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양땅,
선바위란 곳에서
석문교란 이름의 다리 위에 올라
아래쪽으로 흐르는 반변천의 물을 내려다 본다.
바람이 천의 물을 밀어 물결을 만들고
그 결의 골을 타고 햇볕이 부서진다.
카메라가 물결로 향한다.
아직 초점을 맞추기 전,
물결은 결의 윤곽을 버리고
빛들은 모두 그 물결 위에서
작은 원을 그리고 있다.
카메라의 셔터를 반쯤 누르자
이 섬세한 광학기기는 곧바로 초점을 맞추고
물결은 물결대로, 빛은 빛대로
선명하게 그 형상을 드러내준다.
그런데 이상하다.
선명하게 보이는 물결과 빛이
내게 바짝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내게서 발을 빼고 아득하게 멀어지는 느낌이다.
자동 초점 기능을 풀어버리고
다시 초점을 흐릿하게 뭉갠다.
마치 물결의 품 속으로 빛과 함께 뛰어들어 노는 느낌이다.
너무 세상을 선명하고 명확하게 보려하지 말라.
그 선명한 광학의 세계는
세상을 보여주는 듯 하면서도
사실은 세상을 우리에게서 밀어내 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초점이 흐릿하면 세상이 뭉개진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때 우리는
세상의 품으로, 그 내면 속으로 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초점을 풀고 시력을 흐릿하게 낮추었더니
빛들이 예각의 경계를 풀고 둥근 원을 그리며
물결의 품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나도 그 한가운데 있었다.
2 thoughts on “물결과 초점”
때론 흐릿한 게 더 오래가기도 합니다.
선명하면 현실이 되는데 흐릿하면 예술이 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