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상자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9월 13일 집에서

항상 집에온 택배 상자는
사각의 반듯함을 자랑했다.
귀퉁이나 가슴을 열어 물건을 내주면서도
그 사각의 반듯함을 잃는 법은 없었다.
그러나 오늘 온 택배 상자는 이상한 녀석이었다.
내가 애플 스토어에서 산 물건을 배달온 녀석이었다.
녀석은 내가 물건을 달라고 하자
언제나 잃지 않던 사각의 몸매를 헌신짝처럼 내 던지고
마치 전개도로 돌아가겠다는 듯이
제 몸을 동서남북으로 완전히 풀어놓았다.
대개 택배 상자들은 물건을 내주면서도
여전히 사각으로 짜맞춘 몸매를 잃지 않았는데
오늘 온 녀석은 그 사각의 몸매를 모두 버리고
완전히 평면으로 드러누워 가슴을 열었다.
나는 녀석이 정말 상자였는지 그것이 의심스러워
다시 녀석의 몸을 사각으로 짜맞추어 보기까지 했다.
모서리를 맞물리고 각을 맞추자
녀석은 언제나 보던 그 택배 상자로 돌아갔다.
사각에 묶여사는게 운명인 줄 알았는데
오늘 온 녀석은 모서리만 잠시 맞추고 있다 손을 놓으면
언제든지 그 사각의 몸매를
평면으로 흩어놓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녀석이었다.
오늘 아주 독특한 녀석,
전개도의 평면과 사각의 상자 사이를
언제든 오갈 수 있는 녀석을 만났다.
애플에서 온 녀석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9월 13일 집에서

4 thoughts on “택배 상자

    1. 우리 나라건 아닌거 같아요.
      아직까지 우리 나라가 요 정도 마무리는 못하는 거 같거든요.
      안에도 비닐로 된 고정 장치가 있는데
      그것도 아주 쉽게 분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더라구요.
      이게 엄청 신경쓴 상자 디자인 같았어요.
      상자는 괜찮은데… 그 안에 든 상품은 불량이 나서 교환했어요.

    2. 요게 아주 환경친화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일단 풀칠을 안하고 상자 분해하여 접기도 좋구.
      아이폰하고 색깔도 맞출겸 애플에서 샀는데… 어떻게 된게 제품은 엉망이고 상자만 맘에 들었다는.
      혹시 상자에 덤으로 넣어서 보낸 건 아니것쥬.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