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의 검단산 산행

한동안 여행과는 인연을 끊고 지냈다.
예전에는 새벽같이 혼자 길을 나서
멀리 설악산이나 오대산에 다녀오곤 했었는데
그런 기억은 이제 아득해져 버렸다.
누군가 길 떠나면서 불러주면
그제서야 이게 웬 횡재인가 싶은 심정으로
그 길에 따라나서곤 했었다.
혼자가는 먼 여행은 한동안 거의 없었다.
9월 20일 일요일,
갑자기 혼자 가까운 산이라도 다녀오고 싶었다.
검단산과 남한산성을 놓고 저울질을 하다가 검단산으로 향했다.

Photo by Kim Dong Won

성덕 여상 앞에서 경기도 광주행 13번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보니 내릴 곳도 자연스럽게 정해 졌다.
이 버스는 검단산 들머리 중에서 산곡초등학교 앞에 서기 때문이다.
산곡초등학교 앞에서 내려 길을 건너려고 신호등 바뀌길 기다리는데
신호등 자리에 참 온갖 것이 함께 붙어있다.
차들을 세웠다 보내기도 하고,
사람들이 길을 건너는 곳이기도 하며,
오던 길을 되돌아 갈 수도 있고,
속도는 80km를 넘어선 안되며,
80km를 넘으면 사진도 찍어준다.
사진이 무지 비싸서 그렇지.
또 안내판은 친절하게 여기가 검단산 입구 중의 하나임을 일러준다.
이 모든 것을 잘 정리하여
알려줄 걸 다 알려주고 있는데도 복잡하다는 느낌이다.
잠시나마 이 복잡한 세상을 털어버리려 산에 가는 것이리라.

Photo by Kim Dong Won

초입에서 거미 한 마리 만났다.
먹이가 풍성한 듯 보인다.
노란색이 예쁘다.
가을이라 가을색으로 단장한 것은 아니겠지.

Photo by Kim Dong Won

버스를 타고 다니며 수없이 그 이름을 들었던 산곡초등학교를
오늘 드디어 보게 된다.
산을 오르는 둔덕에 자리잡고 있어
학교 다닐 때는 숨좀 몰아쉬겠다 싶다.
하지만 아주 예쁘장한 학교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산곡초등학교에서 조금 올라가니 거리 표지가 나온다.
정상까지 2.25km라고 되어 있다.
애걔, 겨우.
한라산을 한번 등반하고 났더니
거리가 많이 우스워졌다.

Photo by Kim Dong Won

길가에서 물봉선 만났다.
거의 정상 가까운 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
꼬리를 말아쥐고 햇볕을 쬐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숲에선 고사리가 말아쥐었던 손을 활짝펴고 있다.
고사리같은 작은 손이란 말이 있는데
다 펴니 무지 크네.

Photo by Kim Dong Won

손톱만한 작은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있다.
한뼘을 갈라서서 같은 하늘을 제각각 바라보고 있다.
그래 각도가 다르면 같은 하늘도 달리 보이더라.
꽃도 제 나름의 각도를 갖고 세상을 본다.

Photo by Kim Dong Won

오전에 날씨가 좋아서 푸른 하늘을 찍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집을 나설 때쯤 하늘은 많이 흐려져 있었다.
나무들이 하늘을 초록으로 감싸두었다가
중간중간 조금씩 풀어서 봉우리와 함께 내 눈 속에 내준다.

Photo by Kim Dong Won

많은 사람들이 밤따는 재미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밤나무는 상당히 무성하다.
툭툭 밤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잘익은 밤이 그 윤기나는 밤색을 드러내보이며
배째란 듯이 벌어져 있으면
내가 자란 강원도 영월에선 “찰이 벌어졌다”고 했었다.
아직까지 찰이 벌어진 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오르다보니 검단산엔 다래도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검단초등학교에서 오르니 약수터만 세 곳이다.
각각 이름도 달리 붙어있다.
처음 만난 약수는 장수샘, 그 다음은 산곡샘,
그리고 마지막 약수는 검단샘이었다.
산 높은 곳에서 만나는 약수는
어찌 이런 곳에 물이 있을까가 신기하기만 하다.

