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가고 싶은 날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10월 17일 강원도 설악산에서

날씨 좋은 날이면 산에 가고 싶다.
발목을 잡는 지상의 중력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질 때면
더더욱 산에 가고 싶다.
난 산에 가면 걷지 않을테다.
서서히 날아올라 산의 정상으로 가고
서서히 날아 산을 내려올테다.
날개가 없으니 날 수는 없는 법.
하지만 난 산에 가면
그때부터 내 다리를 날개로 삼고
발밑에 밟히는 흙길과 바위들을 구름으로 삼을 테다.
흙길과 바위들의 부력은 놀랄 정도로 커서
아마도 내 체중을 감당하고도 남으리라.
가끔 힘에 겨우면
바람의 갈기라도 잡듯
가까운 나무를 손으로 붙잡고
내 몸을 끌어올리리라.
숨을 헉헉 몰아쉬며,
그러면서도 바람의 부력을 밟고 하늘을 나는 새처럼,
그러나 천천히 날아
산을 오르고 내려올테다.
가끔 중간중간
다리를 땅으로 내려 날개접듯 접고 쉬면서
천천히 산을 날아오르고 또 날아서 내려올테다.
난 가끔 산에 가서
산을 날아오르고 싶다.

8 thoughts on “산에 가고 싶은 날

  1. 저는 산보다는 강을 좀더 가고 싶어지더라고요.. 수영은 하지도 못하고, 물에 깊이 들어가는것은 무서워하는 주제에.. 물을 보는것은 좋아하는 이상한 사람인지라…

    1. 강에 가면 작은 배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노저어 가는. 그럼 강가에서 끊긴 길을 다시 배에 싣고 길을 열어갈 수 있다고 어떤 시인이 알려주었거든요.

    2. 이진명이란 시인의 시인데,

      … 한 어른이 와서
      흐지부지 물속으로 들어가 버린 모래들판의 길을
      삐걱이며 나무배에 싣고 간다

      요렇게 되어 있어요.
      시 제목은 “강변에 이르렀을 때”
      오랫만에 이 시를 들춰봤어요.

  2. 이십대에는 아놔~ 어차피 내려올걸 뭣하려 올라들 갈까?
    하면서 초입에 담요깔아좋고 나머지 친구들이랑 고돌이를 쳤었더라지요.
    지리산이란 곳에서요.
    그런데 사실은 무섭기도 했어요. 바위.거센 물. 두려움.

    왜 올라가나? 이 마음은 없어졌으나.
    도전은 무섭습니다..
    아름다운 절이 있고. 가파르지 않고. 포근한 산이 있다면.
    가보고싶어요

    1. 젊을 때는 산에 갈 필요가 없어요.
      세상을 날아다니며 살 수 있으니까.
      젊은 시절이 지나면 세상에 납짝 업드려 살게 되서
      산에 가서 날고 싶어져요.
      내가 누구한테 들은 얘기인데
      절은 여기 있는 절 말구 저기 있는 절로 가면 쉽게 갈 수 있어요.
      저절로 가거든요. ㅋㅋ

  3. 이런 뷰를 찍으려면 경기도를 벗어나야겠지요?

    가끔 동원님 사진 볼 때, 구글뷰처럼 군데군데 저 보고 싶은 부분을 클릭하면
    확대를 거듭해 당겨볼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럼 발밑의 흙과 바위가 구름 모양인 걸 알 수 있을 테니까요.

    1. 산의 우열을 가른다는 것이 좀 뭣하긴 하지만 설악산, 한라산, 지리산은 함부로 넘보지 못할 특별함을 가진 것 같아요.
      일단 올라가는 것도 쉽지가 않은 듯.
      특히 설악산은 지금까지 올라본 산 중에선 주저없이 첫손가락에 꼽게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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