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박스 – 홍대앞 놀이터의 뜨거운 공연

원고 마감하고 나서 며칠 동안을 계속 홍대앞에서 보냈다.
누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동네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스스럼없이 홍대앞이라고 답하겠다.
다른 무엇보다 욕망의 고삐를 원없이 풀어놓은 듯한
그곳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다.
홍대앞과 인연을 맺은 것은
문학과지성사가 그곳에 사무실을 얻고
그 사무실을 들락거리면서부터 인듯하다.
동네의 허름한 벽이 캔버스가 되고,
또 동네의 놀이터가 거리의 무대가 되는 곳.
7월 26일 나는 그곳에서 거리의 공연을 즐겼다.

Photo by Kim Dong Won

사람들이 장벽처럼 둘러선 사이로 공연하는 사람이 보인다.
이름을 알 수가 없다.
나는 단순히 그녀가 초록빛 상의를 걸쳤다는 이유로
그녀를 그린걸이라 부르기로 했다.
하긴 이상할 것도 없다.
내가 학교 다닐 때 실제로 핑크 레이디란 그룹이 있었으니까.
색깔로 사람을 부르는 것이 그리 어색한 일은 아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노래만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에 춤도 곁들인다.
아니, 이 말은 잘못된 말이다.
노래와 춤이 함께 한다.
사람들은 열광한다.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뒤섞인다.

Photo by Kim Dong Won

멤버가 한둘이 아니다.
그래도 메인 보컬은 있는 법.
드럼 옆의 통기타 주자가 주로 노래를 불렀다.

Photo by Kim Dong Won

놀이터가 무대가 되면
그 주변은 어디든 보이는 빈틈만 비집을 수 있으면
그곳이 객석이 된다.
객석은 앞뒤를 가리지 않는다.
아버지가 안아주면 아이의 작은 키로도
아버지의 든든한 팔을 객석으로 삼아 그들의 공연을 즐길 수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우리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직업의 귀천을 구별할 때가 많다.
나는 한때 노래에 대해서도 그랬었다.
나는 노래의 귀천을 구별하여
디스코를 Rock의 아래에 두었으며,
Rock은 또 클래식의 아래에 두었었다.
내가 갖고 있던 그 잘못된 차별의식을 없애준 것은
“I’m Every Woman”이란 노래를 불렀던 Chaka Khan(차카칸)이었다.
어느 날 나는 그녀의 공연을 보게 되었는데
그녀는 완전히 땀으로 목욕으로 해도 사나흘은 할 수 있을 정도 많은 땀을 흘리며
정말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가수와 노래는 좀 헷갈린다.
그게 핫 쵸콜릿(Hot Chocolate)의 Everyone’s a Winner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다 보니 선명하진 않다.)
나는 그날 알게 되었다.
모든 노래에는 귀천이 없다는 것을.
디스코에 감동먹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밤늦은 시간까지 계속되는 홍대앞의 이들 공연에서도
나는 모든 노래엔 귀천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이들의 공연을 보고 있노라면
이들이 그냥 순서가 되어 춤을 추는 것인지
이들의 노래가 불러낸 흥겨움이 사람들의 흥을 북돋우고
그 흥이 다시 이들의 춤을 불러내는 것인지 헷갈린다.
아무튼 관중들의 호응과 춤은 맞물리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블랙걸이 노래부른다.
이은미가 떠오르는 목소리였다.
물론 이은미보다 더 매력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블랙걸은 처음에는 자리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는가 싶었으나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앉아서 노래를 부를 때는
사람들이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그때면 사람들은 서 있어도 앉아서 듣는다.
사람들은 차분해진다.
그러나 그녀가 일어나면 노래도 함께 일어난다.
노래가 일어나면 사람들도 일제히 몸을 편다.
앉아있는 사람도 사실은 일어선다.
가끔 삶이 쳐진다 싶을 때는 그냥 자리를 털고 일어서볼 일이다.
그녀가 일어서자 노래가 서서히 달아올라 폭발했다.

Photo by Kim Dong Won

탭댄스가 등장했다.
멤버들은 한 30분만 쉬게
혼자 바닥을 두들기라며 악기에서 손들을 놓았다.
그러나 그들은 채 5분을 넘기지 못하고
발바닥으로 바닥을 두들겨 만들어낸 그 리듬에 동참하고 말았다.
또 사람들은 손뼉으로 그의 발놀림이 만들어내는 리듬에 동참했다.
그의 발엔 리듬이 살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연주하며 담배를 피운다.
아니, 이건 잘못된 생각이다.
담배피우며 연주한다.
에릭 클랩튼이 생각났다.
항상 불붙인 담배 한 대를 기타에 꽂고 연주를 하던 그가.
아마도 담배 연기에 음악을 섞어넣고 그 맛을 음미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때 현장에서 에릭 클랩튼의 연주와 노래를 들었던 사람들은
음악이 섞인 담배 한대의 그 죽이는 맛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이들도 그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노래와 담배가 뒤섞이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여름이 뜨거운 것은
계절탓이 아니다.
이들의 공연을 보고 있노라면
그 사실을 실감한다.

