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라산 정상

제주에 두 번 가봤었다.
한 번은 놀러내려간 길이었고,
다른 한 번은 일 때문에 갔었다.
놀러간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그때 처음으로 한라산에 올랐다.
하지만 정상 바로 아래쪽의 휴게소에서 걸음이 막혀
정상인 백록담은 구경하지 못했다.
정상에 가려면 오전 11시까지 와야 한다고 했다.
아쉬웠지만 정상을 코앞에서 쳐다본 것으로 만족하고 발길을 돌렸다.
9월 5일 토요일, 내 생애 두번째로 한라산에 올랐다.
여전히 시간 제한이 있었다.
산 정상의 바로 아래쪽에 있는 진달래 휴게소까지
12시 30분까지 온 사람만 정상으로 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한라산에 오른 것은 이번이 두번째였지만
이번에는 내 생애 처음으로 한라산의 백록담에 올랐다.

Photo by Kim Dong Won

저 곳이 바로 한라산 정상이다.
눈에 빤히 보이는 듯 하지만
아직 상당한 거리를 남겨놓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산에 가보면 항상 구름이 먼저 정상으로 가 있다.
구름은 몸이 가벼워서 그렇다.
나도 구름처럼 가벼운 몸을 갖고 싶었지만
어깨에 걸려있는 무거운 카메라와 삼각대가
자꾸 발을 뒤로 잡아당기고 있는 듯했다.

Photo by Kim Dong Won

정상의 직전에서 옆으로 고개를 돌려본다.
구름은 정상으로 먼저 가 있기도 하지만
또 높이 오르면 구름을 발아래 두게 된다.
밑의 구름은 그 부력으로 내 발길을 밀어 올려준다.

Photo by Kim Dong Won

드디어 한라산의 정상에 왔다.
이 날 올해 들어 가장 많은 인파가 한라산을 찾았다고 한다.
자그마치 1800명.
나도 그 1800명 중의 한 명이었다.
예전에는 한가하게 산을 오르며
한라산을 즐기는 맛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산을 즐기는 맛은 좀 떨어졌다.
줄을 서서 산을 오르면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Photo by Kim Dong Won

여기가 바로 한라산 백록담.
왼쪽 부분이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리고 멀리 바다가 보이는
한라산 백록담의 오른쪽 부분.

Photo by Kim Dong Won

한라산 백록담의 전체 모습.
오, 드디어 내가 여기에 오다니.
보통은 정상에 오면 세상을 내려다보는데
한라산은 정상에 오면 세상이 아니라
그곳의 백록담을 내려다보게 된다.
산에 올라 산의 한가운데를 내려다보는 느낌은 남다르다.

Photo by Kim Dong Won

백록담 오른쪽으로 보이는
공룡 모양의 바위.

Photo by Kim Dong Won

구름이 왼쪽 산 허리의 잘록한 부분을 넘어
백록담으로 들어오고 있다.
구름이 밀려오면 백록담의 분위기가 더욱 환상적으로 바뀐다.

Photo by Kim Dong Won

거대한 흰구름이 백록담으로 진군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머무는 동안 백록담을 둘러싼 턱을 무사히 넘어간 구름은 없었다.
백록담이 쉽게 넘볼 수 있는 곳은 아닌가 보다.

Photo by Kim Dong Won

백록담 왼쪽 사면의 고사목과 푸른 나무들.
백록담에선 종종 사슴이 뛰어논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인지 사슴은 보이지 않았다.
한가한 평일에 올라 백록담의 사슴도 보고 싶다.

Photo by Kim Dong Won

내가 올라온 성판악 코스 쪽으로 사람들이 내려가고 있다.
올라오면 이 코스 방향으로 넓게 풍경이 펼쳐진다.
한참 동안 앉아서 정상의 풍경을 즐겼다.
정상에 이렇게 넓게 들판이 펼쳐진 곳도 한라산밖에 없는 것 같다.

Photo by Kim Dong Won

정상의 너른 들판에 핀 보라색꽃들은 엉겅퀴이다.
가시가 아주 날카로웠다.

Photo by Kim Dong Won

내려가는 것은 관음사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내려가기 전에 정상에서 관음사쪽 방향으로 내려다 본 풍경이다.
오르고 내릴 때 풍경은 관음사 쪽이 더 좋고
수월하기는 성판악 쪽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조금 내려오다 올려다 보니
위에서 한라산 백록담의 오른쪽으로 보였던 공룡 모양의 바위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나를 배웅한다.
잘있으라.
나도 한라의 백록담에 손흔들어 주었다.
언제 시간이 호젓할 때 내 다시 와서 원없이 마음에 담아가리라.
이제 내가 한번 정상에 가보고 싶었던 곳 가운데서 두 곳을 가보았다.
한라의 백록담과 설악의 대청봉이다.
다음엔 지리산의 천왕봉에 가보고 싶다.
하지만 어디를 가도 한라의 백록담처럼
정상 자체가 풍경이 되는 곳은 없을 것이다.
그곳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며 풍경을 얻어가는 곳이 아니라
그냥 그곳 자체가 풍경이 된 곳,
바로 한라의 백록담이다.

