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전만해도 세상이 온통 뿌옇고 누런 빛이었다.
중국발 황사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 날 거짓말처럼 세상이 맑게 개었다.
3월 21일 일요일이었다.
오후 3시의 미사 시간에 맞추어 두물머리 강변을 찾았다.
구름이 좋은 날이었다.
세번째 찾아가면서 강변의 나무들이 서서히 눈에 익기 시작한다.
이 나무는 들어가는 길목의 거의 첫부분에서 만나는 나무이다.
곧 잎이 나고 생명의 기운이 푸르게 오를 것이다.
고향에도 자라면서 낯을 익혀둔 나무들이 있었다.
그 나무가 보이지 않았을 때의 서운함이 생각난다.
나무는 때로 우리들 마음 속에 친구 이상으로 자리를 잡기도 한다.
항상 연밭은 인근의 세미원이나
기존에 알고 있던 두물머리 공원에서 접했는데
비닐하우스가 밀집되어 있어 거의 눈을 돌리지 않았던 곳에도
연밭이 하나 있다.
연밥을 모두 뱉아낸채 마치 불타고 남은 연탄처럼
연의 열매가 여기저기서 뒹굴고 있다.
곧 다시 연꽃을 피워올리고 새로운 불꽃의 인생을 시작할 것이다.
딸기 체험 농장을 하는 비닐하우스이다.
비닐하우스 안으로 사람들의 모습이 엷게 비친다.
미사가는 길을 알려주는 표지판을 따라 논둑길로 들어선다.
바람이 강하여 강변의 갈대들이 연신 굽신굽신 허리를 숙였다.
바람이 모두 수면으로 낮게 저공 비행을 하는지
하늘의 구름은 그 심한 바람에도 하나 날려가는 구름이 없었다.
미사 장소에 도착하니
먼저 온 사람들이 강변에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
구름이 함께하고, 강물도 연신 물결을 그려가며 함께 하고 있었다.
지난 주 일요일엔 비가 뿌려 비닐 하우스에서 미사를 드렸는데
오늘은 바람이 너무 불어 다시 비닐 하우스에서 미사를 드린다.
강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짧은 글에 실어
비닐 하우스에 붙여 놓았다.
빛이 들어와 그 글귀들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고,
빛이 읽어 건네준 그 마음을 싣고 구름이 하늘 높이 떠가고 있었다.
바깥은 강한 바람 때문에 외투 없이는 견디기 어려웠지만
비닐 하우스 안은 외투를 입고 견디기가 어려울 정도로 따뜻했다.
뒤쪽에 서계신 신부님의 모습이 언듯보인다.
강을 지키려는 새로운 기도들이 또 비닐 하우스에 붙었다.
구름도 열심히 그 마음을 하늘로 실어나른다.
신부님이 쪽지와 볼펜을 나누어주고
글귀를 적어내면 걷어다 붙이신다.
내가 농담삼아 험한 말도 적어도 되냐고 했더니
MB까지는 적어도 된다고 받으신다.
걔중에는 쥐새끼를 적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다들 잘 참아주셨다.
지난 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조해봉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하셨다.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 연대’의 대표 신부님이시다.
그렇게 소개를 하면 신부님은 사실은 심부름꾼이라고 자기를 낮추신다.
강론은 원주교구에서 올라오신 안승길 신부님이 맡으셨다.
원래의 미사 시간에 조금 늦으셨다.
나이가 70이 넘었다고 하신다.
지긋한 나이 때문에 안전하게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지난 주에 조해봉 신부님이 명박씨라고 불러준 것은 그나마 예를 갖춘 것이었다.
안승길 신부님은 명박씨라는 호칭도 과하다고 생각했는지
명박이 그 영감이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용산 사태를 얘기했고 이명박 정권을 살인정권으로 정리하셨다.
자신이 전문가들에게 물어보았더니
강물이 썩지 않으려면 최소한 1초당 60cm 정도를 흘러가야 한다고 했단다.
그러나 보를 막으면 그 속도가 1초당 5cm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러면 물이 썩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한다.
보를 막는 것은 강에 대한 살인 행위이다.
