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리의 새

내겐 네 마리의 새가 필요해.
나의 사랑을 너에게 날라다줄.
난 일단 사랑을 LOVE로 변환을 할 거야.
사랑이란 말은 너무 무거워.
난 그 무거움을 털어내 버릴 거야.
이상하지.
사랑을 LOVE로 변환을 하면
곧바로 사랑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야.
난 그 사랑을 또 네 개로 쪼갤 거야.
그리고 그 하나하나를 네 마리의 새에게 부탁하여
하나하나씩 네게로 보낼거야.
새는 제비가 좋겠어.
네게 건네고픈 내 사랑의 조급함을 싣고
날렵하게 날아갈 수 있어야 하거든.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7월 23일 서울 홍대입구의 옷가게 퍼니데이에서

첫번째 새에겐 L을 쥐어서 보낼 거야.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7월 23일 서울 홍대입구의 옷가게 퍼니데이에서

두번째 새에겐 O를 쥐어서 보낼 거야.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7월 23일 서울 홍대입구의 옷가게 퍼니데이에서

세번째 새에겐 V를 쥐어서 보낼 거야.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7월 23일 서울 홍대입구의 옷가게 퍼니데이에서

네번째 새에겐 E를 쥐어서 보낼 거야.

하지만 생각대로 될지는 모르겠어.
사랑을 LOVE로 바꾸고 나자
사랑이 너무 가벼워졌거든.
부리끝에 물고가는 새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순서를 헷갈리면
내 사랑은 엉망진창이 될 거야.
난 좀 걱정이 되기도 하고 또 심심하기도 해서
네 조각으로 쪼갠 그 사랑의 순서를 이리저리 짜맞춰 보았지.
그리곤 놀랐어.
LOVE 이외에는 아무 뜻이 없을 줄 알았는데
거의 모두가 나름대로 쓰이고 있었어.
네게 하나하나 모두 알려줄께.
LOVE: 제대로 순서를 맞추어 가면 네게 전달될 바로 그 사랑이지.
LOEV: 사람 이름 중에 있었어. Loev 박사라고 계시더군.
LVOE: love라는 철자가 너무 강력해 보일 때 한단계 낮추어서 쓰는
온라인용 철자래.
LVEO: 그냥 love라고 하면 별다른 의미없이 가볍게 말할 때인데
진실되고 의미있는 사랑일 때는 LVEO로 적기도 한다는 군.
LEVO: 돌고래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한 여행사가 내건 이름이었어.
LEOV: 요건 붙어있기 보다 Leo V로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았어.
사람 이름이더군.
V자를 문 새가 유난히 늦게 도착하면 이런 사태가 벌어질 거야.
OLVE: 사람 이름 가운데 있었어. 블로그를 갖고 있더군.
OLEV: 러시아의 유태인 서정 시인이라는 군.
OVEL: 패션 브랜드 이름 중에 있었어.
OVLE, OEVL, VLEO, EOVL: 인터넷에 떠도는 ID 중에 있더군.
OELV: Occupational Exposure Limit Values의 약자래.
우리 말로 옮기면 직업적 노출 한계값 정도가 될 거 같어.
그게 뭔지는 묻지 말아줘.
VLOE: LOVE를 좀 익살맞게 사용할 때 이렇게 적을 수 있다고 해.
VOLE: 들쥐를 말하는 거래.
명바구를 싫어하는 너는 도착한 철자들이 이 단어로 조합이 되면
사랑이고 뭐고는 생각도 안하고 그냥 발로 밟아버릴 것 같아.
VOEL: 네덜란드어 “느끼다”는 동사의 1인칭 단수 현재형이라는 군.
VEOL: 인도에 있는 의료기기 개발 회사가 이런 이름을 썼더군.
VELO: 자전거 가운데 벨로 자전거라고 있어.
EVLO: 회사 이름으로 아주 많이 쓰고 있었어.
EVOL: 미국의 올터너티브 락 밴드인 소닉 유스의 세번째 스튜디오 앨범 타이틀이야.
노래는 들어본 적이 없어.
ELVO: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 지역에 있는 53km 길이의 간헐성 시냇물이야.
흘렀다 안흘렀다 한다는 얘기지.
혹시 이걸로 도착하면
우리 그곳에 가서 우리의 사랑을 찾아보아야 하는 거 아냐.
ELOV: 엘로브와 베니라는 스웨덴의 2인조 힙합 댄스 뮤지션이 있어.
EOLV: End of Life Vehicles,
그러니까 수명이 끝난 폐차를 이렇게 적기도 하더군.
정말 놀랍지 않아?
사랑의 무게를 덜어내고 LOVE를 네 개로 쪼개 네게 보내면
이제 우리의 사랑은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될지도 몰라.
하지만 그래도 내겐 네 마리의 새가 필요해.
난 이제부터 내 사랑을 줄세우지 않고
자유로운 새들의 비행 속에 실어서 너에게 날려보낼꺼야.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될 위험은 있지만
네가 잘 조합하면
그래도 내 사랑은 분명 사랑이 될거야.