18 thoughts on “제주 한라산 정상

  1. 저도 신혼여행가서 한라산 등반을 했었어요.
    그때 비가 오고 사람도 없어서 실종 당할뻔했었는데..ㅎㅎ
    그 후론 제주에 여러번 갔어도 한라산등반은 아예 생각도 안했는데…
    이번엔 어찌될지…

    1. 저도 제주도를 아내와 함께 갔었는데 배를 타고 갔었어요.
      아쉬운 것은 그때는 카메라가 없던 시절이라
      사진을 하나도 남기질 못했죠.
      한라산은 이제 찾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아마 평일 아니면 줄서서 올라가야 하실지도 몰라요.
      백록담까지 올라가는 코스는 길고 험해서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더라구요.

  2. 예전에 찍어 올리시던 산 사진들과 뭔가 느낌이 다른데 ‘한라산이라서 그런가? 카메라가 달라지셔서 그런가?’ 저는 잘 모르겄어유. 암튼, 좀 달라유.

  3. 역시 형님체력 짱입니다.^^
    백록담에 물이많을줄알았는데…, 좀허전해보이네요.
    여행다녀오시면 9월나들이한번 가야줘^^

  4. 카메라가 정말 무겁긴 한 모양이네요.
    그동안 산행기에서 다 한번도 힘들단 말씀이 없으셨었는데..
    그래도 너무 좋으셨겠어요. 전 자신없어 부럽단 말도 잘 못하겠지만.
    2시간 하니깐 갈만하네 하다가 9.6km 라는 말에 허걱! 난 안돼겠네…

    정상이 정말 이국적이군요.

    1. 휴게소는 산 정상 바로 밑의 휴게소를 말하는 거예요.
      첫 출발지가 아니구요.
      첫 출발지에선 6시간이 걸렸어요.
      그러니까 4시간을 산을 올라서 중간 휴게소까지
      12시 30분까지 온 사람만 정상으로 올려보내는데
      거기서 제가 2시간이 걸렸다는 말씀.
      그곳에 12시 30분 이후에 도착하면 절대로
      올려보내 주질 않아요.
      정상에서도 2시 이후에는 머물지를 못하게 해요.
      물론 좀 개기기는 했지만요.
      정상에서 40분 정도 쉬고 다시 내려오는데 다시 5시간 정도 걸렸구요.
      엄청나지 않아요?
      물론 저희가 제일 꼴지였지요.
      중간에 낙오한 분도 한 사람 데리고 내려왔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 분은 우리가 없었으면 아마 실종되었을지도 몰라요.
      평생 기억에 남을 산행이었습니다. ㅋㅋ

  5. 보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후들후들~
    그래도 이제 두 곳을 들러 점을 찍었으니
    마지막 천왕봉의 점도 한번 찍어보자우~^^

    1. 아무래도 뭣도 모르고 가서 간 것 같다.
      다음에는 영실로 올라가서 어리목으로 내려오자.
      한라산 정상을 못봐서 그렇지
      사실 경치는 그 쪽이 더 좋으니까.
      근데 우리 재수 되게 좋았던 것 같다.
      정상은 자주 폐쇄를 해서 간다고 다 갈 수 있는게 아닌 것 같더라.
      정상 올라가는 시간도 마음대로 바뀌는지
      제한 시간이 정해져 있는게 아니고 임시로 써놨더라.

  6. 저는 게을러서 투잡을 동시에 못하겠더군요.
    처음으로 산에 카메라를 가지고 오르다 지쳐서 그 이후로는 포기했습니다.
    그냥 산이면 산, 사진이면 사진…요렇게 원잡을 합니다.
    언급하신 정상들은 덕을 많이 쌓아야 오른다는데 저는 포기해야겠습니다.ㅜㅜ

    1. 설악산이나 한라산이나 다 얼떨결에 정상까지 간 것 같아요.
      특히 설악산은 그렇게 높은 줄도 모르고
      그냥 하염없이 걸었던 것 같습니다.
      한라산은 9.6km라고 되어 있는 거리를
      설마 저렇게 길겠냐며 그걸 믿지 않고 계속 가다가 올랐어요.
      영실 코스라고 있는데 예전에 놀면서 그곳을 올랐던 기억이 있거든요.
      좌우지간 뭘모르고 덤비면 호되게 당하기도 하고
      또 얼떨결에 이루기도 하고 그런 듯 합니다.
      지리산 대청봉도 그냥 아무 것도 찾아보지 않고 한번 내려가볼까 생각 중입니다.

  7. 중장비를 메고 오른 한라산 등정, 감회가 새로우셨겠습니다.
    저도 언젠가 도전해 보고 싶어, 요즘 동네산 부지런히 오르고 있습니다.
    휴게소에서 정상까진 얼마나 걸렸는지요?

    1. 보통 사람들은 1시간 30분 정도에 간다는데 저는 짐이 무거워서 2시간 좀 넘게 걸린 듯 합니다.
      막판에는 정말 짐이 무겁게 느껴지더군요.
      몇발자국 떼고 헉헉댔지요.
      올라보니 좋기는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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