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는 겉으로는 살이 찌는 법이 없이
처음 마주했을 때의 모습 그대로지만
쓰다 보면 속살이 찐다.
딸아이가 일본으로 유학가게 되면서
저희 큰고모로부터 맥북을 새 컴퓨터로 선물받았고,
그동안 아이가 쓰던 컴퓨터는 내 손으로 넘어왔다.
펜티엄 4였고, 속도는 1.7GHz 짜리였다.
내장하드는 60기가 짜리가 장착되어 있었다.
메모리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시스템 정보에는 749메가로 나온다.
그러고 보니 256메가짜리 램을 3개 끼워넣었던 것 같다.
나는 독립된 서버 하나를 갖고 싶었다.
원래는 맥을 서버로 쓰고 있었는데
이게 동시에 내가 작업하는 컴퓨터이기도 하다보니 여러모로 불편이 따랐고
맥은 서버 상태에선 파일명이나 디렉토리의 한글이 깨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리하여 나는 딸에게서 건네받은 컴퓨터에
난생처음 이런저런 리눅스를 깔아보기 시작했다.
리눅스는 종류가 하도 많아서
그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거의 마지막 낙찰은 데비안으로 기울어졌다.
그리하여 나는 데비안을 깔고 독립된 서버를 구축했다.
아주 쾌적하게 잘 돌아갔다.
데비안을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 데비안은 화면의 그래픽 인터페이스가 좀 거칠었다.
몸매는 날씬하고 움직임도 빨랐는데 그다지 예쁘지는 않았다는 얘기이다.
생긴 것을 밝히는 것은 컴퓨터의 경우에도 여전했다.
그래서 내가 눈을 돌린 것이 우분투이다.
우분투도 태생은 데비안이어서
무슨 큰 차이가 있으려나 하는 생각으로
내게 생긴 컴퓨터의 최종 OS를 우분투로 결정했다.
나는 Command Line 체계에 익숙하질 않아
우분투 가운데서 서버 버전을 깔지 못하고
눈으로 보며 시각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데스크탑 버전을 깔았다.
내가 깐 처음의 버전은 9.0이었다.
그때가 9.0이 막 나온 때였다.
이건 내가 쓰는 Mac의 OS 만큼이나 화려했다.
당연히 데비안보다 느려졌다.
같은 컴퓨터였지만 그 안에 들어간 OS로 보자면
데비안에 비하여 우분투는 비대한 체구의 소유자였다.
겉으로 보자면 아무 변화가 없으니
이건 속살이 찐 뚱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편을 느낄 정도로 움직임이 느리진 않았다.
거의 아무 불만없이 쓰게 되었다.
사실 독립된 서버 하나 가졌으면 했던 나로선 편리하기 이를데 없었다.
한글 문제도 깨끗이 해결되었다.
나는 그곳의 웹서버에 사람들 만나서 찍은 사진들을 올려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끼리만 은밀하게 나누었다.
게시판도 만들어 회사일을 할 때도 그 게시판을 이용하여 작업을 했다.
일단 내 집구석에 있는 서버라
비밀이 잘 유지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런데 최근 우분투가 9.10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업그레이드 할 것인가를 놓고 잠시 고민했다.
이 컴퓨터가 업그레이드된 비대한 몸집의 우분투를 감당할 수 있을지
그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에라 모르겠다 싶은 심정으로 업그레이드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그 결과는 시동 시간 10분!
켜지는데 10분이 걸린다.
속살이 쪄도 어떻게 이렇게 비대해 질 수가 있는 것일까.
처음에는 고장이 났는 줄 알고
전원 스위치를 세 번이나 껐다가 다시 켰다.
나중에는 그냥 하염없이 기다리게 되었고,
그랬더니 드디어는 첫화면이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속살이 쪄도 이렇게 쪘을 줄이야.
물론 방법은 있다.
컴퓨터는 속살이 쪄도 컴퓨터를 새로운 것으로 바꾸기만 하면
곧바로 비대한 체구의 OS가 날씬한 몸매로 돌변하면서
날렵한 움직임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성형으로 몸을 바꾸지만
컴퓨터는 몸을 아예 통째로 바꾸면
속살의 문제를 깨끗이 해결할 수 있다.
지금 나의 경우엔 비대한 체구의 OS가
자신의 몸을 작은 옷 속에 구겨넣고 살고 있는 처지이다.
옷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그런데 이게 놀라운 것은 켜지는데는 10분이 걸리지만
일단 켜지면 그때부터 별로 느린 느낌 없이 잘 움직인다는 것이다.
다만 출발선 상에 서는 시간이 느린 것이 흠일 뿐이다.
최근에는 아찔한 순간도 겪었다.
전기가 나가면서 모든 컴퓨터들이 예기치 않게 꺼지는 사고를 겪었는데
맥은 모두 다시 정상적으로 시동이 되었지만
오직 우분투 하나만 시동이 되질 않았다.
