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4일 일요일 오후 3시, 두물머리 강변에서 마련된 미사에 참석했다.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미사이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는 걸음은 사실은 그 전날 시작되었다.
종종 한 곳의 지명이 그냥 지명에 그치지 않고 사람 이름과 묶이곤 한다. 가령 서종면에 있는 서후리는 한동안 내게 오규원이란 이름과 묶여 있었다. 오규원 시인이 지는 해가 넉넉한 마을이라 이름붙였던 그곳에 오랫동안 머물렀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지명을 말할 때면 그곳의 이름은 오규원이란 이름과 함께 엮여서 떠오른다.
같은 서종면에 또 문호리라고 있다. 올해부터 그곳 또한 한 사람의 이름과 묶이게 되었다. 우리가 문호리로 가볼까 하면 그건 그냥 문호리를 간다는 뜻이 아니라 사실은 그곳에 가서 누구를 만나볼까라는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3월 13일 토요일에 문호리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문호리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원이었다. 나중에 그녀는 프란시스코도 아니고 프란체스카도 아니고 프란치스코라고 했다.
그곳에 계신 최영선 수사님이 우리가 오랫만에 보고자 했던 얼굴이었다. 그의 세례명은 알렉산델이다. 하지만 그는 나에겐 그 모든 명칭에 앞서 해삼님이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처음만났고, 나에게선 그때 새겨진 그의 이름을 다른 이름들이 잘 흔들지를 못한다. 어쨌거나 우리는 오랫만에 다시 만났고, 그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나와 그녀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의 사무실로 들어가는 건물의 벽면에서는 “생명의 강을 살립시다”라는 문구와 신부님들의 강변 미사 사진이 우리들을 맞아주고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낯익은 원두 봉지가 눈에 띈다. 클라라의 커피이다. 어, 나도 여기 아는데… 어, 여기 아세요… 클라라의 커피는 졸지에 최영선 수사님과 우리들의 공통 분모가 되었다. 다음 날의 미사 자리에서도 또 클라라님을 보는 반가움이 있었다. 내가 신부님께 아는 분이라고 했더니 신부님은 참, 세상 좁지요라고 했다.
자리에 앉자 최영선 수사는 곧 명박씨의 4대강 사업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가며 반박을 하신다. 물난리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사업을 벌이는데 정작 수중보가 들어서는 곳은 전혀 홍수와는 관계없는 곳이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나중에는 그동안 찍어온 사진들을 보여주며 4대강 사업이 운하의 사전 정지 작업을 빙자한 생명 파괴의 죄악이라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신다. 모든 생명을 소중하게 지켜야 하는 사제들로선 그냥 앉아서 지켜볼 수가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가 시간이 나면 진짜 두물머리에 안내하고 싶은데 오늘은 저녁 일정이 있단다. 나는 나오면서 그가 말해준 진짜 두물머리에 들렀다 가겠다고 했다. 가면 신부님 한 분이 그곳을 지키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난 다음에는 사람을 모아서 다시 오마고 했다. 다른 약속도 주고 받았다. 그는 나에게 여주 강변의 도리섬에 사진찍으러 가자고 했고, 나도 그러고마고 했다.
최영선 수사님이 진짜 두물머리라고 말한 곳을 찾아가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항상 갔던 곳으로 갔다가 돌아나온 뒤에야 그곳으로 가는 길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녀가 먼저 논둑길을 따라 앞서간다. 저 멀리 나무 한그루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길을 들어서고 나니 간간히 우리가 가는 곳을 안내하는 작은 안내판이 우리가 가야할 길을 이끌어준다. 저녁빛을 받아 노란 색의 얼굴빛이 아주 좋았다.
진짜 두물머리 강변에서 사진을 좀 찍고 그곳에서 단식기도를 하고 계신 신부님을 만나 몇 마디 나누었다. 미사에 한번 참석하겠다고 했다. 신부님이 밤을 새는 컨테이너에 ‘주님, 생명의 강을 지켜주세요”라는 신부님과 사람들의 기도가 걸려 있었다. 저렇게 기도를 걸어놓았으니 신부님이 잠시 눈을 감아도 기도는 계속 될 것이다.
