달아난다.
이 사진에는 진표의 장난질이 찍혀있다.
그 장난질에 태연이 형이 그만 몽땅 가려지는 수난을 겪었다.

Photo by Hong Jin Pyo
2009년 6월 14일 여주 세종천문대에서

다시 또 카메라를 탐내길래
이번에도 잠시 맡겨보았다.
어, 요 녀석 보게.
반셔터의 기능을 본능적으로 찾아내내.
셔터를 부드럽게 눌러야 한다고 했더니
살짝 반만 누르면 초점이 맞춰지는 기능을
곧바로 찾아내고 있었다.
내 얼굴에 정확히 초점 맞히고
멋지게 한방 박아주었다.
야, 이거, 나도 아직은 괜찮은 걸.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6월 14일 여주 세종천문대에서

불세출의 기타리스트 탄생이오.
삼각대로 기타를 연주하는 놀라운 재능의 소유자요.
저 손가락 좀 보시오.
현란하기 이를데 없지 않소.
음, 음에 취한 저 표정은 또 어떻소.
이 날 찍은 사진 중에 가장 압권이었다.

Photo by Hong Jin Pyo
2009년 6월 14일 여주 세종천문대에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삼각대에 올려놓고 사진찍다 삼각대가 넘어간 것.
하지만 잘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일은 없었다.
이제 마지막이라면서 카메라를 넘겨 주었더니
버스 사진을 한 장 떡하니 찍어놓는다.
그러고는 하는 말.
–용래형이 버스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한 장 찍었어요.
용래는 사랑부에 나오는 장애아 가운데 한 명이다.
항상 트럭이나 버스와 같은 큰 자동차의 사진을 갖고 다닌다.
놀랍다.
내가 그렇게 사진 찍으면서도
트럭이나 버스를 볼 때 용래 생각은 한번도 못했었는데…
요, 작은 녀석이 참 기특하게도 버스를 보면서 용래형을 생각하고 있다.
다 큰 내가 잠깐 녀석의 그 말에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6월 14일 여주 세종천문대에서

야, 이리와.
얼큰 사진 하나 찍자.
카메라 앞으로 얼굴 들이밀게 하고
장난기가 가득 묻어나는 개구쟁이 사진 하나 찍었다.
에구, 귀여운 녀석 같으니라구.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6월 14일 여주 세종천문대에서

차에 올라가선 V자 양손에 들고 포즈취한다.
유리창 속으로 들어간 나무 그림자가
진표의 머리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진표가 푸르게 푸르게 자라고 있었다.

14 thoughts on “홍진표, 최연소 봉사자되다

  1. 진표의 삘~받은 기타치는 폼은
    수십년전 고교시절의 애 아빠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부전자전이라 할까?

  2. 이쁜눈으로 보시니까 모든게 이뻐보이나봐요^^
    저희는 진표의끊임없는 수다에 금새녹초가되곤하는데…,그래서 각별히 주의를주는데도 털보아저씨 앞에서는 ㅎ ㅎ ㅎ
    그나저나 현승이 너무귀여워요^^ 언제 함께모여서 누구에대한 사랑이더큰지 한번보고싶네요 ㅋㅋ
    그럼 그걸빌미로 벙개한번…,^^

    1. 내가 Smoke on the Water도 들려줬다우. 그게 삼각대로 기타 치게 된 원인이 된 건지도… 그나저나 진표 아빠 혹시 집에서 진표랑 저러고 노는 거 아녜요. 우린 그거 상상하면서 많이 웃었어요.
      일단 강동과 송파는 뭐 마음만 먹으면 벙개할 수 있지만… 필님과 실님이 워낙 초절정 인기시라 틈새를 파고 들기가 쉽지가 않아요. 기회봐서 딱 걸리는 날을 노려봅시다.

    2. 아~은근히 저희 핑계를 대시면서 두 광팬을 한 자리에 모으기를 주저하시는군요.ㅎㅎㅎ

      예전에 진표가 아장아장 할 때 유아실에서 진표 들어오면 순간 엄마들이 살짝 긴장하곤 했었어요. 기고, 어설피 걷곤하던 아이들이 괜히 진표 앞에서 알짱거리다가 한 대 씩 얻어맞기 일쑤였거든요. 그러고나면 신사 중의 신사이신 진표아빠님께서는 어쩔 줄 몰라하시던 모습 보면서 저희 부부가 눈 마주치고 웃곤 했었는데요. 그 진표가 자라서 최연소 자봉 자리를 꿰찼네요. 유아실 접수하던 진표가 사랑부실 접수했으니… 담은 본당일까요?ㅋ

    3. 이거 쓴 다음에
      진표를 처음 사랑부 봉사에서 만났던 때의 글이 있어 읽어봤더니
      처음부터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된 건 아니었더군요.
      아이를 데리고 꾸준히 봉사를 나온 홍송부부가
      참 괜찮았구나 하는 생각이 더더욱 들었어요.

