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이름은 김순옥이다.
7월 5일 수요일, 날씨는 흐려있었다.
그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자신들의 권익 보호에 소극적인 정부를 상대로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을 청구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16살에 끌려가 온갖 고초를 다 겪은
이옥선 할머니의 증언이 있었다.
그 증언을 듣고 있던 김순옥 할머니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이옥선 할머니의 증언은
김순옥 할머니가 겪었던 과거의 기억을 불러 일으킨다.
그렇게 하여 잊지 못하는 과거는, 아니 잊을 수가 없는 과거는
할머니에게서 눈물이 된다.
김순옥 할머니의 눈물은 그 눈물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과거를 잊지 말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과거를 잊거나 버리면 할머니의 눈물은 더욱 슬퍼질 것이다.
7월 8일 토요일, 오사카에서 여러 명의 일본인들이
경기도 퇴촌에 자리잡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과 <나눔의 집>을 찾아왔다.
<나눔의 집>에선 현재 아홉 분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함께 생활하고 계시다.
그날 찾아온 일본인 가운데 아시하라 할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그 날도 이옥선 할머니의 증언이 있었다.
증언을 듣던 아시하라 할머니가 북받쳐 오르는 눈물 앞에서 입을 막는다.
이옥선 할머니의 증언은 이시하라 할머니로 하여금
할머니의 아픈 과거에 위로의 손을 내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그렇게 과거 일본이 저질렀던 죄악에 대한 미안함과
그 시대의 피해자에 대한 위로의 마음이 이시하라 할머니에게서 눈물이 된다.
아시하라 할머니의 눈물은 그 눈물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위안부 할머니의 아픔을 찾아보고 그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동참의 눈물이 없다면 과거는 잊혀질 것이다.
7월 11일 화요일 오전, 한성여고 학생들이 <나눔의 집>을 찾아왔다.
할머니들의 숙소 앞에 마련된 툇마루에 앉아 얘기를 나누었다.
이옥선 할머니 얘기를 듣던 한 학생이 눈물을 훔쳤다.
학생의 이름은 이진희였다.
학생의 얼굴엔 웃음과 눈물이 뒤섞여 있다.
웃음은 할머니의 슬픈 삶을 위로하려는 학생의 안간힘이다.
슬픈 삶에 눈물을 보태면 할머니의 삶이 더욱 슬퍼질 것을 염려하여
학생은 웃음으로 할머니의 슬픈 삶을 중화시키려고 한다.
눈물은 할머니의 억울하고 슬픈 과거를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 눈물이 있기에 할머니의 과거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이진희 학생 이외에도 얼굴에 눈물이 번진 학생은 여럿이었다.
학생들은 대학교에 들어간 뒤,
꼭 다시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7월 11일 화요일 오후, 오사카에서 여러 명의 일본인들이 <나눔의 집>을 찾아왔다.
그 일본인들을 이끌고 온 가이드는 한국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의 이름은 이현순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돌아본 일본인들은 할머니의 증언을 듣고자 했다.
이옥선 할머니가 증언에 나섰다.
보통은 할머니가 증언을 할 때 역사관의 연구원으로 있는
무라야마 잇페이라는 일본인이 통역을 하지만
이현순씨는 자신이 통역을 맡겠다고 했다.
그러나 무리없이 진행되던 통역은 중간에서 막히고 말았다.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본군이 위안소에서 조선 처녀를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칼로 찔러 살해한 얘기가 나오자
이현순씨는 목이 메어 말을 잊지 못했다.
결국 그 대목은 잇페이씨가 통역해 주는 수밖에 없었다.
목이 메인 이현순씨의 눈에는 눈물이 번져 있었다.
이현순씨의 눈에 눈물이 번졌을 때
이옥선 할머니는 그냥 낯모르는 할머니가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각각 다른 자리, 다른 시각에 있었지만
네 눈물은 연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하며, 상처의 치유에 동참해야 한다”고.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과거를 잊지 않겠으며, 할머니의 아픔이 곧 우리 할머니의 아픔”이라고.
(나눔의 집 홈페이지: http://www.nanum.org
또는 http://www.cybernanum.org
나눔의 집 후원 및 자원봉사 문의 전화: 031-768-0064)
4 thoughts on “눈물의 연대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기록”
저의 표현에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글 세줄을 삭제 해 달라 하셔서 세줄만 삭제 하려했지만
그것만 지울 수가 없네요.
어쩔 수 없이 다 지웠습니다.
제가 부족한게 너무 많습니다.
부족한 것을 채우려 저는 이제 부산 태종대로 갑니다.
무더운 여름철 건강 유념하시길.. ^^
안녕히 계십시요.
건강하게 다녀오시길.
평화를 사랑하는 일본인들도 많아서 감정적 얘기는 좀 그렇더라구요.
어제 <나눔의 집>에서 만났던 일본인들은 오늘 일본 대사관앞에서 또 만났어요. 수요 집회에 나와서 함께 시위를 했어요. 일본이 밉다가도 그런 일본인이 자꾸 생각이 나서요.
우리나라에서만 2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는데 정말 놀라고 말았어요.
결혼 안한 처녀들만 끌려갔다고 알고있었는데 그것도 아니더군요.
가정이 있는 부녀자들까지 끌고갔다니..
한낱 과거의 어찌할수 없는 아픔으로만 묻어버리기엔 너무도 큰 사건인데.
어제도 일본인들이 다녀갔는데
증언을 통역하던 가이드가 중간에 목이 메어 말을 옮기질 못하더군요.
취재는 계속해야 하고, 증언을 들으면 삶이 너무 처참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