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여자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2월 5일 집에서

그녀가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동안 글자들은
그녀의 귀가 아니라 그녀의 눈에 속삭인다.
글자들의 내면에 품은 속깊은 얘기를,
그것도 아주 조용히,
거의 들리지도 않는 내밀한 소리로.
그러니까 책을 읽을 때,
그녀는 귀대신 시선을 내려보내
글자들과 마주하고 책의 얘기를 듣는다.
눈으로 들어온 글자들은
눈에 어른거리는데 그치질 않는다.
책을 읽을 때 글자들은
눈으로 들어와선 얘기로 뒤바뀌고
그 다음엔 귀로 흘러간다.
모든 얘기는 귀로 들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통 얘기는 귀에 담기지만
책을 읽을 때면
눈에 담긴 뒤 비로소 귀로 흘러간다.
책을 읽을 때
간혹 옆에서 불러도
잘 모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눈만 가 있는 듯 하지만
그녀는 귀도 책의 얘기에 함께 모으고 있다.
책의 얘기는 특히
목소리가 너무 낮아 잔뜩 귀를 기울여야 한다.
책은 눈으로 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귀로 듣는다.
너무 시끄러우면 사람들이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기도 하다.
귀를 잘 여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특히 시끄러운 곳에선 책을 잘 읽지 못한다.
그녀가 귀와 눈을 모두 모으고
책을 읽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2월 5일 집에서

4 thoughts on “책읽는 여자

  1. 전 요즘 책이 잘 안 읽히고 있어요.
    읽고 있는 책이 어려워서인지 잡생각이 많아서인지.
    도서실에 갈까하는 생각도 한다니깐요.

    귀와 눈을 모두 모으고 책을 읽고 있는 그녀가 부럽군요.

    1. 저는 어지간히 남들 책 읽기를 싫어하는 편인데
      간만에 월간지에서 남의 글 한편 읽어보려고 했더니
      좀 신경질이 나긴 하더군요.
      그 안에 사회적 죽음이란 말이 나왔는데
      아무리 문맥을 봐도 도대체 그걸 뭔뜻으로 썼는지 이해가 안가더라구요.
      생물학적 죽음, 철학적 죽음, 예술적 죽음, 뭐, 그 정도는 이해가 가는데 사회적 죽음은 도대체 뭔지…
      글을 써놨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그냥 말을 더럽게 뱉어놓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몇줄 읽다가 글을 왜 뱉아놓고 지랄이야 하고는 읽는 걸 관둬버렸죠.
      그래도 오늘 일하다가 받아놓은 어느 시인의 시집 원고 3분 1 가량을 보았는데 그건 아주 좋더라구요.
      역시 제 취향은 시집이나 아님 컴퓨터, 과학이란 생각이 들긴 했어요.

    2. 시집+컴퓨터+과학이라…..

      요런 조합은… 쫌…하이튼…
      서점에서도 시집하고 과학책은 디게 멀리 떨어져 있잖아요.
      그니깐… 가끔 털보님은 시인 같기도 하시고 어떤 때보면 과학자 같기도 하시고요… #$^$%#&#$

      ㅋㅋㅋ

    3. 이게 되게 웃기는 게요,
      과학과 예술이 별로 상관이 없고
      서로 으르렁대며 평행선을 달리는 거 같은데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렇질 않고
      과학이 바뀌면 그에 따라 예술적 사조가 바뀌었다는 연구가 있어요.
      말하자면 과학이 인간을 어느 정도 자유롭게 해주면
      에술 사조도 그에 따라 지평을 넓혀갔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주목하고 있는게 요즘의 난해한 젊은 시인들과
      컴퓨터가 사람들에게 가져다준 자유의 진폭 사이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예요.
      난 그 난해를 어렵다가 아니라
      언어가 자유롭게 방목된 세상으로 보거든요.
      컴퓨터도 많은 경계를 무너뜨린 측면이 있어요.
      그래서 언제 한번 그 둘의 상관관계를 다루어볼 예정이예요.
      물론 방대한 작업이라 언제일지는 장담을 못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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