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소금구이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6월 30일 홍대입구에서

신경숙은 7시에 기차가 떠난다고 했지만
그 껍데기집은 7시에 문을 연다네.
7시까지는 굳건하게 문을 잠그고
절대로 열어주지 않는다네.
자물쇠라기보다는 쇠때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한
때묻은 자물쇠가 문을 지키고 있다네.
7시가 되기도 전에 도착했다면
다들 문을 연 옆집들을 마다하고
그 앞에서 서성거려야 하네.
그러다 7시가 되면
멀리 어디선가 신경숙의 기차가 떠나고
그 껍데기집은 문을 연다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6월 30일 홍대입구에서

아니 문을 연다는 것도 좀 그렇다네.
내가 그 앞을 서성거리며 7시가 되길 기다리다 지켜봤더니
주인인듯 보이는 부부가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아예 문을 뜯어내고 있었네.
뜯어낸 문은 한쪽 옆으로 가지런히 몰아 놓았네.
내가 껍데기집이라고 했지만
그 집의 공식 명칭은 마포소금구이라네.
가끔 마포란 이름을 달고 강남에서 버젓이 장사하는 곳도 있지만
그곳은 이름 그대로 마포에 있다네.
좀더 구체적으로 집어 주자면 서교동에 있다네.
서교동이라고 해도 잘 와닿지 않는 사람들에게 좀더 꼭 집어주자면
홍대입구의 산울림소극장을 찾아가면 되네.
그 소극장의 맞은 편으로 골목이 있다네.
골목은 마치 동네를 깊숙이 구석구석 찔러보겠다는 듯이
삼지창처럼 갈라져 세 갈래로 마을로 들어간다네.
그 집으로 가려면 맨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야 한다네.
골목으로 들어가 간판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다 보면
아마도 가장 낡았음직한 간판 하나를 만나게 되고,
그 간판에 마포소금구이라고 적혀 있다네.
아, 다시 또 친절하게 일러주자면
지금은 없어진 기찻길이란 곳을 지나서
오른쪽 편으로 있다네.
차를 가지고 갔다면 세울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네.
물론 신기하기는 하네.
그 좁은 골목에서 어떻게 그렇게 용하게도 빈자리를 찾아내
차를 세울만한 곳엔 모두 차들을 세워두고 있는지 말이네.
그렇지만 서너 바퀴 돌다보면 기적처럼 빈자리가 나타나기도 한다네.
우리가 가던 날도 기적이 나타났다네.
주인 아저씨가 가리키는 손끝에서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방금 떠나는 트럭 한 대의 뒤로 자리가 비고 있었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6월 30일 홍대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바닥에 자갈이 한무더기 깔려 있다네.
난 술먹다가 심심하면 신발벗고 지압하라고 깔아놓은 것이라고 우겼고,
그 말에 주인 아저씨는 그냥 빙그레 웃기만 했네.
천정은 가운데를 비워 하늘이 훤하게 올려다 보인다네.
난 또 원래는 여기가 천문대 자리였는데
그걸 인수하여 껍데기집을 하게 된 거라고 우겼지만
이번에는 그 말에 주인 아주머니가 쿡쿡 웃었네.
하늘로 열린 천정으로는 별은 보이질 않고
바로 그 동네의 태영 데시앙 아파트가 보인다네.
날이 어두워지자 그 아파트의 창들에 별처럼 불이 들어왔다네.
아저씨에게 소주를 달라고 하면
아저씨는 처음처럼이냐 참이슬이냐는 말로 대꾸를 삼아
우리들을 두 소주 사이의 갈림길에 세우신다네.
하지만 막걸리도 있냐고 물으면
막걸리는 없지만 바깥에서 받아다 드린다고 설명해 주신다네.
우리는 소주를 마셨고, 그것도 처음처럼을 마셨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6월 30일 홍대입구에서

벽에는 메뉴가 쓰여져 있네.
껍데기, 소금구이, 소갈비살, 소막창이라고 되어 있다네.
나는 말했다네.
소갈비살, 소막창… 다들 작네… 대는 없나. 사람이 넷인데…
같이간 사람들이 친절하게 작은게 아니라
쇠고기라고 설명해 주었다네.
그녀까지 거들었네.
다음부터는 이런 짓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6월 30일 홍대입구에서

