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산 마을극장으로 오페라와 합창을 보러가기 전에 트위터 친구 매버릭님(@maverick_lab)은 아마도 무대 못지 않게 객석에서도 놀랄 일이 많이 벌어질 거라고 했다. 하루 전날 처음 얼굴을 마주한 자리에서 이번에 공연하는 「바람산 이야기」가 창작 오페라라는 얘기를 들었으며, 이미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얘기였다. 동네에서 하는 공연인데 창작 오페라라니. 작곡자는 성미산 학교의 선생님으로 있는 실비님이었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자리가 없어 뒷쪽에서 서서 보아야 했다. 가장 많이 본 것은 사람들의 뒤통수였지만 노랫소리는 뒷쪽도 차별하지 않아 듣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인상적인 장면들이 몇 가지 있었다.
장면 1: 객석의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 하나가 뒤를 돌아보더니 서 있는 한 여자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감자! 안녕!” 그 여자분도 손을 흔들어 답했다. 이곳에선 어른들이 모두 어떤 닉네임으로 불리고 있었다. 아저씨 아줌마란 호칭이 이름을 모두 삼켜버린 세상에서 이곳의 어른들은 어떤 자신만의 별칭으로 아이들과 만나고 있었다. 어른과 아이들이 이름의 높이를 나란히 맞댄 세상이었다. 감자라 불린 여자분은 국악에 아주 밝은 듯, 나중에 가야금 산조 때 얼씨구 좋다는 추임새를 넣으며 흥을 돋워 주었다. 조용히 듣고만 있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내게 내가 뭘 모를 때 귀만 열어놓는 것이라는 걸 알려준 분이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난 뒤 감자라는 분이 국악선생님이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국악에 밝은 것이 아니라 아예 그 분야의 전문가였다.)
장면 2: 공연 중에 2층에서 두 명의 사내 녀석들이 무대 뒤편으로 가서 서더니 V자를 그렸다. 말이 무대 뒤편이지 2층이라 공연 무대의 뒤편으로 녀석들이 다 보였다. 공연 기획자인 삐삐님(@pippiyaho)이 당황스러웠는지 황급히 객석 뒤편으로 나와 쟤네들좀 치워달라고 누군가에게 손짓을 했다. 아이들은 곧 호출을 당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사람들의 집중력은 흩어지지 않고 있었다.
장면 3: 마을어린이합창 중에 독창 부분이 있었다. 독창을 한 어린이의 노래가 고음으로 올라가다 그만 갈라지고 말았다. 이른바 삑사리가 난 것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그 어린이가 ‘에혀’하고 한숨을 쉬었고, 그 한숨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중에 사회자는 실수를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 그 어린이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내자고 했다.
장면 4: 뒷쪽에서 잔뜩 목을 빼고 공연을 보고 있는데 한 어린이가 내 다리를 톡톡치더니 조용하게 말했다. “비켜주세요. 들어가고 싶어요.” 아이는 그 얘기로 내 앞으로 나갈 수 있었으며, 또 그 얘기를 반복하며 계속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이곳에선 아이들이 무엇이든 말로서 풀어가고 있는 듯했다. 대개의 경우, 어른이나 아이나 앞으로 나가고 싶으면 몸으로 밀어부친다. 밀어부치는 몸에 익숙해 있던 내게 말로 풀어가는 이곳의 모습들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은 어디서나 자신을 말로 표현했다.
장면 5: 보통 아이들이 많은 곳에선 쉴 사이 없이 듣게 되는 말이 있다. 바로 “하지마”와 “안돼”이다. 어쩐 일인지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미리 사진을 찍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놓고 후레시는 터뜨리지 않겠지만 셔터 소리는 좀 요란할 것이라고 알려둔 상황이었지만 객석 뒷자리까지 서 있는 사람들로 꽉 차있는 상황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라이브뷰를 이용해 카메라를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고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같이 나눈다.
「바람산 이야기」는 성미산 이야기를 다룬 오페라이다. 사진의 등장인물은 벌레이다.
아이들도 오페라에 출연했다.
장승. 사람들에 의해 바람산이 망가지지만 마음을 모아 이 장승을 춤추게 하면 다시 평화가 온다.
풀과 새, 벌레의 노래. 그러고 보면 숲은 노래로 가득찬 곳이다.
객석에 앉아 있었더라면 보지 못했을 장면을 뒷쪽에 서 있는 덕에 본 것도 많다. 공연을 하건 말건 핸드폰 게임에 빠져있는 두 악동들을 만난 것도 그 중의 하나이다. 아무에게도 방해되지 않게 한쪽 구석에서 자신들의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보통 이런 합창을 보면 아이들의 자세가 굳어있는 경우가 많아 아이들이 노래에 꼿꼿하게 묶여있다는 느낌이 들곤 했었다. 성미산 마을의 어린이합창단은 즐기면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완연했다. 노래에서 노래못지 않게 아이들의 자유가 느껴졌다.