강가에 서서 저녁빛으로 가득찬 신부님의 모습을 뒤로 하고 두물머리를 걸어나온다. 스위스는 미국과 FTA를 추진하다 협정을 중단해 버렸다. 농촌이 그 협상의 큰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스위스는 농촌을 희생양으로 삼지 않는다. 스위스는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 “농촌은 그 풍경만으로도 지킬 가치가 있다.” 그냥 풍경 하나만으로, 강변의 신륵사탑 하나만으로, 충분히 4대강 사업을 저지할 이유가 되고, 그것 때문에 4대강 사업을 막아낼 수 있는 나라가 된다면, 그게 정말 아름다운 나라가 아닐까.
걸어나오다 뒤돌아본 저녁 풍경이 못내 아름다웠다.
다음 날, 그녀와 함께 다시 두물머리를 찾았다. 논둑길을 따라 갈대와 함께 걸어간다. 멀리 눈을 뒤집어쓴 예봉산 산자락이 보인다.
아직 미사가 시작되기 전이라 강변에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가마우지인지, 청둥오리인지가 그 넓은 물을 혼자 독차지하고 가끔씩 식사거리를 찾아 물속으로 사라졌다 한참 뒤 다시 나타나곤 했다. 물속으로 들어갈 때 나도 호흡을 멈추어 보았지만 가마우지인지, 청둥오리인지의 긴 호흡은 따를 수 없었다.
저 섬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도 처음이다. 섬의 이름은 족자도. 조카뻘되는 섬이라고 그런 이름이 붙은 듯하다. 정확한 것은 아니고 족자는 조카의 다른 말이란 설명이 있어 그렇게 유추했다. 그러고보니 꼭 조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원래 미사는 매일 오후 3시에 강변에서 드리고 있으나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서 강변의 미사는 같은 자리에 마련해놓은 비닐하우스로 옮겨졌다. 한번도 미사에 참석해 본 적이 없었지만 그 누추한 미사의 공간에서 어쩐 일인지 마음이 평안했다. 비는 함께 하지 못했지만 빗소리는 미사와 함께 하고 있었고, 옆의 소나무를 흔드는 바람소리도 간간히 제 목소리를 우리 귓전에 가득 담아주고 지나갔다. 비닐 하우스 옆에 차를 세웠던 사람 하나는 차를 끌고 나가려다 미사 중이니 좀 뒤에 떠나자며 차의 시동 소리로 미사를 방해하지 않고 잠시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다 나갔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아름다움이 그곳에 있었다.
신부님이 강론을 하셨다. 들어보니 한 곳에서 오신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오신 분들이다. 돌아가면서 모이는 듯했다. 강을 생명으로 보고 지키는 것이 하느님의 길이라고 생각하여 이 싸움에 나섰고, 아마도 명박씨는 생각이 많이 다른 것 같다고 하셨다. 명박씨라는 말에서 그녀와 나는 킥킥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신부님의 이름은 정확하게 기억을 못하겠다. 조해붕 신부님이 아닌가 싶다. 만약 내 짐작이 맞다면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 연대’의 대표를 맡고 계신 분이다.
어제 저녁 봤던 신부님은 뒤에 앉아 계셨다. 어제 저녁에 한번 본 얼굴이라고 더욱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제는 두 분이셨는데라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나는 조금 있다가 온다고 했다고 답해 드렸다.
신부님은 유머 감각도 보통이 아니셨다. 미사 참배객 중에 아이를 데리고 온 분이 한 분 계셨다. 대뜸 신부님을 보자마자 “신부님 배가 고파요, 밥주세요”라고 했다.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했던 모양이다. 신부님은 지금은 밥이 없다면서 내일은 밥을 해놓고 기다릴테니 그럼 내일 또 오라고 하셨다. 덕분에 나는 곁에서 킥킥대고 웃을 수 있었다.
