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물든 단풍나무 밑의 공중전화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0월 30일 서울 창경궁에서

잎이 모두 붉게 물든 단풍 나무 아래서
그대에게 전화를 하면
내가 속삭이는 모든 말들이
그 단풍처럼 붉게 물들어 그대에게 전해질까?

분명 그럴리 없는데,
우리는 하늘이 유난히 푸르거나
눈발이 하얗게 날릴 때,
또 바닷가의 푸른 파도 옆에 섰을 때면
어김없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한다.
그냥 “나 단풍 나무 아래서
너에게 전화 걸고 있어” 라고 하거나
“오늘 하늘이 유난히 푸르다”라고 하거나
“지금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어”라고 하거나
“나 지금 태안의 바닷가에 있어”라고 하기만 하면
자신이 보고 있는 풍경이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해지기라고 할 듯.

사랑하는 날 종종 우리는
우리가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 그 풍경이 우리의 몸에 배고
그렇게 밴 풍경이 우리의 말에 실릴 것이라 착각한다.

요즘은 아무도 착각을 하는 사람이 없는지
한참 동안 붉게 물든 단풍 나무 밑의 공중 전화를 지켜 보며 사진을 찍었지만
전화거는 사람은 없었다.

2 thoughts on “붉게 물든 단풍나무 밑의 공중전화

  1. 올 가을에 꼭 찾아가 전화를 해야겠습니다.
    수신자가 사진을 찍은 위치에서 전화를 받을지도 모르지만서도요.
    예전엔 착각속에 산다는 말을 참 많이 하곤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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