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산에서 만난 가족의 풍경

9월 20일 일요일, 하남의 검단산에 올랐다.
오르면 팔당의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이다.
대개의 산이 그렇듯이 검단산도 오르는 입구가 여럿이다.
이번에는 산곡초등학교 쪽을 들머리로 골랐다.
보통은 산을 오르면
꽃과 나무들을 기웃거리며 걸음을 옮겨놓곤 하는데
이 날은 자꾸만 가족의 풍경이 내 눈을 끌었다.
카메라가 좀 그럴듯하고,
긴머리에 수염 때문인지 카메라를 들이밀어도
다들 피하지 않았다.

Photo by Kim Dong Won

아버지와 딸이다.
그냥 단촐하게 몸만 가지고 산으로 향하고 있다.
내가 중간을 지나 조금 더 갔을 때
이미 정상을 갔다가 내려오고 있었다.
그냥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걸음 하나에 대화 하나가 따라붙을 정도로
끊임없이 얘기를 나누며 산을 가고 있었다.
딸이 땅의 곤충을 가리키며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아이 아빠는 “그걸 알면 내가 곤충학자가 되었지”라고 재치있게 받았다.
아이들과 함께 가볍게 오르며 대화할 수 있는 좋은 산이 검단산인 듯하다.

Photo by Kim Dong Won

딸과 아들을 모두 데리고 나온 아버지이다.
계곡을 흘러내려가고 있는 물소리를 들으며
아이들과 함께 쵸코바를 먹고 있었다.
모습이 보기에 좋아 사진을 하나 찍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카메라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처음에는 내려오는 길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나와 마찬가지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아이들 걸음걸이에 맞추어 천천히 산을 오르고 있었다.
산에 가면 아이들의 걸음걸이에 맞추어 천천히 걷는 것으로
아이들과 또다른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
아버지는 아이들과 걸음의 눈높이를 맞추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딸을 데리고 나온 부부이다.
아빠, 여기서 좀 쉬면 안되나.
딸은 그 말을 함과 동시에
자신이 서 있던 바닥을 그대로 휴식의 자리로 삼아
그 자리에 앉아 버린다.
자식이란 놀라운 존재이다.
그냥 앉아 쉬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얼굴 가득 미소를 선물한다.
정상 바로 직전에서 이들 가족을 다시 만났다.
이미 정상에 올랐다 내려오고 있었다.
지나치면서 웃음을 주고 받았다.

Photo by Kim Dong Won

아버지가 아들의 손을 잡고 내려가고 있다.
정상에서 내려가는 계단이다.
나는 올라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등에 짊어진 것은 베낭이 아니라
아이를 업을 때 쓰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걷기도 하고
아이가 다리아프다고 하면 업고 내려가는가 보다.
아이를 업는 것은 항상 어머니의 몫이던 시대를 살아서인지
아버지는 여전히 아버지이지만
이제는 그 아버지에게서 어머니가 보인다.
좋은 변화로 보였다.

Photo by Kim Dong Won

정상에서 팔당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정말 아이를 업고 내려가는 아버지가 있다.
앞쪽의 두 사람은 딸과 그의 아내이다.
노란색 옷을 입은 딸과 짙은 곤색의 옷을 입은 아이 엄마는
내려가는 길을 조금 사전 답사했나 보다.
길이 험하니 올라온 산곡초등학교 쪽으로 내려가자고 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괜찮다며 성큼성큼 새로운 길로 발을 옮겨놓고 있었다.
그 뒤로 딸과 엄마는 내내 아버지 뒤를 쫓아가기에 바빴다.
아이는 아버지에게 짐이 아니라
어떤 길도 마다않고 갈 수 있게 해주는 힘 같았다.