Photo by Kim Dong Won

나무들이 제 높이로 덮어두었던 풍경을 활짝 열어보인다.
경기도 퇴촌 쪽이다.
저 곳의 한강변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많이 찍곤 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정상 바로 직전이다.
저만치 우거진 나뭇잎들이
마치 정상으로 들어가는 통로처럼 환하게 문을 열어놓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정상이라니, 그것도 느낌이 좋다.

Photo by Kim Dong Won

검단산 정상.
높이로는 567m.
한라산 높이가 1950m이고
성판악으로 오를 경우 850m 정도에서 등산을 시작하니까
거의 1000m를 넘게 올라가는 셈인데
그것을 생각하면 절반에 불과하다.
어떤 과격한 사람은 정상에 오른 첫마디가
“아니 여기가 벌써 정상이야? 에이, 이건 산도 아니다” 였다.
그럼 한 다섯 번 오르내려 보시던가.
낮으나 높으나 산은 다 산이고
산은 또 산마다 높이 뿐만 아니라 제각각 가진 것이 있거늘.
하긴 이러면서 나도 사실 한라산 다녀온 뒤로
높이가 낮다고 산을 깔본 경향은 있다.
너무 높은 산에 오르는 것도 좋질 않다.
산에 올라 겸손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뿌듯함으로 인하여
종종 그보다 작은 산을 우습게 보게 된다.

Photo by Kim Dong Won

검단산 정상에서 바라본 오늘의 하늘에는
새털구름이 가득이다.
날개를 저어 하늘이 통째로 날아가버리는 것은 아니겠지.
하늘은 그대로 있고,
하늘 저 멀리 비행기 하나가 날아가고 있었다.
비행기는 알아서들 찾아보시길.
또 하나 비행기로 추정되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잠자리다.

Photo by Kim Dong Won

내려오다 보니 나무가 가슴을 열듯 틈을 열어
미사리쪽 한강을 조금 보여준다.
자전거 도로가 연결되어 한강따라 이곳까지 자전거로 왔으면 좋겠다.

Photo by Kim Dong Won

길이 날렵하긴 하다.
차가 빠른 것이 아니라
날렵한 길의 속도에 휩쓸려 그리 빠르게 달리는게 아닌게 싶다.
중부고속도로이다.

Photo by Kim Dong Won

규모는 작지만 그래도 갈대밭 기분은 낼 수 있는 곳이 있다.
이곳에선 멀리 두물머리 쪽이 내려다 보인다.
역시 풍경이 좋다.
구름좋고 하늘 좋은 날 한번 올라야 겠다.

Photo by Kim Dong Won

항상 산에 가면 사람들이 호젓한 곳에
새소리가 요란한 곳이 있다.
내려오다 보니 검단산도 어느 한 곳에서
새소리와 새들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새 한마리가 눈앞의 나뭇가지에서 엉덩이를 흔들고 갔다.

Photo by Kim Dong Won

하남시 모습.
좋은 곳에 산다.
이런 산이 그냥 집나서면 바로 옆이니.
산에 오면 산으로 인하여 산밑의 동네가 좋아보인다.

Photo by Kim Dong Won

정말 오랜만에 검단산에 왔나 보다.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고
내가 옛날에 즐겨 다녔던 샛길을 모두 폐쇄되어 있었다.
내려온 마지막 부분은 상당히 평탄해서
그냥 저녁 산책로로 얼마든지 가볍게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이곳에 살았으면 나도 매일 저녁 이곳을 걸었을까.
가끔 찾는 내겐 그럴 것 같은 이곳이
옆에 두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또 나만큼 발걸음이 뜸한 곳인지도 모르겠다.
좋은 곳도 그런 듯하다.
가까이 두고 발걸음이 잦은 사람은 느낌이 무뎌지고
멀리 두고 뜸하게 한번 찾은 사람은
한번의 발걸음에 그곳의 느낌을 꼭꼭 눌러담아 간다.
세상이 그것보면 공평한 듯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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