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과 초점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4월 9일 경북 영양의 반변천에서

경북 영양땅,
선바위란 곳에서
석문교란 이름의 다리 위에 올라
아래쪽으로 흐르는 반변천의 물을 내려다 본다.
바람이 천의 물을 밀어 물결을 만들고
그 결의 골을 타고 햇볕이 부서진다.
카메라가 물결로 향한다.
아직 초점을 맞추기 전,
물결은 결의 윤곽을 버리고
빛들은 모두 그 물결 위에서
작은 원을 그리고 있다.
카메라의 셔터를 반쯤 누르자
이 섬세한 광학기기는 곧바로 초점을 맞추고
물결은 물결대로, 빛은 빛대로
선명하게 그 형상을 드러내준다.
그런데 이상하다.
선명하게 보이는 물결과 빛이
내게 바짝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내게서 발을 빼고 아득하게 멀어지는 느낌이다.
자동 초점 기능을 풀어버리고
다시 초점을 흐릿하게 뭉갠다.
마치 물결의 품 속으로 빛과 함께 뛰어들어 노는 느낌이다.

너무 세상을 선명하고 명확하게 보려하지 말라.
그 선명한 광학의 세계는
세상을 보여주는 듯 하면서도
사실은 세상을 우리에게서 밀어내 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초점이 흐릿하면 세상이 뭉개진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때 우리는
세상의 품으로, 그 내면 속으로 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초점을 풀고 시력을 흐릿하게 낮추었더니
빛들이 예각의 경계를 풀고 둥근 원을 그리며
물결의 품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나도 그 한가운데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4월 9일 경북 영양의 반변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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