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꽃과 그녀

7월 5일 일요일 오후에
잠시 팔당의 한강변에 나갔다 왔다.
그녀와 함께 나가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었다.
보통은 그냥 풍경이나 꽃들만 찍다가 들어오는데
이번에는 자꾸 그녀가 내 시선을 가져갔다.
그녀를 찍기 시작하자
사진이 사진이 아니라 놀이가 되기 시작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7월 5일 경기도 팔당의 한강변에서

먼저 어느 집 정원에 들어가 이것저것 찍다가
한강의 풍경을 뒤로 두고 그녀의 사진 하나 찍었다.
풍경이 뒤로 놓인 사진은 사실은 별로이다.
풍경을 짊어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멋진 풍경 앞에선 꼭 풍경을 뒤로 놓고 사진을 찍으려 든다.
짊어지고 있더라도 그 앞에 있고 싶게 만드는 것이 멋진 풍경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7월 5일 경기도 팔당의 한강변에서


그녀가 뒤쪽으로 짊어지고 있었던
팔당의 멋진 한강 풍경이다.
하지만 무거울 까봐 그녀의 어깨에서 벗겨
여기 바로 아래로 곧바로 내려놓는다.
이 친절함이라니… ㅋㅋ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7월 5일 경기도 팔당의 한강변에서


그녀가 사진을 찍는다.
무엇을 찍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나는 그녀를 찍는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7월 5일 경기도 팔당의 한강변에서


그녀의 시선은 긴장했다 풀렸다 한다.
대개 사진을 찍을 때는 긴장한다.
내게 시선을 줄 때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웃음을 실어
그 긴장을 풀고 건네 준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7월 5일 경기도 팔당의 한강변에서

그녀의 앞으로 가보았더니
분홍빛으로 치장한 접시꽃이 서 있었다.
한송이는 피어 있었고 한송이는 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시선을 주었을 때
마치 수로라도 열린 듯이 그 시선을 타고
접시꽃이 그녀의 눈 속으로 흘러들었을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7월 5일 경기도 하남의 은고개 계곡에서

그녀에겐 사진보다 더 심하고 꽃보다도 더 심한 유혹이 있다.
바로 씀바귀의 유혹이다.
씀바귀는 사실은 그녀가 손을 뻗기도 전에
이미 그녀의 눈에 들었을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7월 5일 경기도 하남의 은고개 계곡에서

그녀가 말했다.
나는 이런 사진이 좋더라.
몸매를 가려주잖아.
코스모스는 대단하다.
그 갸날픈 몸매로 그녀도 가려준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7월 5일 경기도 하남의 은고개 계곡에서


그녀는 찍는다, 코스모스를.
나는 찍는다, 그녀를.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7월 5일 경기도 하남의 은고개 계곡에서


그녀의 앞에서 코스모스가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어떤 것은 꽃잎을 활짝 펴들었고,
어떤 것은 몽우리를 작게 뭉쳐 공중으로 들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7월 5일 경기도 하남의 은고개 계곡에서

그녀는 또 찍는다, 코스모스를.
나도 또 찍는다, 그녀를.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7월 5일 경기도 하남의 은고개 계곡에서

그녀의 앞에선 하얀 코스모스가 꽃잎을 펴고 있었고,
짙은 분홍색 코스모스는 며칠 뒤를 기약하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7월 5일 경기도 하남의 은고개 계곡에서


그녀는 또 찍는다.
이번에는 코스모스가 아니라 개망초이다.
나는 이번에도 변함없이 그녀를 찍는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7월 5일 경기도 하남의 은고개 계곡에서


개망초 한 무리가 그녀의 앞에서
꽃을 좌우로 부채처럼 고르게 펼쳐들고 서 있었다.

꽃을 찍으면 꽃만 내게로 흘러든다.
그녀가 꽃을 찍으면 그 순간 꽃이 그녀에게로 흘러들고,
꽃을 찍는 그녀를 찍으면
그녀의 꽃과 그녀가 모두 내게로 흘러든다.
가끔 그녀는 꽃이 그녀에게로 잘 흘러들도록
지면 가까이 몸을 낮추기도 한다.
물론 꽃보다 더 높이 몸을 세워
꽃 위로 시선을 가져갈 때도 있다.
그때면 꽃들은 이제 그녀에게로 날아오른다.
풍경 앞에 그녀를 세우고 사진을 찍으면
그녀가 풍경을 짊어지게 되지만
그녀가 꽃을 찍고 있을 때 그녀를 찍으면
그녀에게로 흘러드는 그녀의 꽃과 그녀가 동시에 찍힌다.
풍경 앞에 그녀를 세우지 않고
꽃을 찍는, 혹은 꽃을 보고 있는 그녀의 뒤나 앞에서
그녀를 찍으면 그 재미가 남다른 이유이다.
그녀의 어깨 위에 풍경의 무게를 얹지 마시라.
꽃에도 눈 돌리지 마시라.
대신 가끔 세상의 온갖 꽃이 흘러들고 있는 그녀에게 초점을 맞추고
그녀를 찬찬히 즐겨보시라.

11 thoughts on “그녀의 꽃과 그녀

  1. 취미를 같이 하시니 좋으시겠어요.
    저도 이번에 재회하면 집사람 카멜나 하나 사줄까하네요.
    2년전에 생일 선물로 똑딱이 하나 사줬는데, DSLR은 집사람이 너무 어려워하고,
    G10이나 하나…

    1. 새로 나온 시그마의 DP2도 한번 고려해 보심이…
      가격은 g10보다 좀 비싼데 g10도 만만치 않은 가격이니 이왕 결심하신 김에 아주 고급으로 가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
      사진이 그냥 사진찍는 걸 넘어서 함께 노는 측면이 있더라구요.
      시각도 달라서 나중에 그걸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나구요.

  2. 씀바귀에 손을 뻗으시는 여인 진짜 청초하고 이쁘시다에 한 표!
    표정만 봐서는 씀바귀가 아니라 코스모스에 손을 뻗으신 느낌이다에 또 한 표!
    ㅎㅎㅎㅎ

    1. ‘아이쿠’도 아니고 ‘하이쿠’는 모지?
      싶어서 부랴부랴 신지식님께 물어봤어요.
      참 무식하죠, 잉~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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