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초록이 지천이다.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넘긴 나무들이 뿜어내듯 초록으로 산과 들을 뒤덮고 있다.
시인 황인숙은 나무를 가리켜 「조용한 이웃」이라고 했다.
그는 “나무들은 수수하게 사는 것 같다”며
자신의 부엌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잔가지들이 무수히 많고 본줄기도 가”는 나무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하늘은 그들의 부엌
오늘의 식사는 얇게 저며서 차갑게 식힌 햇살
그리고 봄기운을 두 방울 떨군
잔잔한 바람을 천천히 오래도록 씹는 것이다.
-황인숙, 「조용한 이웃」 중에서
오늘 들과 강, 산으로 나가 그 나무의 초록 만찬에 함께 했다.
이제 사람들을 그 초록의 만찬에 초대한다.
아직도 이파리가 작아
겨울나무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다.
줄기만 앙상한 겨울 나무는 나무의 들숨이다.
겨우내내 가지의 사이사이로 하늘을 가득채운채 푸른빛을 길게 호흡한다.
이제 그 가지끝에서 내뿜는 초록빛 이파리는 나무의 날숨이다.
가을까지 길게 내쉰다.
초록 반, 하늘 반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지만
초록도 나무 두 그루가 맞들면 훨씬 낫다.
멀리 아파트의 사람들은
나무를 보며 피로를 풀겠지만
나무는 아파트를 볼 때마다 피로하다.
초록이 둘러싸면
강줄기도 초록으로 물든다.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강줄기를 따라 질주한다.
초록은 지천이지만 속도가 너무 빠르면
속도가 초록을 삼킨다.
그러면 넘치는 초록도 전혀 눈을 채우지 못한다.
초록의 만찬을 즐기고 싶다면 조용히 그 곁을 걸어다닐 일이다.
초록이 제자리에 붙박혀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초록은 뻗어나간다.
세상을 온통 물들일 듯이.
갈색의 마른 잎으로 겨울을 나는 동안
가랑잎과 바람의 대화는 항상 서걱거렸다.
다시 연두빛으로 물든 요즘
가랑잎과 바람의 대화는 예전처럼 살랑대고 있다.
소나무가 가운데 손가락을 세우고 있었다.
계절에 무임승차하려면
엄지를 아래로 내렸어야 했으리라.
그러나 이 땅의 계절은 소나무의 손가락이 어디로 향하든
그에 개의치 않고 신록의 열차에 무임승차시켜 주었다.
비닐이 모아준 따뜻한 온기 속에서
벼들이 파랗게 자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꿈은 가을 들판에 무르익을 황금빛이다.
낙엽송의 가는 이파리는
대지의 실핏줄이다.
초록을 실어나른다.
그 싱싱함이 하늘을 더욱 푸르게 물들인다.
초록이 모두 그 나무의 초록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따뜻이 감싸주어야할 막내였나 보다.
6 thoughts on “초록의 만찬”
가끔 놀러오세요. 비포장 도로를 30분이나 덜컹 거리며 들어가서 찍은 사진이랍니다.
“따뜻이 감싸주어야할 막내였나 보다.”
아… 혼자 외로운 나무라고 생각했는데 감싸주어야 할 막내라는 표현에 놀라고, 훈훈해지는 마음을 가지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겁게 보아주시니 고마울 따름이예요.
맨 밑에것도 좋고..그 위에위에것도 넘 좋네요..
모..특히 더 좋은거 말하는 겁니다..
^^
이스트맨님 덕분에 늘 좋은 구경합니다.
고맙습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업잘되시길 빌어요.
답답하던차에 이스트맨님의 사진을 보고 좀 낳아졌습니다.
지금 저희 매장은 너무나 더운데…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 시원한 느낌을 발 느낄수 있는 거 같아요. 항상 좋은 글, 좋은 사진들 잘 보고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