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잎의 사랑

6월 25일 금요일, 오래 간만에 양수리의 세미원을 찾았다.
연꽃 단지로 유명한 곳이다.
간만에 갔더니 입구도 바뀌어 있었고 예약없이도 들어갈 수 있었다.
아직 꽃의 철은 아니어서 연꽃은 몽우리만 잡혀 있었지만
연밭 가득 잎들은 무성했다.
금방 살이 익을 듯한 강렬한 여름 햇볕을
온 얼굴에 다 받으면서
연잎만 잔뜩 찍어 가지고 왔다.
연잎은 아직 잎을 펴기 전에는 잎을 동그랗게 말고 있다.
그 시기의 연잎을 한쪽 옆에서 보면 영락없는 하트 모양을 그리곤 한다.
하트 모양은 사랑의 상징이다.
올커니하고 연잎에 사랑의 이야기를 담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6월 25일 경기도 양수리의 세미원에서

사실 나는 물속에서 살고 있었어요.
종종 나는 수면밖으로 몸을 내밀고는
나룻배처럼 물 위에 몸을 누이고 시간을 보내곤 했었죠.
내가 사는 곳은 물의 나라였어요.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6월 25일 경기도 양수리의 세미원에서

그러다 나는 그 물의 나라를 버리고
물밖의 세상으로 나왔어요.
몸을 꼿꼿이 세우고
완전히 수면 밖으로 나오게 되었죠.
그건 모두 당신 탓이예요.
내 운명이 될 사람이 물속이 아니라
물밖의 세상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으니까요.
하지만 내게 물밖의 세상은 낯설었어요.
물밖으로 나왔을 때,
한동안 나는 나를 꽁꽁 내 안으로 걸어잠글 수밖에 없었죠.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6월 25일 경기도 양수리의 세미원에서

가끔 온통 붉은 옷으로 치장을 한 고추잠자리 녀석이 나를 찾아와
온갖 아양을 떨며 나를 유혹하곤 했어요.
하지만 난 절대로 넘어가는 법이 없었죠.
왜냐하면 그 녀석은 내 짝이 아니었거든요.
내가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당신이었어요.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6월 25일 경기도 양수리의 세미원에서

가끔 기다림에 지치기도 했어요.
당신은 쉽게 나타나질 않았으니까요.
어느 한쪽으로 발자국 소리라도 들리면
나는 어느새 발돋움을 하고 목을 빼게 되었죠.
그럴 때면 몸이 한쪽으로 슬쩍 휘기도 했어요.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6월 25일 경기도 양수리의 세미원에서

그러다 드디어 당신이 나타났어요.
난 한눈에 알 수 있었어요.
당신이 나의 당신이란 것을.
난 당신에게 말했어요.
사랑해라고.
당신은 그 느닷없는 사랑의 고백에 당혹스러워 했지만
그러나 또 한편으로 한눈에 내 사랑을 알아보았죠.
우리는 서로 사랑에 빠져들었어요.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6월 25일 경기도 양수리의 세미원에서

이제 지상에 올라와 한동안 닫혀 있던 내 마음은
당신의 앞에서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어요.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6월 25일 경기도 양수리의 세미원에서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처음 당신에게 사랑을 고백했을 때
내 사랑을 굳건히 믿었던 당신이
내가 서서히 닫혀 있던 마음을 열자
오히려 사랑이 점점 희미해져 간다고 생각하는 거였어요.
물론 내 사랑은 변함이 없었죠.
당신은 내게서 사랑이 점점 식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지만
지나는 물잠자리 한 녀석은 여전히 변함없는 그 사랑을 용케도 눈치채고
내 사랑을 얻어볼까 잠시 기웃거리곤 했어요.
물론 난 절대로 녀석에게 내 사랑을 내주지 않았죠.
다만 사랑을 한 뒤로 마음이 한껏 여유로워진 나는
녀석에게 내 마음 한 켠에서 쉬었다 가는 것은 허락했어요.
그렇지만 고추잠자리에 이어 녀석도 내 사랑 앞에선 헛물만 켰어요.
내 사랑은 여전히 당신 몫이었어요.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6월 25일 경기도 양수리의 세미원에서

하지만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어요.
내가 드디어 내 마음을 모두 열었을 때
불행히도 당신은 그 날 우리의 사랑이 모두 없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6월 25일 경기도 양수리의 세미원에서

물론 개중에 우리들 가운데
마음을 모두 편 그 자리까지
사랑 고백의 문양을 그대로 새겨갖고 가는 친구도 있었죠.
하지만 난 그럴 필요까지는 없으리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활짝 연 마음이
당신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출발했다는 것을
난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요.
소문에 들으니 마음마저 하트 모양으로 열었던 그 친구도
사랑하는 사람이 하트 모양의 마음은 보지 못하고
그저 잎만 보고 있어서 사실은 크게 실망했다고 했어요.
당신도 마찬가지였죠.
나는 이제 내 마음을 모두 열었는데
당신은 그 순간 사랑은 사라지고
그저 흔하지 흔한 연잎의 일상만 남았다고 생각했죠.
당신은 말했죠.
오래 함께 하다 보니 사랑은 가고
그저 함께 먹고 자고 또 먹고 자는 일상만 남았다고.
그 말은 내게 큰 상처가 되었어요.
당신이 말한, 사랑이 사라진 그 일상이,
사실은 내가 당신에게 연 내 마음이었으니까요.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6월 25일 경기도 양수리의 세미원에서

이제 사랑은 사라지고 일상만 남았다고 생각하는 당신,
그 일상이 보석처럼 영그는 곳이 바로 내 마음이예요.
물방울이란 얼마나 흔한 거예요.
그 물방울이 당신을 생각하는 내 마음 속에선 보석처럼 영글어요.
그러니 사랑이 사라졌다고 생각한 내 마음 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세요.
당신과의 일상이 보석처럼 영글어 있을테니.
왜냐하면 난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4 thoughts on “연잎의 사랑

    1. 문은 좌우지간 아무도 안지켰어요.
      입구에 건물을 하나 지어서 시원한 것들 팔며 장사를 하더군요.
      장사는 아주 잘되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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