Photo by Kim Dong Won

오호, 중간에 핸펀으로 온 메시지도 전한다.
대머리 아저씨에게도 문자가 왔다.
멋지다고.
그 문자 읽으면서 쑥스러워하는 그의 머리 위에서
있지도 않은 머리카락이 몸을 슬쩍 비틀며 수줍어하는 느낌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들은 홍대 놀이터에 가면 만날 수 있으며
아울러 싸이월드 클럽에서 사운드박스를 찾아도 만날 수 있다.
주소는 http://club.cyworld.com/club/main/club_main.asp?club_id=52390339 이다.
줄여서 싸박이라고 부른다.

Photo by Kim Dong Won

종종 춤은 노래의 조연이다.
그러나 여기선 그렇지 않다.
노래와 춤은 주연과 조연으로 나뉘지 않는다.
이곳에선 그 구별이 없다.
춤이 노래의 흥을 이끌고
노래가 춤의 조연을 마다않는다.

Photo by Kim Dong Won

아울러 그들의 춤은 뜨거운 밤의 열기를
몸으로 마구 휘저어 놓는 행위이다.
사람들이 열광한 것을 보면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Photo by Kim Dong Won

관객 한 사람이 이들의 공연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음료수를 가져다 놓았다.
가져다 놓자마자 그린걸이 냉큼 챙겨갔다.

Photo by Kim Dong Won

기억해 두시라.
홍대앞 놀이터에 가면 만날 수 있는 그들의 이름, 바로 사운드박스를.
이 날은 저녁 다섯 시부터 공연을 시작했다고 한다.
시간은 열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사운드박스의 비밀 병기, 그린걸.
그녀가 마치 나비처럼 나풀거리는 걸음으로
무대로 걸어나올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녀는 일단 한번 털어주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리고 모두가 놀라워한 그녀의 춤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사람들의 환호와 열기를 부력삼아 날아오르려 하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어쩐지 첫눈에 매력적으로 보이더라니.
비밀 병기는 감추어도 느낌까지 숨길 수는 없는 법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웃음도 춤의 일부이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녀가 팔을 펼쳐 대단원의 춤을 마무리했다.
사람들은 환호로 그녀의 춤을 공중으로 들어올렸다.
김연아가 무색했다.
하물며 그녀가 휘젖으며 일으킨 율동의 물결이
바로 눈앞으로 밀려와 일렁대는 코앞의 거리에선 더더욱 그러했다.
그녀는 사운드박스의 비밀 병기, 바로 댄싱 퀸이었다.
오, 노래는 내가 모르는 노래였다.
Abba의 Dancing Queen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었다.
Oh, See that girl. You are the dancing queen을 합창하면 좋았을 것을.

Photo by Kim Dong Won

미모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흑인 여성 한 명이 지나가다
걸음을 멈추고 구경한다.
Black is beautiful이란 말이 흑인들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단순한 구호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여인이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칠흑빛 아름다움이 빛난다.
그 칠흑의 미녀가 사운드박스의 공연에 미소를 얹어주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들, 사운드박스.
홍대가면 부디 다섯시까지 기다렸다가
홍대앞 놀이터에서 공연의 문을 여는 그들과 함께 해보시라.
그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공연은 비틀즈의 Hay, Jude로 마무리되었다.
“나나나 나나나나” 부분은 모두가 함께 불렀다.
물론 나도.
공연이 끝나고 드러머의 환한 미소를 선물로 챙겼다.
뜨거운 여름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홍대앞에선 밤에 잠들지 말라.
음악과 함께 밤새 깨어있으라.
홍대의 밤은 잠들지 않고 있었다.

11 thoughts on “사운드박스 – 홍대앞 놀이터의 뜨거운 공연

  1. 생선은 낚자마자 바로 회쳐먹으면 좋고
    축구는 아무리 재미없다고 해도 운동장에서 보면 실감이 나더군요.
    뭐든지 날것이 좋습니다.

  2. 오호호홋~! ^^
    안녕하세요 ^^*
    그린걸 신내련(신혜련)입니당~ ^^*

    저희 ‘싸박’ 클럽에 김동원님께서 쓰신 이 글을 (출처를 분명히 밝히고 ^^;;) 회원분께서 퍼서 올리셨더라구요 ^^
    그 글 보고 완전 감동 받아서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ㅠㅠ

    정말..
    감.덩.이에욧!!!!! ㅠㅠ

    감사합니다~!
    더~ 더~ 더~ 날아 오를께욧~~~~~!!!!! *^0^*

    1. 아이구, 누옥에 다 찾아와 주시구… 감사합니다.
      다음에 공연볼 때 열렬히 박수쳐 부력에 보탤께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정도로 멋졌어요.

  3. 지난주 금요일날 홍대를 갔다가 우연히 공연을 보고 왔답니다^^
    정말 사진 속의 그린걸은 대단하더군요
    제가 갔을때는 회색 나시티에 검은 바지를 입고 계셨는데
    털기부터해서 포스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네요^^
    담에 가면 꼭 이 공연 처음부터 볼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좋은 설명 감사합니다~

    1. 노래 실력도 보통이 아닌 것 같던데
      그걸 못들은게 아쉬워요.
      보통 일곱시부터 한다니까
      다음엔 그 즈음에서 자리잡고 끝까지 함께 해보려구요.
      들러주신 거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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