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 월요일, 서울에 때아닌 눈이 내렸다.
그것도 강원도에 가서나 볼 수 있는 엄청난 눈이었다.
그날 그녀는 이사를 했다.
1년 정도 머물던 홍대근처의 합정동 사무실에서 양재동 쪽으로 옮겼다.
사무실 옆 테라스로 나가면 구룡산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이삿짐은 단촐했다.
파워맥 G4 듀얼 1기가 한 대, 그 맥에 붙어 있던 30인치 모니터,
그리고 엡손 4870 스캐너와 그밖에 자질구레한 책과 사무용품들.
그녀의 승용차 뒷좌석과 트렁크에 모두 몸을 맡길 수 있었다.
짐을 싣고 있을 때부터 퍼붓기 시작한 눈은
차를 몰고 홍대를 떠날 때까지 여전했다.
우리는 쏟아지는 눈 속에서 새 사무실로 이사를 했다.
강변북로로 갈까,
양화대교를 건너가 올림픽 대로를 타고 갈까,
그 두 길 사이에서 잠시 멈칫하는 사이,
차는 벌써 강변북로 방향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강변북로는 진입로부터 밀리고 있다.
우회를 하여 다시 양화대교로 올라탔지만 그 길 역시 막힌다.
양화대교 남단에서 U턴하기 전에
펑펑내리고 있는 3월의 봄눈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직 쌓이진 못하고 있었다.
차는 곧장 올림픽대로로 파고든다.
우리 앞에서 버스 한대가 방향을 나누어 김포공항 방향으로 향한다.
눈은 아무 방향없이 중구난방이다.
길옆에 약간씩 눈이 쌓여가고 있었다.
차는 아주 간단하게 올림픽대로로 진입했다.
눈이 내리는 대로 녹아 길은 미끄럽지 않은 듯하다.
하늘은 온통 눈이지만 길은 빗길이 되어 질척거린다.
날이 맑으면 한강 건너편을 살피면서 갈 수 있지만
강건너는 전혀 보이질 않았다.
한강철교 가까이서 차들이 밀리기 시작한다.
쏟아지는 눈이 그 넓은 공간은 촘촘히도 메꾸고 있다.
온통 세상이 하얗다.
작고 하얀 점에 불과할텐데
그 점을 곳곳에 찍는 것만으로 세상이 하얗게 된다.
세상을 하얗게 칠하려면 세상을 다 채울 필요가 없다.
그냥 눈처럼 어지럽게 휘날려도 세상을 하얗게 칠할 수 있다.
올림픽대로 길가의 풍경이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하얀 배경을 바탕으로 나뭇가지들의 윤곽이 선명하다.
차는 흑석동을 지나가고 있다.
흐름은 더디다.
길가의 나뭇가지 꼭대기로 까치집이 보인다.
까치집은 벌써 눈이 안방을 차지했을 듯 싶다.
차는 반포대교에서 남쪽으로 빠져나왔다.
차량이 막혀 우면산 터널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차들이 서 있는 사이, 잠시 거리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빨간 신호등이 차를 막고 있고, 오는 봄도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우면산 터널을 사이에 두고
북쪽과 남쪽이 그렇게 기온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일까.
터널을 빠져나오자 온통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터널 앞에서 오른쪽으로 빠진 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하는데
그만 직진을 하여 과천과 안양으로 가는 도로로 올라타고 말았다.
길에 눈이 쌓여있고 차들이 기어간다.
충돌한 차들이 벌써 두 곳에서 보였다.
하지만 천천히 가는 통에 길가 풍경을 사진에 담기에는 아주 좋다.
머리를 풀어헤친 버드나무 하나가 세한도를 연상시켰다.
터널 하나 빠져나오는 것으로
어떻게 이렇듯 하얀색의 농도가 달라질 수 있는지 신기하다.
역시 서울을 조금이라도 벗어나야 풍경다운 풍경을 누릴 수 있다.
첫번째 나온 나들목에서 곧장 내려갔다.
그리고 길가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단풍잎 두 개가 이마를 맞대고는
눈을 면사포처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저렇게 가는데 나뭇가지에 어떻게 눈이 쌓이지?
그거야 우리도 가는 팔과 손으로 훨씬 큰 물건을 드는데
알고 보면 나뭇가지도 그냥 가지가 아니라 나무의 팔과 손이 아닐까.
그녀, 열심히 눈풍경을 동영상으로 찍는다.
이렇게 보니 아이폰 유저가 아니라 아이폰 신봉자 같다.
신기하게도 차를 세워놓고 눈풍경을 찍었던 이 한적한 도로의 풍경이 가장 좋았다.
우리는 귀신처럼 풍경이 좋은 곳을 찾아갔다.
새순이 나고 꽃이 피어도 이처럼 아름답기는 어려울 것 같다.
차를 돌려 다시 양재대로로 들어섰다.
눈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거리에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재미있었지만
그만 카메라에 담지는 못했다.
우리 앞쪽 차도 머리에 눈을 하얗게 뒤집어 쓰고 있다.
이제 사무실에 거의 다왔다.
방향을 틀기 위해 잠시 서 있는 사이,
흰색으로 치장을 한 옆의 산풍경이 내 시선을 끌어갔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거짓말처럼 눈이 멈추었다.
3월의 서설과 함께 새 사무실로 이사를 한 날이었다.
8 thoughts on “3월의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날”
이사하는 날 눈이 오면 대박난다고 하데요.
홍대근처에 가실 건수(?)가 쪼매 줄어들어 아쉽겠습니다.
떠날 때 그 얘기를 하더군요.
홍대떠나니 아쉽지라구요.
아직 동생은 홍대에 있어요.
눈이 잘 안오는 한국에 3월에 내린 눈이라 그런지 더 추워보이네요.
벤쿠버에는 이제 진짜 봄이 온듯해요. 따끈따끈한게..
3월이라 그런지 실제로는 그렇게 춥지를 않더라구요.
한겨울 추울 때는 차문 열어놓고 사진찍기도 어렵거든요.
그 다음 날로 다 녹아 버렸어요.
그래도 여긴 아직도 춥긴 추워요.
정말 이사를 하셨네?
추카합니다, 포레스트님. 변화는 좋은거니깐.
좋은 일 많이 생기길..
서울 시내 도로변도 눈이 오니 산 못지 않네요. 눈이 올 땐 역시 밖으로 나가야죠~
치마입고는 창가에 서면 안될 거 같은 사무실이라는…
창문이 옆이 아니라 다리 아래쪽으로 나 있어요.
이삿짐 도와주러 가셨다가 횡재하셨네요.^^
그날 저는 오포 근처로 성묘 갔다가 산소는 보지도 못하고
아래 주차장에서 그냥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진눈개비로 시작된 눈이 그렇게 내릴 줄 모르고 출발했거든요.
창문 열어놓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며 올림픽 대로를 달렸죠. 서울은 차가 많으니까 내린 눈이 발붙일데가 없는 듯 싶어요. 과천쪽도 비밀하우스가 아주 많더구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