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나 남자나
자기 사람이 한눈 파는 걸 싫어하지.
그리고 대개 그걸 한 사람을
내 것으로 소유하고픈
욕심이라고 말하지.
하지만 카메라와 렌즈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대답이 달라질 수가 있어.
카메라와 렌즈는 말하더군.
사랑하는 사람이 한눈 파는게 싫은 이유는
한눈을 팔면 내 존재가 지워지기 때문이라고.
그렇기는 해.
이 꽃에 초점을 맞추면
저 꽃이 희미하게 지워지고,
저 꽃에 초점을 맞추면
또 이 꽃이 희미하게 지워지곤 하거든.
이건 좀 전문적인 카메라 얘기야.
카메라 렌즈는 모두 F값을 갖고 있어.
노출값이라고도 하지.
오, 오해하지 말어.
노출값이라고 해서 누드찍을 때의 벗는 강도를 말하는 건 아냐.
F값이 낮아지면 눈앞의 것만 선명하게 찍히고
뒤쪽의 것들은 희미하게 뭉개져 버려.
F값을 높이면 모두가 선명하게 나올 수가 있지.
내가 쓰는 니콘 50mm 렌즈는 F값을 1.4까지 낮출 수 있어.
높이는 건 22 정도까지 가능하지.
그러면 뭐, 존재가 지워지는 건
F값을 높이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 아니냐고.
모르는 소리좀 하지마.
우리들 마음의 조리개는 F값이 아마도
라이카 녹티룩스-M 50mm 렌즈 만큼이나 낮을 거야.
그 렌즈는 최대로 개방하면 F값이 0.95까지 간다더군.
렌즈 가격만 1천만원이 넘는 고급 렌즈야.
렌즈는 대체로 F값이 낮은 렌즈가 무지 비싸.
우리들 마음의 렌즈는 F값으로 보면
그 어느 렌즈보다 F값이 낮은 아주 고급 렌즈인 셈이지.
어느 한 존재에 초점을 맞추고 나면
나머지는 싸그리 뭉개버리고 말아.
카메라와 렌즈에게 답을 구하면
상대가 한눈 파는 걸 싫어하는 이유는
한 사람을 나만 소유하고픈 욕심이 아니라
사실은 초점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내가 지워진다는 것을 우리들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야.
그러니 그건 내 존재를 지키고 싶은 자기 방어 본능인 셈이야.
하지만 카메라와 렌즈는 또 말하지.
F값을 높이고 카메라와 렌즈를 안정적으로 잡기만 하면
어떤 존재도 지워지지 않을 수 있다고.
그때는 카메라를 든 사람을 믿을 수밖에 없어.
그가 어떤 존재도 지우지 않고 사진을 찍을지도 모르니까.
다만 우리들 마음의 렌즈에선 조리개값을 높이기가 어려운 건 사실이야.
난 잘 찍을 수 있냐고?
그걸 누가 알겠어?
2 thoughts on “한눈을 팔면 한 존재가 지워진다”
둘 다 이쁘게 나왔으면 삼각관계로 엮였을 겁니다.
이래저래 욕먹을 바에야 한쪽을 무시하는 게 그나마 현명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종종 둘 다 잘 찍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