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그녀를 만나러 가다

왜 자전거를 타고 그녀를 만나러 가고 싶었던 것일까.

Photo by Kim Dong Won

그녀가 사는 곳은 멀다.
사는 곳이 멀먼 마음이 주저스럽다.
그 망설임 때문에 자꾸만
발길이 멈칫거린다.

Photo by Kim Dong Won

하지만 일단 길에 들어서면
길이 사람의 마음을 끌고 가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길에 들어서면
멈칫거리던 마음이 길을 따라 곧게 펴지곤 한다.
길이 멀리까지 곧게 뻗어 있을 땐 더더욱 그러하다.
곧은 길은 마음의 흔들림을 길의 한가운데로 잡아준다.

Photo by Kim Dong Won

지하철을 타고 갔어도
1시간 30분은 족히 걸릴 먼거리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니 더더욱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울러 중간부터는 길도 모른다.
하지만 난 천천히, 그리고 오랜 시간을 달려 그녀에게 가고 싶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바로 눈앞에서 왜가리를 만났다.
눈빛은 나를 경계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곧바로 날아가지는 않았다.

Photo by Kim Dong Won

조금 더 길을 가자 이번에는 능소화가 한참 동안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Photo by Kim Dong Won

다리를 가운데 두고
다리 아래쪽으로는 다리의 다리가,
다리 위쪽으로는 다리의 가로등이 다리를 따라 걷고 있었다.
다리의 보폭은 성큼성큼 그 보폭이 넓었으며,
가로등의 보폭은 종종 걸음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나는 강의 중간쯤에서
강의 북쪽으로 넘어갔다.
강의 모든 다리가 정강이만 강 속으로 담근채
그 길고 곧은 다리를 뽐내고 있었지만
내가 건너간 다리는 거의 강의 물살에 스칠 듯
배를 아래쪽으로 낮게 깔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나는 높고 화려한 황금색 건물이 건너다 보이는
강의 둔치에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오늘 저녁 약속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 아마도 내가 도착할 즈음
그곳 도시에서 그녀의 자리는 비어 있을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철교를 타고 지하철 한대가 지하철 역으로 들어온다.
지하철은 매일매일 수도 없이 지하철을 들이키고 토해낸다.

Photo by Kim Dong Won

다리의 난간에 꽃이 피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내가 알던 길은 끝나고
생전 처음 가보는 길로 들어섰다.
자전거 길에도 오프로드가 있다.
자전거 타이어의 밑에서 흙이 밟히는 소리가 자글자글 났다.

Photo by Kim Dong Won

비온 뒤의 흙길은 매우 질척거렸다.
진창길을 한시간 정도 갔을 때
슬그머니 후회가 밀려들었다.
‘돌아갈까.’
하지만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먼거리를 와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모르는 길은 실제보다 훨씬 더 멀다.
위쪽에 멀쩡하게 다리가 있는 것도 모르고,
어설프게 놓아둔 돌다리를 건너 길을 찾아갔다.

Photo by Kim Dong Won

중간에 물었더니 이 길을 따라 곧장 가라고 했다.
곧장 가지 않을 수 없는 아주 곧은 길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거리의 표지판에서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의 이름이 나타났다.
아저씨 한분이 자전거를 타고 길을 가고 있었다.
나말고도 자전거를 타고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큰 반가움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드디어 나는 내가 자전거로 가고자 했던 바로 그곳에 도착했다.
그곳에 그녀는 없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시간은 저녁이었지만
아직 태양이 한뼘이나 남아있었다.

나는 왜 굳이 자전거를 타고 그녀를 만나러 가고 싶었던 것일까.
마음을 서둘러 지하철을 타고 가면
나는 잠깐이지만 그녀를 만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내 마음을 그녀로 채우려는 욕망이 그러한 마음의 서두름을 낳는다.
나는 나를 그녀로 채우기보다
그냥 나로 나를 채우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은
그녀로 나를 채우기 위한 길이라기 보다
나로 나를 채우기 위한 길이다.
나는 그 길에서 왜가리를 만났고,
강변에서 저글링을 열심히 하던 한 남자를 보았으며,
흐린 하늘의 한귀퉁이를 찢고 내려오던 쨍한 햇볕을 보았다.
그녀가 사는 곳에 도착했을 때쯤
나는 이미 내가 그녀에게 간 하루의 길로 가득차 있었다.
아마도 내가 그녀로 나를 채우려 했다면
나는 그 길의 끝에서 텅비어 버렸을 것이다.
그녀가 그곳에 없었으니까.
생각해보면 나로 누군가를 채우려 하거나
누군가로 나를 채우려 했을 때,
항상 집착이 싹텄고,
그 집착이 오히려 사랑의 뿌리를 뒤흔들었던 기억이다.
나는 그런 누를 다시 범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텅 비어버린 도시를 잠시 서성거리다
나는 자전거를 역에 세워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요며칠 많은 비가 내렸다.
내 자전거는 이 비를 모두 견디며 잘 지내고 있을까.
다음에 자전거를 가지러 갔을 때
또 그녀가 그곳에 없더라도
난 별로 걱정이 없다.
적어도 내 자전거가 날 반갑게 맞아줄 테니까.

2 thoughts on “자전거를 타고 그녀를 만나러 가다

  1. 그 역에 물난리가 났었는데, 그래도 별탈없이 잘 있겠죠?
    어떤 자전거일까?
    잘 있는지 확인이라도 해볼 수 있을텐데 말예요.

    의미있는 시간 보내신것 같아 저도 좋네요.

    1. 나도 그 얘기는 들었는데, 물난리는 위에 난 것이 아니라 아래쪽에 난 것이니까 자전거는 별탈이 없겠죠, 뭐.
      아마도 자전거는 뒤쪽 타이어는 바람이 다 빠져있을 거예요. 그 자전거가 뒤쪽 타이어만 바람이 자꾸 빠지거든요. 근처의 자전거 가게를 알아놓았으니 거기서 바람 넣으면 될 듯.
      제 자전거는 뒤의 안장에 자물쇠가 묶여 있어요. 그리고 앞 바퀴에 또다른 자물쇠가 있구요. 뒤의 자물쇠가 고장나는 바람에 그냥 묶어두는 수밖에 없었어요. 두 개의 자물쇠가 있는 건 내 자전거밖에 없을 듯.
      자전거도 내가 그리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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