그것도 서서히 썩혀서 죽이다니 너무 하지 않은가.
분당에 지었다는 400억원짜리 성당에 대해서도 비판하셨다.
그 성당은 지붕이 너무 두꺼워 성령이 뚫고 들어올 수가 없다고 하신다.
그렇지만 비닐 하우스는 얼마든지 뚫고 들어오신단다.
말씀이 바람처럼 시원하게 내 속을 한바퀴 돌았다.
미사를 끝낸 사람들이 강변으로 나가 기도한다.
그냥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강에 바치는 글을 준비해와 낭독했다.
하늘의 구름들도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듯했다.
내가 아는 클라라님도 뒤쪽에서 함께 기도하고 계신다.
릴레이 단식 기도가 계속되고 있다.
벌써 70일을 넘기고 있다.
나무 십자가와 나무 예수님을 앞에 놓고
소박하게 드리는 기도이다.
떠나며 돌아보니 사람들이 돌아간 강변에 나무 예수님이 서 계셨다.
봄의 생명이 여기저기서 움틀거리고 있었다.
죽음을 딛고 일어섰듯이 죽음의 정권을 물리치고 생명으로 일어설 것이다.
논둑길을 따라 돌아나오다 뒤돌아본다.
저녁이 엷게 깔리기 시작한다.
걸을 때마다 내 무게를 살짝살짝 받아주는 부드러운 길이기도 하다.
강변에는 비닐 하우스, 하늘엔 구름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비닐 하우스가
구름을 동글동글하게 말아서 만든 구름의 집으로 보이려나.
**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생명 평화 미사 안내
바로 내일 3월 27일 오후 1시에 두물머리에서 대규모로 열립니다.
안치환씨도 온다고 들었습니다.
6 thoughts on “두물머리 강변의 미사 가는 길”
동원님 시간이 지나 이제 여름의 초입입니다.
동원님이 찍은 사진과 제가 지난 주말 다녀와서 찍은 사진을 보면
계절이 바뀐 모습을 절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생명이 살아 있기 때문이지요.
생명이 살아 있음에 풍경이 스스로 모습을 바꾸는 것이겠지요.
저 살아있는 강을 살리겠다니…
아무리 이해하려 애를 써도 이해하기 힘든 말이지요.
어디 저만 그렇겠습니까.
내일 꼭 투표해야 합니다. ㅎ
말씀 들으니 강은 제 스스로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군요.
심지어 이곳에선 십자가조차 내버려두면 다 생명이 된다는 것을 증명하더군요.
저는 내일 투표하고 동네 꼬마들하고 산에 다녀올 생각입니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산에 올라서 아이들하고 놀다와야 겠어요.
그간 술 마시는 일에 집중하느라 못 찾아 뵜네요^^
앞으로 한달간은 글쓰는 일에 집중해야되서 또 못 찾아보빌 것 같구요.
신작 미니픽션(초고) 올렸으니 놀러오셔서 평가 바랍니다.
건승하세요…^^
상당한 결심인데요.
한달간 글쓰기에 집중하다니.
하긴 소설가 김영하는 술을 안먹고도 쓰기 힘든게 글이니
술을 끊으라고 권하긴 하더군요.
좋은 글 많이 쓰길 빌께요.
낯을 익혀둔 나무, 마음 속에 친구 이상으로 자리잡는 나무.
요즘 산책을 하면서 급공감 가는 표현입니다.^^
안 신부님의 강론은 궁금해서 ikolbe.com에 나온 걸로 봤습니다.
거칠 것 없는, 골 때리는 신부님이시더군요.^^
개신교에서만 성령 운운 하는 줄 알았는데,
두꺼운 성당과 교회당 천정은 도저히 뚫고 들어올 수 없을 거란 말씀에서
넘어집니다. 이 분이 뭘 제대로 아는, 대단한 내공의 소유자시겠구나 싶었습니다.
수사님이 열심히 찍더니만 콜베닷컴에 올리셨구만요.
그날 어찌나 웃었던지…
원주 교구가 그렇게 강성인지도 그날 처음 알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