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또 그녀와 제주에 갈 기회가 생기면
난 그때도 또 한라산에 오를 거다.
이번에는 백록담에 가서
그곳의 물로 갈증난 목이라도 축일 태세로 소갈증을 앓으며
정상을 향해 옮겨놓던 급한 걸음을 버리고
그녀의 느린 걸음에 내 걸음을 맞출테다.
앉기 좋은 바위만 나타났다 하면
그곳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엉덩이 밑에서 뭉개진 시간으로
두툼한 방석 하나쯤 충분히 남겨놓을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쉬며쉬며 한라산을 오를 거다.
올라가는 시간보다 길가에 앉아 쉰 시간이
훨씬 더 많아
이게 산을 올라갔다 내려온 건지
아님 산에 가서 쉬다가 온 건지 헷갈릴 정도로
그렇게 쉬엄쉬엄 산을 갈거다.
물론 좀 일찍 출발하거다.
또 짐은 최대한 덜어내 몸을 가볍게 할거다.
날이 어두워졌을 때를 대비해 전등을 챙겼는지도 확인할 거다.
그리고 올라가선 백록담 곁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 뒤
그 험하다는 관음사 코스로 다시 또 내려올 거다.
그 길에 내가 보아둔 그녀에게 줄 선물이 있다.
나는 내려오는 길에
왕관능이 올려다 보이는 길에서
그녀를 그 앞에 세우고 사진을 한 장 찍을 거다.
그녀의 머리를 왕관에 잘 맞추어
그게 정말 왕관이기라도 한 듯,
또 마치 그 왕관의 주인이 그녀이기라도 한 듯
그렇게 사진을 한 장 찍어 그 왕관을 그녀에게 선물할 거다.
한라산의 고지대가 멀리는 30만년전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그녀에게 이건 내가 30만년전에 준비해둔 선물이라며
아주 크게 생색을 낼 꺼다.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준비를 해두었냐며
그녀가 눈치없이 대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을 던지면
사랑이 국경만 초월하는게 아니라 시간도 초월하는 것이라며
난 사랑한 뒤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멀리 30만년전으로 시간 여행도 마다않을 수 있었다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 뻥을 칠거다.
맘 좋은 그녀는 그 정도 대답이면
아마도 이게 어디서 또 뻥을 치냐고 나오지 않고
아마 웃음으로 넘겨줄 거다.
나는 다시 그녀와 함께 제주에 갈 기회가 생기면
그때도 또 한라산에 오를 생각이다.
이제 그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
30만년전에 마련해둔 그녀를 위한 선물,
바로 그녀의 왕관을 카메라의 힘을 빌어 그녀에게 선물하기 위함이다.
그녀가 좀 의아해 할 수도 있다.
한라산 오르내리기가 그렇게 힘들던데
왜 올해 갔을 때 선물하지 않았는지.
근데 그게 30만년전의 기억이라
기억도 그 정도로 오래되면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법이다.
한 3년전의 기억도 흐릿하게 뭉개져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치만 찍어온 한라산의 사진을 들여다보다
드디어 나는 그 30만년전의 기억을 기억해내고 말았다.
내가 다음에 한라산을 가는 이유는
그곳의 백록담도 아니고,
정상에서 바라보는 구름의 바다도 아니며,
오직 그녀를 위해 마련해둔 30만년전의 선물,
그녀의 왕관을 그녀에게 선물하기 위해서이다.
10 thoughts on “한라산 왕관능”
해리는 쫌 세게 흰소리 하면 ‘뻥 까시네~’하더군요!
그래서 무식하다며 꿎이었더니 ‘뻥 치시네~’하던데 이정도 수위는 일반적인거군요.
저도 가끔은 욕설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속어 정도는 시원하게 하고싶은 욕구가 용솟음 친다는… ㅡ,.ㅡ
제 조카는 아직 그렇게 강한 어감까지는 안가고
그건 뻥이야 정도에서 머물고 있는데
애가 그러다 보니 그것도 한웃음 주기는 합니다.
가끔 말의 수준을 좀 낮추면 시원하기도 하고,
그게 이상하게 웃기기도 하고.
낮추면 굴러가서 그런 건지.. ㅋㅋ
드러내 놓고 하는 아부가 무지 부러웠는데, 공개적으로 아부 받는 포레스트님이 무쟈 부러버는데… <쿵> 하면 뒷집 호박 떨어지는 소리… 잘해 볼려고 준비중인 빠꾸나인님…홧팅입니다요~~~
헐, 잘되면 이 블로그 폭파됩니다.
뭐야, 빨리 말해.
뭘 또 잘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든거야?
빨리 말하면 용서해준다. ㅋㅋ
헐, 눈치 천단이다.
잘못한 건 없구… 잘못해볼려구 준비 중. ㅋㅋ
다음에 새벽일찍 올라가면 저 왕관은 바칠 수 있겠네요.
근데 쉬엄쉬엄, 엉덩이 방석을 만들만큼 뭉게면서 다녀올 시간이 될까요?
제가 눈치없이 깨는 소릴 하고 있는거죠?
조 사진에다 그녀를 살짝 올려 놓으시면 바로 왕관선물이 되는거네요 ㅎㅎ
그러고 보니 걱정도 되는 구만요.
가서 왕관만 가져오라고 할까봐요.
게다가 이번 D700은 다중 촬영 기능이 있거든요.
한장에 겹쳐서 찍을 수가 있다는…
그녀님께서는 담에 제주도 가실 땐 뒷목 근육을 확실하게 만들어 가셔야겠어요.
저 왕관 잘못 쓰셨다가 목디스크 걸리기겠다는…..ㅋㅋㅋ
처음엔 분명 뻥으로 시작하셨는데,
읽으면서 저도 분명히 뻥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느.새.
글의 마지막에 30만년 전의 기억이라 지난 번 가셨을 때 잊어버리셨단 부분에선
‘아~ 그래서 잊어버리셨구나’ 이러고 있는 제 자신…. 아 쫌 제대로 속은 것 같애서
껄쩍지근 하기도 하구요.ㅋㅋㅋ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반지는 꽃반지,
목걸이는 조팝나무 목걸이. ㅋㅋ
세상에 선물거리는 널려있는데
당사자는 별로 안좋아하는 것 같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