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십자가에 새싹이 돋다

매일 오후 3시,
4대강 사업을 저지하기 위한 생명 평화 미사가 열리는 곳,
바로 팔당의 두물머리에는 강가에 십자가가 서 있다.
그 십자가에 새싹이 돋았다.
그곳에서 처음 십자가를 보았던 순간이 벌써 두 달 전이었다.
그때로 거슬러올라가 본다.

Photo by Kim Dong Won

3월 13일 토요일.
처음으로 그 십자가를 보았다.
저녁 무렵이었다.
머리가 하얀 신부님이 단식 기도를 하고 계셨다.
십자가는 강을 마주보고 있는 듯했다.
아직 겨울끝이 남아있어 저녁 강에는
해가 넘어가며 남겨놓은 노을빛이 번져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3월 14일 일요일.
하룻만에 다시 또 그 십자가를 보았다.
갑자기 빗발이 뿌리는 바람에
미사는 비닐 하우스 안에서 이루어졌다.
비끝에 묻어나는 쌀쌀한 기운을 모두 감내하며
십자가는 강변에서 그 비를 다맞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3월 21일 일요일.
처음 보았을 때는 십자가 뿐이었으나
이제는 그 나무에서 희생되었던 예수님 형상이 더해져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재주많은 신부님 한 분이 그리했다고 했다.
신부님께 재주도 좋으시다고 했더니
무릎은 이곳의 농민분이 아이디어를 주셨다고 했다.
예수님의 무릎은 하얗게 까져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3월 27일 토요일.
토요일엔 매일 미사를 올리던 강변이 아니라
양서체육공원이란 넓은 공간에서 2천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미사를 올렸다.
사람들이 순례지처럼 원래의 미사 장소를 둘러보았다.
그 날의 미사를 올리는 동안 여전히 십자가는 원래의 장소를 지켰다.

Photo by Kim Dong Won

4월 4일 일요일.
나로선 처음으로 강변에서 드리는 미사였다.

Photo by Kim Dong Won

4월 7일 수요일.
내가 처음으로 주중에 간 날이다.
주말보다 사람은 적었으나 분위기의 진지함은 여전했다.

Photo by Kim Dong Won

4월 11일 일요일.
이상하게 미사 때만 되면 바람이 강해진다.
항상 바람 속에서 미사가 이루어졌다.

Photo by Kim Dong Won

4월 18일 일요일.
사진을 확대해서 보니 이때 벌써
십자가의 가로대에 싹이 돋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생명 평화 미사에서 정말 생명이 새로 시작되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4월 25일 일요일.
십자가에 싹이 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이 날 강론을 한 이강서 신부님이었다.
신부님은 박해를 피해 로마에서 도망치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났던 얘기를 했다.
그때 베드로는 묻는다.
“쿼바디스 도미네”라고.
그건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말이라고 한다.
예수님은 답한다.
십자가에 못박히러 로마로 간다고.
그 얘기를 듣고 베드로는 그 자리에 지팡이를 꽂고 로마로 다시 돌아간다.
그 지팡이는 나중에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신부님은 여기서는 나무 십자가에 싹이 나서
생명으로 다시 일어서고 있다고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사람들이 많이 신기해했다.
나도 신기하기만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가까이 가면 새싹이 더욱 완연해진다.
가운데의 줄기 나무에 잎이 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가로로 걸쳐져 있는 나무에서도 잎이 나는 것은 정말 놀랍다.
비를 맞을 때마다 갈증을 적시는 한편으로
그 비를 몸속 깊숙이 들이마시며 생명을 예비했나 보다.

Photo by Kim Dong Won

발 아래쪽으로 아주 가까이 들여다 보았다.
죽음을 뚫고 나오듯 푸른 싹이 솟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곳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는
버드나무라서 그렇다고 했다.
그냥 꺾어서 땅에 꽂아놓으면
왕성한 생명력으로 일어서는 것이 버드나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냥 버드나무가 아니라
4대강에 드리운 이명박 정권의 죽음을 걷고
생명으로 일어서리라는 의지이자 희망처럼 보였다.

8 thoughts on “나무 십자가에 새싹이 돋다

  1. 아! 정말 놀랍네요.
    땅에 꽂혀 있지 않은 가로십자가에 새싹이 있는건 어떻게 설명이 되는건지.
    앞으로의 모습이 어찌 변할지 매우 궁금하네요.
    요지부동 4대강사업도 기적처럼 변화의 소식이 있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1. 저희 집도 마당에 이화가 하얗게 피었어요.
      이제는 이화 나무 밑에서 한잔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해야 겠습니다.
      주인없을 때 한번 들러봐야 겠어요.
      일 끝나면 주중에 한번 가볼까 생각 중입니다.

  2. 새싹이 피어나고 사람들의 마음도 희망으로 피어나는 그런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나봅니다.
    가끔 블로그의 글과 사진들을 훔처만 보다가 뜬굼없이 한자적어 보네요 안양촌놈.

    1. 봄이 되어도 날씨가 겨울을 방불하게 하지만 그래도 새싹이 나오는 걸 보면 희망을 걸어보라는 좋은 소식 같습니다.
      이제 더 자주 볼 것 같아요.
      위치는 확인해 놓았답니다.

  3. 정말 신기한데요.
    사진으로 봐도 신기한데, 직접 보셨을 땐 더 신기했을 거 같습니다.
    생명의 힘, 복원력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오뉴월 그리고 여름이 되면 더 힘차게 자라 있길,
    그래서 참석하는 분들에게 작은 격려가 되길 빕니다.

    1. 4대강 사업을 막아내서 이 십자가가 정말 그 자리에서 생명으로 오래오래 서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곁에서 사진도 찍고 그러더군요. 이번 주에 가면 아마도 더 푸르게 자라 있을 듯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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