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올까.
학교 다닐 때 정치학 개론을 한 학기 수강했다.
이상두 교수님의 강의였다.
박정희 시대 때 7년간 옥고를 치룬 분이었다.
펜의 저항이 불러온 댓가였다.
강의 중간에 듣는 옛날 얘기가 가장 큰 재미였다.
자신이 쓴 글이 실린 월간지며 책자를 강의 시간마다 들고 들어오시곤 했었다.
“이 책에 실린 글을 박정희가 읽어보더니
바닥에 냅다 팽개쳐 버렸다고 하더군.”
강의 중간중간 우리는
군사정권이 어떻게 학자들을 핍박했는지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었다.
그때 들은 얘기 중에 동료 교수에 대한 얘기도 있었다.
기억으로는 건대 교수였다.
유학을 마치고 갓 돌아온 교수가 세상 물정에 어두웠고,
강의 시간에 자꾸만 김일성 주석이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한 학생이 일어나 어떻게 김일성 뒤에
주석이라는 호칭을 붙여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 교수는 그게 공식적 호칭인데
정치학 교수인 내가 그 정도 호칭도 못붙여주냐고 했다.
그 교수는 결국 잡혀갔다.
재판 끝에 2년형을 언도받았다.
그래서 당시 ‘주’에 1년, ‘석’에 1년 받았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돌아다녔다고 했다.
그 당시 김일성이 국방위원장이 아니었길 다행이다.
이상두 교수는 1987년에 갑자기 세상을 떴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두 해 뒤의 일이었다.
고문의 후유증이란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내가 들었던 문학개론의 교재 속엔 정지용의 시 한편이 들어있었다.
딱 한편이었다.
그러나 그 시의 아래쪽엔 시인의 이름이 정OO으로 박혀 있었다.
그는 성 하나 밝히는 것을 허용 받았을 뿐, 이름은 밝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의 시를
교과서를 통해선 전혀 접할 수 없었으니
그의 시를 이제 공식 교재 속에서 접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
대학간 사람의 큰 혜택이었다고 해야 하는 것이었을까.
물론 국문과 교수는 그의 이름을 모두 밝혀주었다.
그리고는 정치가 억누르고 있는 문학의 현실 앞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지용은 월북 문인이었다.
그리 먼 옛날의 얘기가 아니다.
80년대의 얘기이니 30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을 뿐이다.
봄은 어떻게 오는 것일까.
봄은 내게 있어 신문에 나는 김일성의 이름 뒤에 버젓이 주석이란 호칭이 붙고,
김정일의 이름 뒤에 국방위원장이란 호칭이 붙는 세상의 모습으로 왔다.
이제는 아무도 2년이나 5년을 걱정하지 않았다.
또 봄은 정OO이 버젓이 정지용의 이름을 되찾은 세상의 모습으로 왔다.
내겐 그 세상이 봄이었다.
올겨울은 유난히 춥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고 나서도 여전히 김일성은
그 이름 뒤에 주석을 보장받고 있고,
김정일 또한 위원장의 호칭을 보장받고 있다.
정지용의 이름도 원없이 불러줄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도 여전히 봄인가.
사정이 그렇질 않다.
이 정권은 치사하기 이를데 없는 정권이다.
정권에 반하면 돈줄을 끊는 아주 야비한 방법을 쓴다.
그 치사한 짓거리가 예술에 대해서도 예외가 없다.
최근의 사례로 예를 들자면
그동안 독립영화를 지원해온 미디액트가
영화진흥위원회의 사업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희생이 되었다.
유난히 추운 겨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은 올까.
매년 봄이면 강화의 고려산을 찾아
오는 봄을 그곳의 진달래에게서 가장 먼저 마중했다.
진달래가 피면 물어봐야 겠다.
이명박 정권 아래서도 봄은 오는가.
9 thoughts on “봄은 올까”
촌에서 장관이 된 그 사람 꼬붕은 문화체육강간부 장관으로 알고 있답니다.
백주대낮에 치사 빤쓰같은 짓을 하는지라 가만히 들여다 보면
분명 우리네 디엔에이와 근본적으로 다른 별종이라는 걸 발견하곤 합니다.
우울한 돌연변이…사람에게도 일어나는 일반적 현상이 아닐까 합니다.
예술가 출신이라 더 신경질이 납니다.
아무래도 예술가가 아니라 옛썰(Yes, Sir)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개 욕망은 가졌어도 한번쯤 제스처를 취해보다 물러나곤 했었는데 이렇게 뻔뻔스럽게 니편내편을 골라 돈줄을 끊고 쫓아내는 정권은 처음인 듯 싶어요. 어떻게 예전에 저 새끼는 안된다고 찍어놓은 놈들만 장관직에 득시글하고. 그저 답답할 뿐입니다.
봄이 개떼처럼 몰려왔다, 는 누구의 글귀를 생각했습니다.
개떼처럼은 아니더라도 봄이 오겠지요….
따듯한 봄날 동원님께 시 한 수 바쳐야 하는데….ㅋ
그 시가 다시 찾은 봄에 대한 환희의 노래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정말 이런 치사한 핍박의 시대도 없다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음~~ 진달래.
그 봄은 모르겠지만 진달래의 봄은 어김없이 오겠지요?
올핸 한적하고 활짝 핀 고려산엘 가보고 싶네요.
올해는 다른 곳을 물색해 보지요, 뭐.
고려산은 이제 너무 혼잡한 것 같아요.
근처에 진달래 많은 좋은 산이 있을 것 같아요.
선문답을 흉내내면,
그래도 진달래는 핍니다…. ㅋ
6월쯤 봄기운이 완연해 지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