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이 없었다면 거의 가보기 힘들었을 사진전을 다녀왔다. 아는 사람은 트위터에서 알게 된 @pippiyaho님이었다. 트위터 상에선 삐삐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인터넷에 떠있는 성미산 마을의 문화 예술 축제 공지를 보고 장소를 확인했다. 인터넷으로 다음 지도를 펴놓고 미리 확인을 해두었는데도 장소를 찾아가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마포구청역의 4번 출구로 나오는 것까지는 계획대로 되었지만 거기서부터 나는 혼란스러워지고 말았다. 나오자마자 곧바로 눈앞에서 만난 가마솥 순대국집의 옥상이라고 했는데 그 순대국집을 너무 일찍 만난 느낌이 들었고, 그런데다가 내가 들어간 입구는 옥상으로 가는 길목을 시커먼 어둠이 가로막고 있었다. 돌아나온 나는 간판이라도 있겠지 하는 심정으로 동네사진관이란 이름을 중얼중얼거리며 길을 따라 내려갔으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내 시선에 그런 간판을 내밀어주는 건물은 하나도 없었다. 가마솥 순대국집 건물에 미련을 못버린 나는 다시 그 건물까지 올라왔고 그 건물을 한바퀴 빙돌다가 드디어 다른 입구를 발견했다. 그 입구의 한쪽 벽면에 동네사진관이란 이름이 옆으로 몸을 눕힌 A4 용지에 담겨 있었다. 마치 숨바꼭질이라도 하다 이제야 들킨 것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글자들이 내게 말했다. ‘나, 이제 들킨 거야.’ 그래, 너네들 이제 들켰다. 아니, 무슨 표지가 숨어있는 경우가 다 있냐. 나는 투덜거리며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으로 올라갔더니 길이 양쪽으로 나뉜다. 왼쪽으로 갔더니 바같이 보이는데 사람이 안보인다. 돌아나오다 사람을 만났다. 사진전하는데 맞냐고 했더니 바로 옆을 가리킨다. 올라와서 나온 입구를 지나 옆으로 갔더니 그곳에 다시 옆으로 몸을 눕힌 A4 용지 속에 동네사진관이 새겨져 있다. 아니, 그런데 여기는 표지가 왜 다들 이렇게 숨어있냐. 하지만 나는 숨바꼭질 끝에 동네사진관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내가 예상한 것은 살롱 드 마랑의 여기저기에 펼쳐진 이젤과 그 위에 얹힌 사진이었지만 나를 맞아준 것은 사진이 아니라 하얗게 비어있는 커다란 화면이었다. 사진 전시회가 아니라 사진 상영회였다. 조금있다 저 하얀 화면에서 사진들이 튀어나와 사람들과 놀 예정이 잡혀있었다.
사람들은 서로 알고 있는게 분명했다. 나는 한 사람을 빼놓고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모두가 서로 알고 있을 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으면 심각한 소외감에 빠져들 수 있다. 나는 약간의 소외감으로 쭈볏거려야 했다. 처음 가는 모임에서 몇 번 이런 소외감을 맛보았던 경험이 있다. 그나마 한 사람이라도 알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와인 파티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여덟 시가 되면 여기저기서 많은 일들이 시작되겠지만 오늘 여기선 여덟 시가 되면 사진 상영회가 시작된다. 아직 그 시간까지 10분의 시간이 더 남아있다. 새로운 사람들이 기존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또 와인 잔을 부딪쳤다. 내게도 권했지만 딱 한 번을 권하고는 지나가고 말았다. 아, 여기서는 딱 한 번밖에 권하질 않는가 보구나. 나중에 뒷풀이 자리에서 난 맥주 한 잔 하겠냐는 얘기에 곧바로 그러고마고 응했다. 여기선 기회가 단 한 번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수선하다. 평소의 모습이리라. 원래는 음식도 팔고 술도 파는 곳이지만 오늘 잠시 사진 전시회를 위해 공간을 내주었다. 그 공간은 생활 공간으로서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정말 동네에서 열리는 사진전이다.