이것저것 만져 보았지만 익숙치를 않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파악이 되질 않았다.
하루 종일 끙끙대다가 결국 설치 CD를 다운받아 굽고 그 CD로 시동을 했다.
우분투는 설치 CD가 LiveCD 역할도 해서
일단 정상적으로 첫 화면을 보여준다.
그 상태에서 여기저기 찔러보다 재시동을 했다.
그랬더니 기적적으로 시스템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물론 여전히 느리게 10분이나 걸렸다.
처음에 나는 그 통에 좋은 복구 방법을 하나 터득했는가 했다.
그러나 그런 기쁨도 잠시,
며칠 잘 돌아가던 우분투가
결국은 제 몸집을 이기지 못했는지 뻗어버렸다.
서버에 있던 자료 다 날려먹었다.
잠시 서버는 잠재워두어야 할 것 같다.
이제 우분투는 포기하고 다시 데비안으로 돌아가야할 것 같다.
컴퓨터는 겉으로는 똑같아도
사용하면서 OS나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하면
그때부터 엄청나게 속살이 찐 뚱뚱이가 된다.
컴퓨터는 눈에 보이지 않게 비대해지고 느려진다.
날렵하던 몸매의 여인은 어디로 가고
우리는 속살찐 뚱뚱이와 함께 살게 된다.
12 thoughts on “속살찐 뚱뚱이”
예전에 미켈란젤로 생일날 제 피씨에 강림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름 중요한 데이터가 많아 회사비용으로 복구하려고 했는데
어느 정도 복구될지도 장담을 못하고 비용도 워낙 비싸서 포기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피씨가 백지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니까 엄청 가볍게 돌아가더군요.
그 뒤로 중요한 데이터는 디스크에 담아 보관을 하는 버릇이 생겼고,
가끔 미켈란젤로가 방문해서 아주 깨끗하게 만들어 주길 고대하는데
백신을 이기지 못하는지 다시 강림을 하지는 않더군요.
뚱뚱해졌을 때는 백지상태에서 새출발하는 것도 나쁘지 않더군요.
새로 시작을 하려고 해도 우분투는 무리인거 같아서
결국 데비안으로 새출발했습니다.
꼭 조강지처에게 돌아온 느낌입니다.
무슨 이야길 하시는 건지 감은 잡겠는데,
단어나 개념이 생소한 게 많아 조금 어렵네요.^^
그래서 결국 속살쪄 속터지지만 그 뚱뚱이한테 다시 정을 주고
행복하게 살기로 했다, 이 얘기시죠?
미모에 반했다가 고생하는 거라서
이번에는 그냥 날렵한 몸매의 옛여인을 다시 찾아
새로운 출발을 하겠다는 얘기인데요.
컴퓨터 세계에선 옛여인이 군더더기 없는 몸매를 그대로 유지하거든요.
아고..쥔장은 그걸 여인에게 갖다 붙여서
여인들 껄쩍지근 하게 하시고..
iami님은 확인사살 까지..
남편몸매를 부르는 소리..우짜실라고.
저는 남자라 여인에 비유하고
여자들은 남편에 비유하고.. 오케이?
오늘 왼종일 오케이? 땜에 웃고 다니게 생겼슴다.
은제 껄쩍지근했던가..
오케바리라고 했어야 하는거 아닌가 생각도 들고..ㅋㅋ
허걱~ 제목만 보구는 내 얘긴줄 알았네.
하긴 난 속살만 찐게 아니라 겉으로도 뚱뚱하지. ㅋ
우분투에 관해 얘기할 때, 이건 또 뭔 소리 했었는데
뭐, 이 글을 읽는다고 아는 건 아니지만 친절하게는 쓰셨구려.
시동화면은 작고 귀엽구먼…
이것 땜에 며칠 또 고생해야것수.
하나는 처리했는데 그 다음 고개에서 삐걱대는 군.
아파치 포트 변경하다 막히네.
이건 엄청 간단한 건데 이상하게 먹히질 않는군.
이게 의외로 산넘어 산이라 빨리 일 끝내고 복구해야 할 듯.
저도 잘 이해는 못하지만
어쨌든 삐걱거린다는 말씀은 제 노트북과 다르지 않습니다^^
참 그리구요
낮달 님이 서울에 올라오신다고 해서 호루라기 붑니다.
토요일 저녁 6시에 종각옆 3번 출구 피자헛 골목에 있는 <육미집 -전화 738-0122>에서 뵈었으면 하는데요… 시간이 어떠실지… 참석자는 저와 해님, 그리고 도루피님과 안느님 동원님에게 쪽지를 보냅니다.
토요일날 눈사진 찍으러 대관령 가기로 일정을 잡아놓고 있어요. 일단 즐거운 시간 되시길 빌어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