8 thoughts on “네 마리의 새

  1. 가게에서 사진 찍으면 못찍게하지 않나요?
    영국에선 사진 찍을라고 그러면 큰 일이라도 난 듯
    뛰어나와서 손으로 가리고, 가게 밖에서 찍어도 찍지 말라고
    손 흔드는 데..

    근데 저거 다 직접 쓰신건가요? 시간도 시간이지만
    다 생각하시는데 힘드셨겠네요. 대단하세요!

    1. 서울도 대부분 못찍게 해요.
      근데 홍대앞은 예외인거 같아요.
      뭐 찍어도 그려려니… 제가 홍대앞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죠.
      제가 다른 곳을 찍고 있는데
      제 카메라 앞으로 지나가는 처자들이
      카메라를 쳐다보며 V자를 그리며 지나가는 곳이니까요.
      모르는 사람 얼굴 앞에 카메라 들이대고 사진찍는 곳은 홍대앞밖에 없는 듯 싶어요.
      한 커피점 사진찍을 때는 거기 남자분한테 포즈좀 부탁했더니
      자세도 취해주시더라구요.
      왜 찍냐고 물어보면 그냥 설명해줘요.
      이런 저런 느낌이 나서 찍는 거라고.
      그러면 대개는 오케이 나는 거 같아요.
      물론 홍대앞에서만.

      저건 인터넷에 다 있으니 하나도 힘들지 않던데요.
      글자 조합하는게 더 힘들었던 거 같아요.

      이제 둘이 함께 있으니 좋죠?
      사랑이 둘을 채우면 그 사랑이 둘을 넘쳐나
      주변 사람들까지 사랑으로 물들 수 있도록 해줘요.
      철철 넘치도록 사랑하시길. ^^

  2. 르베오, 올르브, 베로, 에올브….
    읽느라고 죽는 줄 알었슈.ㅋㅋㅋ
    땀나유.
    사랑이 너무 자유롭다봉께 보통 힘든 것이 아니구먼유.

    1. 아니, 그걸 다 읽고 있었다니 내가 웃겨 죽겠슈. ㅋㅋ
      쓴 나도 안읽어 봤슈.
      역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짊어지는데 명수유.
      한가해지면 어디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forest님이 쏘게 할테니…ㅋㅋ

  3. 이거, 스팰링 잘 조합해서 읽어내는 독자에게 상줘야 할 것 같어.^^
    무자게 복잡하고 어른거리기까지 해서 인내심을 갖고 읽어야 해.
    친절한 털보님, 영문 스팰링은 색으로 표시를 해두시던지, 볼드로 처리해 주시던지…
    근데 이거 다 찾아서 쓴거야?
    대단한 털보~ 짝짝짝짝~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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