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의 길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1월 7일 통방산 정곡사 망명당에서

통방산 정곡사,
망명당 올라가는 길목에 소나무 한 그루 서 있다.
소나무는 하늘로 몸을 뻗어 길을 냈다.
하지만 소나무는 내내 그 길만 끌고
하늘로 가지 않는다.
이쪽으로 한 길,
또 이쪽으로 한 길을 내주던 소나무는
어느 지점에 이르자
드디어 사거리에 선다.
그곳에서 소나무의 길은
네 방향으로 흩어졌다.
길은 여전히 하늘로 흐르고 있었지만
좌우로 갈래를 나눈 사거리의 길로 인하여
나무는 마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춤을 추고 있는 듯 했다.

망명당 올라 숨을 고르고
절벽 아래쪽 흘깃 거리다 보면
가파른 절벽에 소나무 한 그루 서 있다.
이번에도 역시 소나무는 하늘로 몸을 뻗어 길을 냈다.
하지만 소나무는 그 길을 곧장 끌고
고속도로처럼 일직선으로 내달리지 않는다.
아무 것도 거칠 것 없는 허공이지만
소나무는 마치 허공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허공 속의 허공을 짚어가며 길을 간 듯
구불구불 길을 간다.
곧장 내달렸으면 그냥 나무 같았을 텐데
구불구불 걸어간 길 때문인지
마치 허공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했다.

길을 가면서
한 나무는 춤추고 있었고,
한 나무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1월 7일 통방산 정곡사 망명당에서

11 thoughts on “소나무의 길

  1. 우리들은 절벽 위의 작은 소나무를 자수성가 소나무라고 불러요.
    계단 위 벽계천을 바라보고 있는 소나무야 누구라도 금방 알아보지만
    자수성가 소나무는 망명당에 자신을 내려 놓아야 비로소 보이거든요.
    두 번만에 만나신거 굉장히 일찍 발견하신 거예요.
    글과 사진 통방산 정곡사 꽃다울방에 옮기고 싶은데… 되겠지요?

    1. 옮겨도 무한증식을 하며 잘 살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죠. ㅋㅋ

      삼각대를 가져가지 않은게 좀 후회되는 날이었어요.
      계곡쪽으로 눈길을 끄는 풍경들이 있어서…

      이상하게 요즘은 산에 갔다오면 다리 아프고,
      밤에 불끄면 아무 것도 안보이고,
      먹는 거 거르면 배고프고,
      무거운 거 들면 힘들고… 왜 이러는지 이거 원.

    2. 통방산을 제대로 느끼려면 오두막의 구들장 쩔쩔 끓은 방이 필수랍니다. 그럼 산에 다녀와도 다리가 안 아프고, 밤에 불을 꺼도 하늘의 별이 더 잘 보이고, 배고프면 아궁이에 고구마 구워 먹으면 되고, 무거운 것 들어도 기운이 불끈불끈…
      몸과 마음을 다 내려놓고 빈둥빈둥, 뒹굴뒹굴해야 비로소 풍경도 빛을 발하는 곳이거든요.

    3. 구들장에 눕기는 싫고 누워있는 사람들은 한번 찍어보고 싶고, 밤에 산의 윤곽선 위에 걸쳐놓고 달님 사진은 한장 찍어보고 싶고, 아궁이에서 갓나와 뜨거운 기운을 폴폴 날리는 고구마의 노란 속살을 한번 몰래 찍어보고도 싶고, 무겁다 싶으면 거 DP2 좀 줘보세요 하고 가뿐한 걸로 바꿔서 몇장 찍어보고 싶기는 합니다요. ㅋㅋ

    4. 제겐 사실 무지 어려운 일이예요. 요즘으로선. ㅜㅜ
      일 마무리되면 그때 신세좀 질께요.
      치다가 ㅁ자 빼먹어서 신세 조질뻔 했네요. ㅋㅋ

    5. 제겐 사실 ㅜ지 어려운 일이예요. 요즈으로선. ㅜㅜ
      일 ㅏㅜ리되면… 아무리 읽어도 해독이 안돼 포기했는데,
      그때 신세조 질께요.

      제가 좀 늦어요. 이제야… ㅠㅠ

  2. 삼거리, 사거리로 뻗은 소나무가 내는 길,
    춤추는 소나무, 온 몸으로 그림 그리는 소나무.

    가끔 한 방향 보고 일렬로 서서 대열이탈 말고 걸어라고 하는 세상에서 숨이
    안 쉬어져요. 오늘 아침 자유의 호흡으로 서 있는 소나무들이 인공호흡 해주네요.
    아, 이제 숨이 좀 쉬어지네. ㅎㅎㅎ

  3. 그러고보니 벤쿠버에서는 소나무도 별로 못 보고, 은행나무도 별로 못보고..
    동원님 블로그에 오면 이곳과 비교를 자주하게 되고 평소에 몰랐던 걸
    깨닫게 되는 것 같아서 좋네요.

    그나저나, 혹시 seamonkey아세요? cnet보다가 알게된건데 불여우나 사파리보다보다 훨씬 빠르고 좋은 것 같네요. 오블의 경우 바다원숭이로도 사진 업로드가 안되기는 하지만..

    여기서 다운 받으실 수 있네요. http://www.seamonkey-project.org/

    써본지 10분밖에 안되었지만 마음에 드네요.

    1. 지금 바다원숭이에서 댓글쓰고 있어요.
      이 프로그램은 메일 뉴스그룹이 다 통합되어 있네요.
      그러면서도 빠른 프로그램은 처음봐요.
      제가 브라우저는 이것저것 써보는데 이 프로그램은 처음이예요.
      감사.

      이번으로 두번째 간 곳인데 왜 처음 갔을 때는 저 두 소나무가 눈에 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림이나 음악처럼 자연도 자주 가서 감상을 해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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