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사랑해서 같이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 20년쯤 같이 살고 나면
우리가 사랑해서 같이 산 것인지,
아니면 20년쯤 같이 살았으니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 둘의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사랑해서 같이 살았다면
같이 산 20년을 보장한 것이 사랑이 되지만
아주 오래 같이 살다보면 상황이 그렇게 쉽게 풀리질 않는다.
다시 말해 20년쯤 같이 살다 보면
사랑이 점점 더 공고해지고 명확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오히려 점점 더 희미해져
결국은 우리에게 정말 사랑이 남아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워지고 만다.
때문에 처음에는 명확하고도 분명한 사랑으로
우리의 20년, 아니 우리의 영원을 보장하려고 했던 우리들이
이제는 같이 살아온 세월의 진폭으로 사랑을 보장받으려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러니까 세월 아래 사랑을 주춧돌로 끼워놓고 함께 살기 시작한 우리가
20년의 세월 뒤엔 세월을 아래로 내려 사랑의 주춧돌로 삼으려 한다.
20년을 산 뒤에도 사랑하기 때문에 같이 산다는 마음에
한치의 의혹도 없이 분명한 사람들이 있다면
내게 있어 그들은 처음 만났던 사랑의 순간에서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꾸준히 사랑을 쌓았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은 처음 만났던 사랑의 자리에서
그냥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랑에 관한 내 경험은 그와는 전혀 다르다.
처음에는 확실했지만
오래 살면서 점점 흐릿하게 뭉개지다가
20년쯤 지나고 나니
사랑이 둘을 같이 살게 했는지
아니면 둘이 20년 정도 같이 살았으니 그게 사랑인지
앞뒤가 마구 헷갈리는 것이 사랑이다.
올해로 그녀와 20년을 같이 살았다.
20년전 그때는 우리가 같이 살아갈 세월의 맨앞에 사랑을 세워놓았는데
20년후 돌아보니 세월이 너무 아득하여
그때 우리의 세월 맨앞에 세워두었던 사랑도 아득하다.
너무 오래 같이 살면 세월에 밀려 사랑도 아득해진다.
무시 못할 세월의 힘이다.
그래서 나는 너무 오래 같이 사는 것은 반대다.
같이 사는 세월을 시작할 때 그 앞에 사랑을 세워두고
살다가 뒤돌아봐도 그 사랑이 희미하게 보일만한 세월의 거리까지만
같이 살았으면 싶다.
요즘 다들 너무 오래 같이 산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살아보니 몸과 세월을 앞질러 나갈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 다음의 사랑은 또 살아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사랑이 어떤 얼굴로 우리 앞에 서서
우리를 놀라게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8 thoughts on “20년을 같이 살고 있는 여자”
아무개씨 왈.
세월이 지날수록 내 주위의 사람들이 나를 점점 좋아하는 것이 성공이라고 하더군요.
성공을 사랑으로 치환해도 무리는 없어 보입니다.
가끔 아리까리하지만 또 그 맛에 엄배덤배 삽니다.
좀더 살면 무엇인가 분명해 질까요.
자꾸만 모든 것이 흐릿하기만 합니다.
11일 일정을 생각해봤는데, 괜찮으시면 털보님 부부하고 저하고, 이충렬샘하고
그렇게 넷이 인사동에서 다섯시쯤 미리 만나 가벼이 차를 한잔 하고,
이충렬샘과 털보님은 오블 번개에, 저는 집으로 오든지 오블 번개에 가든지
그때 상황봐서 자유롭게 결정하고요.
이충렬샘 그날 뱅기타고 귀국 하셨으니, 강동으로 오는 것보다는 호텔이
인사동 근처이니 그것이 덜 번거로울듯 해서요. 의견 어떠신지요?
블로그에 댓글 달아놨어요.
그럼… 인사동 다섯시로 해요. 뱅기타고 먼길 오신 구라샘도 강동으로 오셨다 다시 인사동으로 가는것 보다는 그것이 덜 번거롭고 하니… 넷이 만나 모두들 차가 없으니 막걸리 한잔 하거나 차 한잔하면서 수인사 트고, 그녀와 저는 인사동에서 잠깐 놀던지 구경하던지 하고 전철타고 돌아오고, 털보님과 구라샘은 함께 오블 모임에 가셔서 떠들썩한 연말 보내시구요. 여자만 꼬막이 제맛일텐데도 싶구요. 암튼… 11일 오후 다섯시에 인사동에서 뵈요.
접수했습니다.
처음 만난 날 현대인의 수명에 대해 나눴던 수다가 기억납니다.
20년을 살면 법적으로 그만 살게 해야 한다, 일부일처제는 평균수명이 오십을
넘지 않았을때 생긴 현대에 맞지 않는 제도다 그런 얘기를 나눴었지요.
근데… 털보님 부부 자신들의 생각은 어떤지 몰라도,
아직도 여전히 닭살부부인거 아시는지요. 20년이 지났는데,
그런 닭살 유지하는 부부 그리 많지 않답니다.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 부부, 문제가 많은 부부인거 혹 아시나요?
겉으로 보는 것과 속은 많이 다른 법이니까요.
싸움을 않는 부부가 있다고는 믿질 않아서… 다만 잘 은폐하고 있을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