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목소리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4월 25일
팔당 두물머리의 생명 평화 미사

요즘 들어 자주 두물머리의 강가에 선다.
그 전에도 강가에 선 적은 많았다.
강가에 서면 대개 강은 말이 없다.
가끔 강에선 고기들이 수면 위로 뛰어오른다.
아니면 주둥이를 물밖으로 내밀어 바깥 공기를 호흡하고
그때마다 수면 위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자신들이 그곳에 살고 있음을 우리들에게 알린다.
그러나 고기들도 거의 말이 없다.
강변을 따라 물가까지 몸을 낮춘 땅을 따라 거닐다 보면
풀과 나무들을 수없이 만난다.
그 풀과 나무들도 대개 말이 없으며,
바람이 자면 더더욱 조용하게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러다 가끔 그 강변에서 강의 얘기를 들을 때가 있다.
언젠가 겨울의 강가에 서서 강의 속삭임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강은 내게 말했었다.
그녀가 겨울의 강을 건너고 싶어한다면
그녀의 무게를 감당할 두터운 얼음으로
겨울의 강에 엎드리는 것이 사랑이라고.
사랑은 온전히 강의 몫 같았다.
하지만 또 강은 얇은 살얼음을 잡아주며 말했다.
새털보다 가벼운 무게로 살얼음을 딛고
날듯이 강을 건너는 것이 또한 사랑이라고.
강의 그 얘기에 의하면 살얼음도 꺼지지 않도록
모든 것을 덜어내고 새털처럼 가벼워지는 것이 사랑이기도 했다.
그렇게 난 가끔 강의 얘기를 들었고
강의 얘기를 듣는 것은 순전히 나의 감수성 덕이라고 생각했다.
4월 25일 일요일, 두물머리 강변의 생명 평화 미사에서
강의 목소리에 대한 전혀 다른 얘기를 들었다.
얘기를 해준 분은 그날 미사를 집전한 이강서 신부님이었다.
서울교구에서 빈민사목을 하고 있는 신부님이라고 했다.
신부님은 우선 양에 대해 말씀하셨다.
신부님 얘기에 의하면
양은 남을 공격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갖지 못한 동물이었다.
남을 물어뜯을 수 있는 송곳같은 이빨도,
남을 할퀼 수 있는 날카로운 발톱도 가지지 못한,
순하디 순한 동물이 양이었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이 그 약하디 약한 양의 신음과 고통 소리에 얹혀
우리에게 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것 같지만 강변에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신부님이 예로 든 것은 천성산 터널의 굴착 공사를 반대했던 지율스님이었다.
그때 지율스님은 살려달라 외치는 꼬리치레도룡용의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터널을 뚫는 거대한 기계의 소음과 발파 소리는 누구나 들었을 것이다.
터널이 뚫리면 그동안 먼거리를 돌아가야 했던 불편이 없어질 것이므로
많은 이들에게 그것은 개발 시대의 행복한 찬가로 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곳에서
대항할 아무런 수단도 갖고 있지 못한채 죽음으로 내몰린,
마치 어린 양과 같은 도룡용의 울음소리를 들은 사람이 있다.
그 두 소리 중 과연 어느 것이
하느님의 뜻이 실린 소리겠냐고 신부님은 물었다.
지율스님은 그 울음소리 앞에서
혼자만의 수양이 부끄러워졌다고 했었다.
모두 신부님이 전해준 얘기이다.
지율스님의 얘기에 이어 신부님은 또 두 가지 소리를 말했다.
그 한 소리는 강을 파헤치고 있는 포클레인의 개발 소음이다.
그리고 또 한 소리는 그 강변에서
포클레인의 삽날에 뿌리뽑혀 죽어가고 있는 수많은 풀과 나무들,
그리고 떼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강의 물고기들이
살려달라 외치는 울음소리와 신음소리이다.
신부님은 말했다.
강은 아무 말이 없으나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의 소리를 듣는다고.
하나는 거대한 권력을 손에 쥔 자가 강을 파헤치고 헤집는 포클레인의 소리이며,
다른 하나는 그 포클레인의 삽날 앞에 죽어가고 있는 어린 양들의 소리라고.
그리고 물었다.
과연 어떤 소리에 하느님의 뜻이 실려있는 것이냐고.
강론이 강처럼 조용히 그리고 깊게 흘렀다.
오늘도 강물 위에선 바람이 놀고 있었다.
가끔 놀다가 조용히 강변의 미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강론은 신부님이 하고 있었지만
나는 자꾸 강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4월 25일
이강서 신부님
팔당 두물머리의 생명 평화 미사가 끝나고
묵주기도를 드리는 동안 뒤에 앉아 계셨다.

8 thoughts on “강의 목소리

    1. 집에서 가까워서 한동안은 좀 자주 갔었는데
      요즘은 상당히 오랫동안 못갔어요.
      신부님들이 만날 때마다 좋더라구요.

      사실은 풍경님과 비슷한 일이 있어요.
      원하는 것을 적어서 붙여놓는 스티커 비슷한 것이 있는데
      욕은 적으면 안되냐고 했더니
      명바구 쥐새끼 이런 건 적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한참 웃었던 적이 있어요.

    1. 감사합니다.
      부산에서 신부님들이 자주 올라오셔서 단식에 동참해 주고 계십니다.
      지난 번에 오신 신부님은 대현동 성당에 계시다고 하더군요.
      이번 주에는 대구에서 올라오셔서 단식 기도를 해주신다고 들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큰 힘들이 있습니다.

  1. 태생이 원래 그래서 그런건지 도무지 들은 체를 하지 않는 것인지
    미치고 환장하게 하는 재주가 탁월한 정권입니다.
    일자리 창출을 할 맘이 진정 있었다면
    포크레인 대신 정말 삽자루를 투입했을 텐데 그러지도 않고요.
    이제는 쐬주 안주로 너무 씹어서 아무 맛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씹다가 지치기는 이넘의 정권이 처음입니다.

    1. 뭐든 안되는 건 지난 정권 탓이더군요.
      천안함 침몰도 지난 정권에서 군을 해이하게 풀어놔서 그렇고
      떡찰의 떡치기도 지난 정권 때 일이고…
      사람들이 그때가 좋았다고 느끼고 있다는 걸 아직 모르나 봅니다.

  2. 강가나 산에 오래 서서 삼라만상의 호흡의 한 끈마저 놓치지 않으려는 분들에게
    먼저 들리는 생명의 소리가 있는 것 같군요.
    두물머리의 요즘 풍경은 생명신학(앙)을 몸으로 맛보고 지키고 전하려는
    작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합창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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