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그녀의 친정 나들이는 거의 항상 돈암동이었는데
올해는 정릉 골짜기로 바뀌었다.
차례를 모시는 큰손주가 그곳으로 이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주 좋았다.
삼각산(북한산) 자락이어서 몇 발자국만 떼면
등산로 입구가 나오는 것도 좋았고
집밖만 나서면 온몸으로 헤쳐가야할 정도로
가득차는 계곡의 물소리도 좋았다.
나는 간간히 나가 좋은 풍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오는 길에 그녀가 어머니를 집에다 모셔다 드리고 왔다.
어머니는 지금은 막내 아들이 모시고 살고 있다.
세월을 피할 수 없게 된 어머니는
이제 걸음걸이 하나하나가 힘드시다.
지금의 우리들이 그렇듯이
어머니도 평생 다리가 그 걸음에 어머니를 싣고 돌아다녔으나
지금은 어머니가 몸으로 다리를 들어올려
한걸음 한걸음 떼신다.
다리보고 그 동안 수고했다 보듬어주고 안고 가시는 듯하다.
그 옆을 막내 아들이 같이 간다.
손이 어머니의 등뒤에 닿을 듯 말듯 걸려있다.
그 간격은 어머니를 젊은 완력으로 부축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뒤를 보살피는 것 또한 잃지 않는 거리이다.
세밀한 보살핌이다.
어머니는 아들의 그 마음씀 속에서
아직은 그래도 큰손주가 모시는 추석 모임으로 걸음할 수 있다는
만족스런 하루를 사신다.
단순히 물리적 시간으로만 보면
막내 아들이 가장 어머니 사랑을 적게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어머니의 노후를 지키고 있는 것은 막내 아들이다.
세상사가 그렇듯이 종종 풍요는 감사를 불러오기보다
풍요에 대한 느낌을 무디게 만들기 일쑤이다.
사랑도 그렇다.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그 사랑을 잊을 때가 있다.
그 때문이었을까.
막내 아들이 이제 어릴 때 못다채운 어머니의 사랑으로
삶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결핍된 사랑은 원망을 부르지만
가끔 놀랍게도 그 결핍을 사랑으로 채우는 이들이 있다.
또 누군가가 망각한 사랑을
막내 아들은 잊지 않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였는지 계단을 올라가는 둘의 뒷모습에서 사랑이 보였다.
언제 같이 앉아 장모님 옆에 두고
형님과 술 한 잔 해야 겠다.
6 thoughts on “어머니와 막내 아들”
망할놈의 세월이 어머니의 허리며 어깨로 올라갔군요…
오래 건강하게 사시길….
고마워요.
어떤 맘좋은 시인이 어머니 건강 빌어주었다고 전할께요.
마음이 가는 글입니다.
마음씀도 섬세한 구석이 분명히 있는 듯 싶어요.
좋은 아들 두셨네 하고 생각했지요.
행복한 추석을보내셨는지요’
이번 추석은 괜찮았던 것 같아요.
정릉 골짜기서 사진도 찍고…
남한산성에도 잠시 오르고.
중간고사 준비 잘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