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순이를 만났다.
경순이는 우리 딸이 어릴 때 우리 앞집에 살던 아이였다.
앞뒷집 살면서도 거의 얼굴을 맞대고
인사를 나누는 법이 없는 게 서울이었는데
그 집과는 항상 인사를 나누고 지냈다.
경순이가 우리 집에 놀러와 우리 딸과 놀았고,
우리 딸은 또 그 집에 놀러가서 놀다오곤 했다.
초등학교는 둘이 같은 학교를 다녔다.
경순이가 맏형이었고 밑으로 동생이 하나 있었다.
둘의 우애가 보기 좋은 형제였고 나는 그 둘의 모습이 보기 좋아
언젠가 사진 한 장을 찍은 뒤 건네준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집에 놀러가보니 내가 찍어준 사진이 집안에 자리를 잡고
사진찍던 날 내가 보았던 형제의 우애를 변함없이 과시하고 있었다.
서울은 이사가 빈번한 곳이라 두 집이 계속 앞뒷집으로 살지는 못했다.
두 집 가운데서 이사를 간 것은 경순이네였다.
경순이네 집이 이사를 가고 난 뒤 얼굴보는 일은 뜸해졌지만
그래도 멀리 가지는 않아 동네에서 가끔 얼굴을 마주칠 때가 있었다.
볼일이 있어 시내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중간에서 지하철을 바꾸어 탔다.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누군가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했다.
보니 경순이다.
엇, 너, 경순이 아니냐. 방학이라 여기서 알바하는 거니?
아니요, 공익이요.
응? 아니 벌써 너가 군대갈 나이가 된 거야.
나는 반가워서 악수를 나누었고,
그녀에게 전화했더니
며칠전 경순이 엄마가 생각나 전화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경순이에게 엄마 전화 번호좀 알아가지고 오라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보니 그냥 서 있는게 아니고
도움이 필요할 듯한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면서
아주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돕고 봉사하고 있었다.
아이 참 잘 키웠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부모도 착했고, 경순이도 착하기 이를데 없었다.
동네 아이들 이름이 거의 기억이 나질 않는데
경순이만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사실 그 날 시내의 볼일도 며칠을 미루다 그 날 나간 것이었다.
그녀에게서 경순이네와 연락이 안된다는 얘기를 들은 뒤의 만남이기도 했다.
인연이란 생각이 들었다.
참 잘 큰 착한 경순이를 보자 마음이 아주 푸근했다.
잘 큰 이웃집 아이는 그 집의 행복이기도 하지만 내 행복이기도 했다.
2 thoughts on “경순이”
맞습니다. 좋은 이웃은 헤어져도
기억 속으로 들어가 있다가
가끔 길에서 툭 튀어나와 앞에 서요…
아직 울동네에 살고 있더라구요.
어머니도 며칠전 보셨다더군요.
날잡아 밥한번 먹으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