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예술이란 게 참 웃긴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이란 것이 작품을 먼저 만나고
그 다음에 작가를 만나는 것이 순서인 듯한데
실제로는 작품이 작가의 뒤에 와야 더 자연스러울 때가 많다.
그러니까 시와 먼저 만나 작품들과 친숙해지고 그 뒤에 시인을 만나면
수스럼없이 시를 가운데 두고 시인과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를 먼저 만난 나는 시인을 만나 반가운데
시인에게선 경계심을 본 적이 있었다.
화가도 마찬가지다.
좋은 그림을 만나 반갑다고 하여
그 그림을 그린 화가에게 수스럼없이 말을 붙이기는 쉽지가 않다.
그런 측면에서 그림에 앞서 화가를 먼저 만나 인연을 트고
이어 그의 작품을 만나는 것은 큰 행운에 다름아니다.
내게 그림의 경우 그렇게 그림보다 작가가 먼저온 경우가
화가 이상열 선생님이었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마니프 서울국제아트페어로
이상열 선생님의 그림을 보러 갔다.
얼굴이 익은 사이이기에 작품을 앞에 놓고 수스럼이 대화를 나눈다.
첫번째 얘기는 「노란 붓꽃」이란 작품에 대한 얘기였다.
이미 붓꽃은 고흐의 작품이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벗어나 이상열만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물어본다.
어떤 점이 그렇게 어려웠나요?
그가 답한다.
“고흐의 붓꽃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가 붓꽃의 내면을 그렸다는 느낌이 든다.
화가가 붓꽃을 그리면 그것이 붓꽃의 겉모습을 그린 것 같지만
사실은 속, 그러니까 붓꽃의 내면을 그리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사람을 보면서 겉의 살덩이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지탱하는 뼈대를 그리는 것과 같다.
고흐는 붓꽃의 겉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붓꽃을 지탱하는 뼈대를 그렸다.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붓꽃이 가진 어떤 내면의 목소리를 그려내는데 있어
고흐가 너무 뛰어났기 때문에
그 뒤의 화가들은 붓꽃을 마주하면
붓꽃이 들려주는 또다른 내면의 소리를 듣기가 어렵다.
고흐의 붓꽃이 자꾸 앞에서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상열의 붓꽃을 그리려면
눈앞에 어른거리는 붓꽃의 그림자, 바로 고흐의 붓꽃 너머로 넘어가야 한다.
그 작업은 아주 어려운 작업이다.”
이상열 선생님이 고흐의 붓꽃을 넘어간 자리에서 그의 그림을 마주하자
초록의 잎이 노란 붓꽃을 마치 불꽃놀이하듯 터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또 나는 물었다.
사과나무 그림들 중에 몇몇 작품을 보면 유난히 잎들이 노랗다.
실제로는 그림처럼 노란 경우는 없지 않은가?
이상열 선생님이 답했다.
“잎과 과일을 동시에 보지 말고 둘을 각각으로 나누어서 보라.
나는 사과의 잎에 늦가을을 담고 싶었다.
늦가을의 색을 사과나무의 잎에 담았더니 노란색이 나왔다.
반면 사과에는 그냥 사과를 담았다.
당연히 그건 붉은 색이 되었다.
잎에는 늦가을을 담고 사과에는 사과를 담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림이다.”
그의 얘기를 듣고 난 뒤
매화나무를 그린 두 점의 작품을 보았다.
그림 하나는 흰색이 유난히 강조되어 있었고
다른 그림 하나는 분홍빛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흰색이 유난히 강조된 매화나무에선
흰눈이 세상을 뒤덮은 한겨울에
그 눈보다 더 흰 매화를 피우고야 말겠다며 겨울을 이겨낸
매화의 꿈이 보였고, 그 꿈은 매화꽃과 뒤섞여 있었다.
반면 분홍빛이 어른거리는 매화나무를 살펴보았더니
횐꽃엔 매화가 담겨 있었고, 분홍빛엔 이른 봄의 온기가 담겨 있었다.
화가의 그림을 마주하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그 자리가 좋았다.
얘기를 하는 사이, 사람들이 그의 그림 앞에 서 있다 지나가곤 했다.
**전시회 일정은 다음과 같다
-전시회: 2010 마니프 서울국제아트페어
-전시 기간: 2010년 10월 1일(금) – 13일(수)
-전시 장소: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B33
-입장료: 5,000원
4 thoughts on “화가 이상열 선생님과의 대화 – 2010 마니프 서울국제아트페어에서”
항시 바쁘신 중에서도 전시회를 관람해주시고 또한 좋은글과
그림에 대한 남다른 해설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욱 더 정진하여 뜻깊은 전시회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날 조기옥 자매님도 오랫만에 뵈니 넘 반가왔습니다
시간이 마치 4-5 년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었습니다
같이 식사를 못해 내내 아쉬웠습니다
11월에 좋은날 연락 드리겠습니다 ^.^
올해 가을의 풍성함을 넘진님께서 열어주셨어요.
갈 때마다 그림에 약간씩의 변화가 있어서 더욱 좋은 듯합니다.
올해는 전반적으로 지난 해보다 그림 수준도 많이 높은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담달에 연락드리고 밀린 회포 풀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건강에 신경쓰시구요.
어제 여동생이 예술의전당에 마니프 전시에 간다기에
다른 회원전시(kbs시청자갤러리)보고 인사동 아는 작가분오픈식 가려다
급…동생따라 예술의전당으로 갔네요
이상열작가님의 작품이 이층에 있어서 잘 보았습니다^^
전시회 마지막날이어도 인사동(화요일 두시이후)처럼 철수하는날
전시회가 오전까지만 볼 수 있는게 아니어서 여유있게 잘 보고 왔네요^^
어쩌다 화요일 오후 두세시경 인사동풍경을 볼때가 있는데요
그..묘한 감정이 교차되거든요
전시를 끝낸 작가의 허탈함과 반입하는 작가들의 설렘의 기운….
도토리님 전시회는 저도 20일날 가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그래야 번거롭지 않을 거 같아서요.
이번에 가면 두번째 보는 거예요.
지난 번에 사실 제가 도토리님 작품 앞에서 상당히 오래 있었어요.
이번에는 어떤 작품을 만나게 될까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