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모자와 카메라

Photo by Kim Dong Won


2월 8일 밤 10시가 넘어 겨울 방학을 맞은 딸이 귀국했다.
열흘 동안 머물다 간다.
너무 짧다.
왜 이렇게 짧게 일정을 잡았냐고 했더니
돌아가서 아르바이트해야 한다고 한다.
방학 때 시간 많다고 했더니
아르바이트 하는 곳의 점장이 일주일에 4일씩이나
일정을 잡아 주었단다.
공항에서 기다리는 동안,
나오는 곳의 문이 잠깐씩 열렸다 닫히고
저 멀리 짐을 찾으려고 줄을 선 사람들이 보인다.
너무 멀어 딸이 잘 확인은 되질 않는다.
그런데 딸이 용케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아빠를 알아본 것은
아빠가 항상 쓰고 다니는 빨간 모자와 손에 든 카메라 덕택이었다.
빨간 모자와 카메라는 나의 아이콘이 되어 버렸다.
배고프다고 하여 밤늦게 집근처 식당에서 설렁탕 먹고,
홈플러스에서 이것저것 좀 산 뒤에 들어왔다.
한가할 때 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녀가 무척 바쁠 때 왔다.
그녀, 딸과 함께 놀겠다고 일요일날 악착같이 일하셨다.
나는 3개의 일이 겹쳐 있다가 일요일날 거의 모두 마무리가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원고 하나 쓰는 것.
그것은 좀 시간 여유가 있다.
나는 여유로운 심정으로 딸을 반겼다.
내가 가장 먼저 해준 일은 딸의 맥북 꺼내서 살펴본 것.
스카이프에 일본 친구 하나가 올라와 있다.
이 밤에 누구냐고 했더니 일본 친구인데 지금 영국으로 유학을 가 있다고 한다.
그 얘기 끝에 한국어, 영어, 일본어를 모두 쓰다보니
입력기 전환을 할 때 입력기 메뉴에 가서 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고 했다.
맥에선 입력기를 여러 개 장착하여 사용할 수 있다.
보통 두 개를 쓴다.
그 두 개는 커맨드 + 스페이스를 통하여 전환을 한다.
윈도 환경의 경우로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키보드에서 한영 전환키를 누르는 것과 같다.
맥은 한영 전환키가 없고 커맨드 + 스페이스로 대신한다.
그런데 이게 두 개만 전환이 되고
입력기가 세 개가 되면 입력기 메뉴로 직접 가야 한다.
최근에 쓴 두 개까지만 전환이 되기 때문이다.
딸의 얘기 듣고 살펴봤더니
입력기 전환을 하는 커맨드 + 스페이스의 키에
옵션 키를 더하여 옵션 + 커맨드 + 스페이스를 하면
모든 입력기 메뉴의 입력기를 순차적으로 오갈 수 있다.
딸은 한국어를 쓰면서 일본인 친구들과 채팅을 하고,
또 영어도 써야 하는 상황이라
이를 급하게 바꾸어야 하는 경우가 있는가 보다.
딸의 불편 덕분에 신경 안쓰고 살았던 부분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한글 지원 잘되는 무료 압축 유릴리티 Unarchiver도 하나 깔아주었다.
딸이 한국 떠나기 전에 내가 한동안 끼고 살면서
이것저것 장착해주었던 맥북이다.
맥북은 일반 데스크탑이나 아이맥과는 많이 다르다.
그 차이를 가져오는 것은 바로 맥북의 트랙패드이다.
딸의 맥북에는 최신의 트랙패드가 장착되어 있어 사용하고 있노라면
세상이 모두 손가락 안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정말 내 손가락이 마술을 부리고 있는 느낌이랄까.
오래 전에 잠깐 나와 함께 한 맥북이지만
여전히 손가락은 그 감각을 잃지 않고 있었다.
손바닥에 걸리는 느낌이 처음 샀을 때에 비하여 상당히 매끄럽다.
많이 사용했는가 보다.
나는 잠시 딸의 맥북과 함께 놀았다.
이제 짧지만 열흘 동안 딸과 같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딸이 아빠 몫으로 사온 안주로 술 한잔하고
이런저런 얘기하다 새벽 3시쯤 잠자리에 누웠다.

Photo by Kim Dong Won

11 thoughts on “빨간 모자와 카메라

  1. 솔직히 올 겨울이 이렇게 춥지 않았으면
    따님이 귀국했다는 소식에 세월이 변하고 흘렀음을 알았을 겁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오셨네요.
    가방 한가득 술안주와 얘깃거리로 채워서 온 것 같습니다.ㅎㅎㅎ

  2. 따님이 아빠 닮지 않고 엄마 닮아 다행입니다…. ㅋ
    저도 이번 주말에 막내 딸이 집에 오는데, 결혼을 생각하는 남친과 함께 온다는 통보를….
    그래서 밤에 어떻게 관리를 해야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슴다… ㅋ

  3. Hi, 문지!
    한결 성숙한 모습이군요.
    집안에 활기가 확 돌고 있겠지요?
    하루 하루 아까운 시간들 아주 알차게 보내시기 바래요.

    1. 벌써 이틀째 수다떨다 밤늦게 자고 있어요.

      아빠 술안주라고 챙겨온 것들이 맛있어서 이틀째 한잔하고는 잠에 들고 있습니다.

      모자는 가방 속에 넣어가지고 왔더라구요.

      아내가 왔으니 즐겁고 행복한 시간 보내고 계시곘죠? 곧 딸이 태어나서 행복한 시간이 오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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