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과 냉커피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8월 9일 서울 천호동의 커핀그루나루 굽은다리역점에서

얼음은 싸늘한 체온을 가졌지.
그 싸늘한 체온 때문에 언제나 냉기가 돌아
절대 가까이 할 수 없을 것만 같았지.
하지만 그들도 북극에 살 때는 한 때 행복했었지.
그 싸늘한 체온을 서로 나누며
어깨를 걸고 거대한 하나가 되어 살 수 있었기에.
부등켜 안고 하나가 되면
싸늘한 체온마저도 따뜻했지.
게다가 그곳은 더 없이 안전한 곳이기도 했지.
도시는 그렇게 살 수가 없는 곳.
도시로 온 뒤로 얼음은 뿔뿔히 흩어져
냉장고의 밀폐된 공간 속으로 몸을 움추리고
격벽으로 차단된 좁은 방 속에서
그저 기계가 내주는 냉기로 호흡을 연명해 갈 뿐,
어느 얼음과도 부등켜 안을 수가 없었지.
가끔 살다보면 운명은 목숨보다 더 모진 법.
얼음은 어느 날,
향기로 먼저와서 코끝을 자극한 커피에게
마음을 모두 빼앗기고 말았지.
그는 펄펄 끓는 뜨거운 체온을 갖고 있었지.
그러니 사랑은 어림도 없는 법.
하지만 얼음은 단번에 알 수 있었어.
둘이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둘은 한눈에 넘어가 서로를 부등켜 안았지.
둘은 서서히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지.
얼음은 분명히 알게 되었지.
저의 싸늘한 차가움이
홀로 남겨진 얼음의 쓸쓸함이 묻어난 체온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또 알게 되었지.
제 몸의 체온을 내주며 포옹했을 때
뜨거운 커피와 누리는 시원함이
바로 사랑의 온도라는 것을.
그렇지만 운명은 가혹했지.
눈앞에서 부등켜 안고 뒤섞이는 사랑이 눈꼴시었는지
도시의 년놈들이 커피만 쪽 빨아먹고 얼음만 남겨놓고 말았지.
그 뒤로 얼음의 남은 생은 하염없는 눈물 뿐이었지.
눈물은 짠 법이지만 얼음은 염분마저 말라
눈물이 그저 밍밍하기만 했지.
그래도 사랑의 흔적은 지워지질 않아
밍밍한 눈물 속에 희석된 커피향이 엷게 남아있었지.

**얼음이 안전한 곳은 북극이란 얘기는
트위터에서 @pippiyaho님과 대화를 주고 받다 그 생각을 얻었다.
pippiyaho님을 난 삐삐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7 thoughts on “얼음과 냉커피

  1. 아이스는 이가 시려서 못먹는 뜰기.
    하지만 뜨뜻한 커피의 잔향은 즐기는 뜰기
    하지만 시원하게 사약같은 커피를 마시면 배가 슬슬 아파온다는..ㅋㅋ

    1. 커피와 얼음의 사랑을 갈라놓았다는 죄책감 때문?
      전 커피는 따뜻하나 시원하나 그다지 좋아하진 않습니다요.
      제가 좋아하는 건 환타.
      촌스럽다고 놀림 받으면서도 놀러가면 꿋꿋하게 한병 사먹습니다.

  2. 가까운 곳에 커피숍에 생겨서 좋다.
    근데 조용히 책읽을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야.

    얼음 잔뜩 들은 커피 한잔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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