우리는 껍데기를 시켰네.
좀 오래 구워야 하는게 흠이었네.
하지만 한입 입에 문 뒤,
내가 뱉아낸 말은 “오, 맛있네” 였다네.
나는 술을 먹으면서도 가운데를 비운 천정이 영 걱정이 되었네.
일기예보 탓은 아니었다네.
비록 흐리긴 했지만 비올 기색은 없었기 때문이네.
그래도 난 그 걱정을 꾹 눌러두지 못하고 결국은 묻고 말았네.
비오면 어떻게 하시냐고.
그냥 비가 안으로 다 들어오게 내버려 둔다고 하시네.
아하, 그 순간 나는 알게 되었네.
바닥에 깔린 자갈의 정체를.
그 자갈 밑에 물빠지는 통로가 있다네.
안으로 들이친 비들은 아마도 잠깐이지만
자갈을 굴리며 길을 내려가던 냇물의 기억에 흠뻑젖으며
그 짧은 길을 흘러갈 것이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6월 30일 홍대입구에서

우리는 소주 네 병을 마셨네.
껍데기와 소막창으로 안주를 했지만
다음에 가면 소금구이도 먹어볼 생각이네.
어쨌거니 소금구이집이니 말이네.
우리에겐 껍데기집이란 이름으로 더 낯익은
마포소금구이집이라네.

18 thoughts on “마포소금구이

  1. 마포구청장 예비후보 이매숙입니다. 좋은 블로그내용 잘보고갑니다.
    옛날 정취가 물씬 풍기는 껍데기집이네요.
    앞으로도 구역내에 좋은정보 부탁드릴꼐요^^

  2. 문을 뜯어내는 집에서 태어나 스물두살때까지 그 집에서 살았었지요.
    어린 시절 신작로 옆에 사는 집들은 아침이면 누구네나 문을 뜯어내 차곡차곡 쌓아뒀다가
    밤이 되면 뜯어낸 반대의 순서대로 다시 문을 닫았지요.
    우리들은 그걸 빈지 연다, 빈지 닫는다 라고 했어요.
    우리집은 함석 빈지였어요.
    글구, 전 껍데기 한번도 못 먹어 봤어요. 그냥 참고하시라구요.^^*

    1. 저도 문을 뜯어내는 집을 보긴 보았는데
      그래도 대부분 뜯어내는 곳이 정해져 있거든요.
      뜯어내는 곳으로 밀고 와서 항상 같은 자리에서 뜯어내죠.
      근데 이 집은 모든 문을 있는 그 자리에서 뜯어내는 것이었어요.
      그러니 눈길이 갈 수밖에요.
      못먹어본 껍데기는 그냥 참고만 하겠습니다. ㅋㅋ

  3. 껍데기는 예전에 삼각지 근처에서 먹었던 것이 마지막 기억 같습니다.
    차돌박이를 먹다가 비싸고 맛도 삐리리 해서 옮긴 곳이 껍데기집이었는데
    늦은 시간인데도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삼겹살에 붙은 비계도 못먹던 제가 껍데기를 좋아할 줄 몰랐더랬습니다.
    입맛은 주머니 사정에 맞춰 변하더군요.ㅜㅜ

    1. 다른 메뉴의 반값인데다가
      가위로 잘게 썰어서 먹으니까
      아주 작은 것 세 점이면 소주 한잔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주머니 사정을 아주 세심하게 배려하는 메뉴였습니다. ㅋ

  4. 전 예전에 껍데기 한 번 시켜서 먹었는데,
    거의 3일간 설사에 구토를 해데서 그 이후론 못 먹겠더라고요.
    기름이 갑자기 많이 들어가서인지, 상했던 것인지..
    먹을땐 참 맛있게 먹었는데..

    1. 저희도 거의 안먹는데… 그동안 별로 좋았던 기억이 없었거든요. 여기는 맛은 있더라구요. 저도 다음 날 속은 별로 안좋았어요. 근데 이날 여기서만 술을 마신게 아닌데다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무엇이 원인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두번째 간 곳은 일식 주점이었는데 그곳도 아주 좋았어요. 거긴 뭐 아주 깔끔한 곳이었죠.
      그때 종로에서 함께 술마시던 시간이 그립네요.