신부님 이름은 몰랐는데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박윤하 신부님이라고 한다. 멀리 부산에서 올라오셨으며, 성악에 뛰어나시다고 한다.
팔당 유기농지를 지키기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인 유영훈 위원장이다. 이 싸움을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맨몸으로 지키고 있는 사람이다. 아무 힘도 보태주지 못하는 현실이 서글펐고, 그래도 하는데까지 이곳을 지키겠다는 그의 말에 마음이 짠했다. 그는 자신의 농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알고 보면 이곳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미사를 마치고 나서도 빗발은 여전했다. 강변에서 나무 십자가들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마치 4대강 사업은 안된다는 듯이.
4대강 사업 중단과 팔당유기농지 보존을 위한 생명평화 미사가 매일 오후 3시에 두물머리 강변에서 열리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두물머리와는 좀 다른 곳이다. 가는 길도 다르다. 차를 가져간다면 일단 양수리로 가서 익히 알려진 두물머리로 들어가면 된다. 버스나 전철을 이용한다면 양수리가는 버스나 양수역 가는 전철을 알아서 찾아오면 된다. 버스 정류장에서 더 가깝지만 전철역에서도 걸을만하다.
부근을 좀더 상세히 안내하자면 기존의 두물머리 입구로 들어오다 보면 고가도로의 교각이 있는 곳에 도달하게 된다. 그 아래쪽이 모두 주차장인데 이곳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틀어야 한다. 끝까지 가서 차를 세우는 것이 좋다. 거의 끝자락 쯤에 딸기농장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다. 그 길을 따라 들어가 강변을 따라 논둑길로 걸어가면 된다. 갈대가 손을 흔들어 반겨준다. 그곳에 매일매일 모이는 사람들의 숫자에 따라 4대강 사업을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시간나는대로 가볼 생각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 그렇게 마음이 불편하더니 그래도 한번 갔다 오니 내 마음이 좀 편해졌다.
6 thoughts on “두물머리 강변의 미사”
아아.. 보내주신 엮은 글 너무나 잘 읽었습니다. 4대강이라는 주제는 볼 때마다 화가 나지만 강을 지키기 위해 함께 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볼 때면 정말 가슴 뭉클하도록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라는 낯익은 이름이 눈에 들어와 들어가 봤다가 트랙백으로 엮었어요. 사진 속의 단식하던 신부님은 부산에서 올라오셨는데 아마 지금은 내려가셨을 거예요. 부산 대현동 성당에 계시다고 하더군요.
주말에 아내랑 같이 가봐야겠습니다. 주변에 아이들 데리고 같이 가도 좋겠네요.
이번에도 아이들 데리고 온 가족이 둘 정도 있었어요. 아이들 데리고 놀기에는 아주 좋아요. 참가한 분들을 일일이 소개하기 때문에 졸지에 기독교계 대표가 되실지도 몰라요. ^^
아참, 그리고 해삼님이랑 뜻밖에 조우하게 될지도 몰라요.
언제나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을 것 같아 보이는 분들이군요.
먼 곳도 아닌데, 너무 몰라라했네요.
저도 시간나는대로 가보겠습니다.
다른 곳들은 4대강 사업이 측량을 거쳐 이미 공사에 들어갔는데 여기 팔당은 아직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농민들이 반대를 하고 있는데 그게 모두 몸으로 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얘기 들었어요. 유기농이 최초로 시작된 곳도 이곳이었고, 그 연유도 들을 수 있었어요. 40여명의 농민이 막으면 경찰은 800여명 정도가 온다더군요. 게다가 포크레인 앞세우고 오니 많이 겁난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저녁 풍경을 위하여 싸울 수 있는 나라라면 얼마나 괜찮은 나라일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까지 반대인데 왜 자꾸 파헤치려 드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