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바삐 집을 나서며 말한다.
“동원이형, 나 설겆이 못했어!”
난 대답한다.
“알았어. 갔다 와서 해!”
그녀가 코앞에서 종주먹을 한 번 쥐었다 풀고 나간다.
종종 말은 그 뒤에 또다른 말을 숨기고 있다.
“설겆이 못했다”는 말은
말 그대로 보자면 현재 상태의 설명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만
실제로는 “내가 못한 설겆이 네가 좀 대신해줘”라는
부탁의 말을 숨기고 있다.
사람들은 용하게도 그 숨겨진 말을 찾아내 척척 알아 듣고
“알았어, 내가 해놓을께”라고 반응한다.
사람들은 마치 숨은그림찾기라도 하듯 숨은 말들을 찾아낸다.
그러나 난 종종 숨겨진 말은 모른 척한다.
그래도 그런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웃음의 기회로 삼아 넘어갈 수 있으니까.
때로 나는 그녀가 숨겨놓은 말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때도 많다.
또 때로 말은 말을 하는 순간
자신이 예상치도 못한 말이
말의 뒤로 슬쩍 몸을 숨기기도 한다.
말과의 숨바꼭질은 쉽지가 않다.
오늘은 가볍게 그 숨바꼭질의 한순간을 즐기면서 넘어갔다.
2 thoughts on “숨겨진 말”
요즘 제 집사람은 설것이 잘 하네요.
평소에는 제가 다 했는데. 오늘은 집사람이 처음으로 청소기도 돌렸다는… =)
저도 둘이 살 때는 음식도 가끔 하고 그랬어요.
둘이 살 때의 좋은 점은 관습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아요.
둘만의 사랑을 마음껏 할 수 있다고나 할까요.
말안해도 해주는 설겆이는 더더욱 감동적이죠.
감동은 항상 뜻밖의 감동이 더 큰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