    2. 동원님을 뵌지가 벌써 1년전이네요.
      동원님은 처음뵈었는데도, 편하게 느껴졌던 블로거중
      한 분이었는데.. 사실 제가 은근 낯을 가리는 성격인지라..
      저도 요즘 한국가서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하네요.
      이것저것 맛 있것도 좀 사먹고.
      요즘은 매일, 뭘 먹을까하는 고민을 하는데… 혼자 있으니
      해먹는것도 귀찮고, 사먹기도 뭐하고.. 참.

      따님은 공부하느라 바쁘겠지만, 그래도 가족이 많이 보고 싶겠죠? 저희 아빠는 절대 감정 표현을 안하지만, 동원님은 애써 채팅으로도 대화하시고 하니, 따님이 덜 외롭지 않을까합니다. 저야 워낙 오래 혼자 살아서 익숙하지만.

      한국에 안간지도 벌써 1년인지라,
      엄마가 아들이 보고 싶었는지 갑자기 비행기표를 사더니
      내일 오신데요. 다행히 경기가 안좋아인지, 비행기 자리도 있고, 표도 싸다네요. 엄마가 오는 것도 좋지만, 제가 한국으로 가는 것이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처갓집 눈치보느라
      들어가지도 못하네요.. 에효.

    3. 엇, 저는 여기서 술먹던 날, 사실은 그녀와 함께 장모님을 잠깐 뵈었죠. 여전히 반겨주셨어요. 얘기도 한참 하시고. 딸 데려다 고생은 제일 많이 시킨 사위인데도 항상 반겨주세요. 어느 처갓집이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어머님 만나시면 맛난 것 많이 얻어 먹으세요. 어머님이 해주시는 밥은 무엇인가 특별한 것 같아요. 힘이 되고 또 용기도 나는 밥이랄까.
      딸은 워낙 잘 살아서… 2학기 때는 학비를 20% 감면받는다고 하네요. 두 달치 생활비는 벌은 듯. 점점 더 기특하게 느껴져요. 이구, 못말리는 딸자랑입니다.
      조급해 하지 말아요. 서른 다섯에 유학떠난 사람도 있었는데요 뭘.

  5. 어려울 때 돕고 살려는 마음으로 ‘숲’을 건너 왔다네.
    아침으로 먹은 것이 빵 한 조각과 커피 한 잔인데 갑자기 순간적으로 허기가 몰려온다네. 껍데기는 자신없고 소금구이는 증말 땡긴다네.ㅋㅋ

    1. 숲의 광고 효과가 이렇게 클줄은 몰랐네.
      우리도 눈은 버티고 있었으나
      혓바닥이 한번 넘어간 뒤로는 더이상 저항할 수가 없었네.
      아마도 같이 투항하게 될 것이네.
      사실은 옆집에 예쁜 처자가 눈에 띄어
      그 집을 힐긋 거렸는데
      그녀 얘기로는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손님이라고 했다네.
      두루두루 즐거운 곳이 홍대 입구라네.
      언제 한번 다같이 가보세. ㅋㅋ

    1. 홍대 입구는 토요일날 가면 Free Market이란게 열리니까 더 볼게 있을 것 같구요, 공원에서 공연하는 날도 있는데 날짜를 잘 모르겠어요. Free Market이 공짜로 주지는 않고, 자유를 팔지도 않더라구요. ㅋㅋ
      청계산은 저희가 두 분께 빚지고 홍대 입구는 저희가 안내해 드리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6. 너무 친절하신 분들과 함게 하셨군요.ㅋㅋ
    껍데기 껍데기 하니까 자꾸만 ‘껍데기는 가라’가 생각이 나고
    그러니까 혼자만 세상 좋아졌다고 떠드는
    또 다른 어떤 껍데기가 생각나고 그렇습니다.
    아.. 껍데기 꼭꼭 씹어가며 막걸리 한잔 했으면 딱 좋겠어요..ㅎㅎ

    1. 이 껍데기는 아주 맛이 있는데
      그 껍데기는 생각만 해도 재수가 없습니다. ㅋㅋ

      언제 인천으로 놀러갈께요.
      예쁜 따님들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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