      언제 자전거 싣고 올팍으로 한번 가요.
      거기 자전거 타기도 좋구… 놀기도 좋으니까요.
      진표가 요즘은 맞고 다닌데요. ㅋㅋ

  3. 얼큰 사진은 못 말리는 짱구를 닮았네요.^^
    산새마을에서 진표가 에어버스 380인가 하는
    최신 항공기 기종을 탐독한다는 말 듣고 뒤집어졌는데,
    이 녀석 크면 뭔가 한 건 할 거 같아요.
    잘 사귀어 두시면 득 보실듯.^^

    1. 이번에는 남녀 화장실이 언제부터 구별이 지어졌는지를 얘기하더군요. 년도까지 대가면서 처음에는 넥타이와 치마로 구분을 했다고 설명을 하더라구요. 그 전에는 화장실에 남녀 구분이 없었대요.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는지가 다 궁금할 지경이었어요.
      게다가 자기가 크면 나중에 저한테 카메라를 한대 사준다고 하질 않나. 덕볼 생각이 없었는데 이렇게 카메라 수표까지 끊어주는 경우는 처음 봤습니다. 그래도 냉큼 받을 수는 없어서 카메라는 아저씨가 돈벌어서 사면 되니까 너는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라기만 하면 된다고 말은 해주었습니다. 물론 기분은 아주 좋았습니다.

  4. 인물사진이 어렵던데 진표는 재능이 뛰어나네요. 빨간티 입은 모델은 연식은 구식인데 신식으로 찍어놨네요. 지금 모습 그대로만 무럭무럭 자라서 최연소 봉사자가 최연장 봉사자가 되길 기원합니다. 그럴려면 구식들이 부지런히 튜닝해야겠습니다.

    1. 그렇잖아도 다들 점찍어놓은 미래의 봉사자라고 말들 했지요. 여기 봉사하는 어른들이 다들 10년은 기본으로 봉사한 분들이 많아서 거의 기본 튜닝은 다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5. 제가 보기엔 말이죠..
    진표가 동원님의 기쁨조 봉사자로 따라나선거 아닐까 싶어요.
    진표땜에 한결 즐거운 시간이 되신듯 하니 말예요.
    그리고 진표가 동원님을 잘 담아줬네요.
    진표~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웃음이 날~까.. 이런 표정이세요.
    팬관리 잘 하셔야겠습니다. 현승이와 진표.

    1. 이게 난감합니다.
      갑자기 둘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해야할 분위기가 되버렸어요. ㅋㅋ
      근데 사실 웃기는 건 현승이가 더 웃겨요.
      제가 서울 도착해서 얼굴 봤거든요.
      보자마자 “털보아저씨, 우리 한강에 자전거타러 언제가?” 요렇게 물어보더라구요. 어, 요거 아주 말까네. 어찌나 웃기던지요. 이번 주에 같이 한강갈 날이 기대가 많이 됩니다.

  6. 저희 집에도 털보 아저씨 광팬 하나 있잖아요.
    진짜 희한한게 무슨 예지력이 있나봐요.
    조금 전에 아침식사 하면서 그 일곱 살 광팬이 그러는 거예요.

    ‘엄마! 진표형아도 털보 아저씨 알어?’
    ‘그러면 진표형아가 털보 아저씨랑 더 친해 아니면 내가 더 친해?’
    ‘진표형아는 털보 아저씨를 뭐라고 불러? 나만 털보 아저씨라고 부르고 싶어서’
    ‘그러면 진표형아 엄마 아빠가 털보 아저씨랑 더 친해, 엄마 아빠가 털보 아저씨랑 더 친해?’
    ‘진표형아가 털보 아저씨 더 많이 만나, 내가 더 많이 만나?’

    저는 사실 이 포스팅 미리 봤거든요.
    깜짝 놀랐어요. 마치 이걸 본 것처럼 그래요.^^
    이 사진 보여주면 안되겠어요. 질투의 화신이 되겠어요.ㅋ

    1. 원래는 현승이랑 자전거타던 날 바퀴와 바뀌가 하도 웃긴데다 그날 제가 현승이의 지하철에 승차해서 처음엔 암사역에서 맴도는가 싶었는데 나중에는 북해와 동해를 넘어 금성, 화성으로 우주까지 여행을 하고 왔잖아요. 그래서 그 얘기를 올리려고 하다가 그만 때를 놓쳤어요.
      그래도 조만간 올리려구요.
      여기서는 다 똑같이 사랑하구요, 개인적으로 만날 때는 항상 그 자리의 사람을 더 사랑하지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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