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만에 미술관에 갔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이다.
2009 마니프 국제아트페어가 열리고 있다.
1층의 입구를 들어서자
붉은 문과 푸른 문이 사람들을 맞아준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 문앞에서 적잖이 당황한다.
그때 데려간 초등학교 2학년 진표가
갑자기 붉은 문을 열고 문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잠시 뒤 진표는 바로 옆의 푸른 문을 열고는 바깥으로 뛰어나왔다.
어른들이 문을 보며 당혹해하고 있을 때,
아이는 붉은 문과 푸른 문을 들락날락거리고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전시회에 가면 좋은 이유이다.
녀석은 백설공주가 엉덩이를 내놓고 있는 팝아트를 보고는
변태라는 딱지를 붙였고,
얇은 철판을 이어붙인 어느 작품 앞에선
육포를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가끔 내가 들려주는 얘기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뜨거운 검은 방(Black Chamber with Hot)이란 설치예술품 앞에서
나는 검은 색 털실로 만들었으니 검은 방이고,
점점이 붉은 색이 박혀 있어 뜨겁다고 했다.
녀석이 잠자코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장갑을 이어붙여 만든 작품인 블랙홀에서도
장갑을 끼면 우리 모두 정신없이 일을 하게 되지.
장갑은 우리들을 일로 끌어들이는 블랙홀이야라고 하자
왜 블랙홀이냐고 물었던 것에 대한 그 대답을 잠자코 받아들였다.
아이와 전시회를 가면 전시회장은
작품의 무대이자 놀이터가 된다.
아이는 작품 속을 들락날락거리며 돌아다녔고,
작품을 맛있게 씹어 먹곤 했다.
사람들도 작품 속을 들락거리는 아이를
재미난 듯 바라보고 있었다.
6 thoughts on “붉은 문과 푸른 문 – 2009 마니프 서울국제아트페어에서”
그 문 앞에서 멈칫하는 만큼
딱 그만큼 속세에 있었다는…
우리도 어렸을 때 저렇게 자유분방했나 싶어요.
밑에 사진의 진표 말인데요.
마네의 피리부는소년의 그 소년이 아닌가 싶어요.
진표가 피리부는 사나이도 아닌 피리부는소년을 알까 싶지만요..ㅋ
그 그림 생각나는데 정말 느낌 비슷한 것 같아요.
사실은 작은 나무 인형을 여러 개의 구획된 사각형 속에 넣어둔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 그 인형중 하나가 자기랑 똑같다며 자기가 그림 속에 있다고 나를 끌고 가서 보여주더라구요. 정말 비슷해서 그 옆에 세우고 사진도 하나 찍었어요. 매번 그림들만 전시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조각에 설치 미술까지 있어서 훨씬 재미났던거 같아요.
생각보다 멋진 포스팅이군요.
사실 뭐라 할 말이 없는 당황스런 작품이긴 했는데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색감이 훌륭하긴 하네요^^
진표의 멋진 퍼포먼스덕에 작품이 빛나고 있는건가요?
육포라.. 어찌 그런 상상을 ㅎㅎ
두번 그 작품 앞을 지나쳤는데
두번째 지나칠 때는 “나의 육포”라고 제목까지 바꾸더라구요.
실제로 저 문을 살짝 비집고 들어가길 바랐던 것이 화가의 생각이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무엇인가 색이 있는 방, 사실 방이란게 그 방에 사는 사람의 색을 반영하기 때문에 그 색이 바깥으로 내비치면 어떤 색을 갖게 되긴 할 거 같아요. 그런 점에서 어떤 방만의 내밀함 같은 것이 색으로 풍겨 나오는 것 같아요. 아님 귀를 기울이면 어떤 소리가 새어나올지도… 주변 스탭들이 다들 재미나다는 듯이 웃으면서 사진찍는 걸 지켜보더라구요. 들어가는 건 진표가 연출하고 나오는 건 사실 제가 연출했는데 포즈도 잘 잡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