Photo by Kim Dong Won

아들 둘을 데리고 산을 내려가다
빈터에서 쉬고 있는 아버지.
한 아이는 흰 머리띠를 했고
또다른 한 아이는 검은 머리띠를 했다.
따로 앉아 있었지만 셋 모두의 푸른 색으로
한자리에 엮여져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아무리 봐도 닮아있어 쌍둥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렇다고 한다.
말끔하게 닦아놓은 등산로가 있었지만
쌍둥이 아빠는 가끔 등산로를 벗어나
경관이 트이는 곳으로 아이들을 데리고가더니
아래쪽으로 넓게 펼쳐진 세상을 보여주었다.
좁은 곳에서 아웅다웅 살고 있는 듯한데
이상하게 산을 오르면 세상은 넓게 펼쳐진다.
아버지는 그렇게 아이들에게 우리들의 좁은 세상을
넓게 펼쳐 보여주며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먹이를 물고 가는 개미를 보고 아이들이 신기해하자
개미는 자기 몸무게의 10배나 되는 무게를 들 수 있다고 설명도 해주었다.
아버지는 두 아들과 함께 천천히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앞모습을 찍으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이 어른거려 세 사람만 카메라에 담는데는 실패했다.
대신 졸졸 뒤를 쫓다가 뒷모습은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정상에 거의 다 왔을 때,
아이를 데리고 함께 온 가족과 약간 대비되는 두 부부를 보았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부부 중 아버지가 전화를 꺼내든다.
정상이 올려다 보이는 자리여서 정상의 사진을 찍다
전화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그 첫마디는 “야, 이 자식, 너 아직도 게임하고 있지?”란 것이었다.
아마도 집에 남겨놓고 온 아이에게 건 전화였나 보다.
산에 함께 온 아이는 단란한 가족의 기억을 선물하는데
집에 남겨놓고 온 아이는 산에 와서도 걱정이 된다.
종종 아이를 데리고 산에 갈 일이다.
그럼 아이는 단란한 가족의 시간을 선물할 가능성이 높다.

대개 여자와 아이들은 맨몸으로 산을 오르고
짐은 아버지가 모두 감당하고 있었다.
무거운 짐은 고역일 것 같은데
산길에서 만난 아버지들의 얼굴에 힘겨움은 없었다.
우리 세대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세상의 짐을 어머니에게 모두 떠넘기고
삶의 단물은 저 혼자 빨아드시며 살아간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아버지들이 조금이나마
예전 어머니의 자리에 서서 가족의 풍경을 빚어내고 있는 것 같다.
산속에서 만난 가족의 풍경 속에선
거의 모두 아버지가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손을 잡고 산을 걷고 있었고,
아이를 업고 가고 있었다.
좋아보였다.
사실 아버지의 자리란 원래 저래야 했으리라.
항상 산은 나무과 숲이 있는 곳이었는데
이번에 검단산을 오르다 보니
산은 좋은 가족의 풍경을 가꾸어주는 곳이기도 했다.

6 thoughts on “검단산에서 만난 가족의 풍경

    1. 서울 근교의 산들이 특히 좋은 가족 산행지이기도 한거 같아요.
      산은 연인들보다가 가족 공간이란 생각이 많이 드는 산행이었습니다.
      들러주신 거 고맙습니다.

  1. 저희 가족들도 남들이 보면 저렇게 이쁜 풍경이겠지요? ^^*
    지난 주말에 아이들 데리고 문학산을 오르는데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이쁘다고 한마디씩 하더라구요. ㅎㅎ
    맨몸으로 오르는것도 힘들어하는 저질체력의 제가
    매번 카메라를 들고 가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신랑 베낭이 한짐이 되는데
    요 글을 보니 쪼매 미안한 맘도 들지만
    울신랑도 힘든 기색은 없더라구요.^^;;
    아~ 주말에 있던 약속도 취소되고 또 올라가야겠습니다..^^

    1. 한라산 갔을 때 다들 남편들이 짐을 지고 가고
      여자들은 맨몸으로 가는데
      저는 제 짐이 한 짐이라 그러질 못했죠.
      저는 다들 알아서 감당할만큼만 지고 올라갈 거라고 생각해서
      짐을 들어줄 생각을 잘 못해요.

      누가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예쁜 가족이잖아요.
      저희가 안보고도 잘알고 있지요. ^^

  2. 역시 사진은 사진을 찍은 사람의 정서가 담겨 있어야.
    진정한 예술품이라고 생각해요….

    잔잔하게 웃으면서…. 놀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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