바로 삑사리내서 큰 웃음을 선물했던 어린이. 고마워, 나도 즐겁게 웃었어. 그 뒤의 반주자가 창작 오페라 「바람산 이야기」의 작곡가 실비님이다.
앞니빠진 어린이가 너무 귀여웠다.
객석의 열기도 뜨거워서 꼬맹이 둘이 객석 맨 뒤쪽에서 서서 함께 하며 노래도 함께 불렀다.
앵콜이 나왔다. 앵콜이 나오자 지휘자가 앵콜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피곤을 가장 먼저 걱정했고 아이들에게 견해를 물었다. 견해는 갈렸다. 앉아서 하면 안되겠냐는 견해가 나왔고 지휘자는 앉아서는 안된다고 했으며, 그러다 하자는 견해를 내놓은 아이가 있었다. 잠시간의 논란 뒤에 결국 딱 한 곡만 하는 것으로 앵콜이 수용되었다. 흔치 않은 장면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아이들에 뒤섞여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그 재잘되는 소리도 이제는 노래만 같았다.
뒷풀이는 매버릭, 그리고 그녀와 함께 가졌다. 말로만 듣던 작은 나무에서 맥주 한 잔 했다. 그녀는 커피를 마셨다. 길게 얘기나누고 싶었지만 그 기회는 다음으로 미루어졌다. 트위터에서 맺은 좋은 인연으로 올해 가을의 이틀밤이 훈훈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공연은 다음과 같이 열렸다.
-공연: 창작 오페라 「바람산 이야기」, 마을어린이합창단
-공연 시간: 2010년 10월 13일(수) 오후 7시
-공연 장소: 서울 마포의 성미산마을극장
6 thoughts on “성미산 마을의 창작 오페라 「바람산 이야기」와 마을어린이 합창단의 공연”
잘 보고 갑니다. 2011년 2월, 성미산마을극장에서 <바람산 이야기>를 다시 하는데, 기대가 되는군요.
어디서 초대받아 다시 공연한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너무 사람이 많아 고개를 기린처럼 빼고 봤었는데 자리 좀 잡고 본격적으로 다시 보고 싶네요.
성미산 마을…사진전에 이어 창작오페라까지…
참 좋아 보여요 정말 마을이라는 마음이 들어요
사람들이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사는…
얼마전 앞집에 새로운 이웃이 이사를 왔어요
지난번 앞집아주머니도 상냥하고 시원한 웃음이었는데…
이번에 이사온 아주머니도 아주 상냥하더군요
물론…엘리베이터안에서 대화 잠깐해요 ㅜ..ㅜ;;
아..이런 마을도 있군요…
아이들이 성장해서 정말 좋은 추억이 되겠어요
후기도 너무 재미있게 쓰시고^^
이 마을이 홍대에서 아주 가까운데 공동 육아로 시작하여 형성된 마을이라고 해요. 어떻게 보면 마을이라기 보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이 모여 이룩한 공동체를 성미산 마을이라고 부른다는 것이 정확할 것 같아요. 공동체가 지역이 아니라 그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이 중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듯 싶었어요. 전부터 관심은 있었는데 이번에 아는 사람이 생기면서 올타꾸나 하고 가보게 되었어요. 사람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의미있게 와 닿더라구요. 종종 찾아보게 될 것 같아요. 이제 아는 사람도 있으니 더더욱.
이런 멋진 공연후기를..^^
사실 우리 아이들이 너무 편하게, 너무 만만하게 공연을 즐기는 문화가 있어서 외부에서 오시는 분들께 많이 죄송하거든요. 이렇게 좋은 면만 봐주시니 감사해요.
공연 끝내고 피곤해하는 우리 꼬마때문에 제대로 인사도 못드렸는데 담에는 저도 한잔 할 수 있는 기회를..
그런 아이들 만나기가 쉽지 않은 세상인걸요.
대개 학원 끝나고 밤늦게 돌아오는 피곤한 일상 속에 아이들이 있는 세상이니…
자유가 만져지는 아이들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어요.
사진전에 이어 이 날도 입구를 잘못찾았는데
한 아이에게 물었더니 정말 공연하는 곳을 똑부러지게 설명해주더군요. 초록색 문이 있는데 그 문으로 들어가라고 아주 상세하게.
아이들이 정말 많이 피곤했었군요. 하긴 땀을 흘리는 아이들이 여럿 눈에 띄더라구요.
담에 놀러가면 같이 한 잔 하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