바로 내 옆에 있던 아이. 가끔 카메라가 무슨 자장에 이끌린 듯 대상에 다가서는 경우가 있다. 이 사진도 그렇게 찍었다. 아마 동네 사람들이라면 어, 누구네 할 것이다.
고기반 물반이란 얘기가있는데 여기는 아이들반 어른반이었다. 얼음 과자를 입에 둔 남자 아이 둘이 눈에 들어왔다. 한 아이는 먹고 있었는데 한 아이는 불고 있는 듯하다.
이름까지 챙겨둔 꼬맹이 연서이다. 이제 갓배운 걸음마로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녔다. 가끔 주저 앉기도 했지만 곧 일어서서 다시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내 카메라에 눈길까지 내주었다.
엄마와 딸이 대화를 나눈다. 함께 사진전에 왔나 보다.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덟 시가 되자 반장이란 분의 사회로 사진 상영회가 시작되었다. 2010년의 추억을 더듬어 보는 사진전이다. 출품자를 한 분 소개하고 사진을 보여주고 또 한 분을 소개하고 사진을 보여주었다. 모두 자신의 원래 이름을 내놓고 삐삐나 토마토와 같이 인터넷에서 흔히 쓰이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소개되었다. 인터넷에서 자주 접한 탓에 그 이름들은 내게도 친숙했다. 그곳의 사람들은 얼굴은 낯선데 이름은 친숙한 사람들이었다. 때로 이름이 먼저오고 얼굴은 나중에 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곳 사람들이 그랬다.
드디어 사진 상영회가 시작되었다. 보통 사진전은 사진 앞에서 어슬렁거리다 물러나는게 보통인데 성미산 마을의 사진전은 사람들이 사진 속을 들락거렸다. 학교에 입학한 아이들 사진이 지나갈 때쯤 관객들 사이에서 “쟤는 2반인가”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동네의 사진전에선 사람들이 그냥 사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진 속으로 들락거린다. 나도 가끔 전시회에 가면 작품 속으로 훌쩍 들어가 보고 싶을 때가 있었다. 예술이 동네로 오자 그것이 충분히 가능했다.
간간히 멀리 해외로 다녀온 여행 사진도 곁들여지면서 사진전은 계속 되었다. 사진에 텍스트도 곁들여졌다. 어떤 텍스트는 아주 길어서 읽다보니 사진이 텍스트를 뚝 잘라먹고 다음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나에게는 잘리고 있었지만 동네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에 읽은 듯했다.
사진전이 끝나자 모든 사진들이 하얀 화면 속으로 다시 사라져 버렸다. 사진은 단 1시간 동안만 사람들과 놀아주면서 우리들을 가까운 한 해 동안의 시간 속으로 여행을 시켜주었다.
아쉬움도 있었다. 프로젝터로 비춘 화면의 사진이 픽셀이 깨져 보였다. 크게 확대되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옆의 컴퓨터 화면에서는 그보다는 아주 질이 좋았다. 27인치나 30인치 모니터 화면을 적당한 높이에 마련해놓고 사진을 보여주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옆으로 놓여있는 컴퓨터 화면을 곁눈질했는데 컴퓨터 화면에서 좋은 질을 유지하던 사진이 프로젝트 화면으로 옮겨가면서 사진 자체의 질이 많이 낮아졌다. 아이맥 27인치 정도면 사진의 질까지 함께 유지하는 좋은 사진 상영회가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화면을 무선으로 조정할 수 있으니 그 점도 원활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술적인 문제를 떠나 사진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사진이란 예쁘고 눈길을 끄는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닌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은 지난 한 해의 사진 중 몇 장을 고르고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 그 사진 속으로 들어가 하루를 노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미산 마을의 동네사진관에서 만난 사진전은 내게 사진이 그런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 사진 속엔 그곳 동네의 아이들이 보낸 운동회가 있었고, 그곳의 성미산 나무와 꽃이 있었다. 다른 동네의 얘기였지만 그 한 해의 추억과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하고 즐거웠다.
**전시회는 다음과 같이 열렸다.
-전시회: 동네 사진관 2010 Memory
-전시 기간: 2010년 10월 12일(화) 오후 8시부터 1시간 정도
-전시 장소: 서울 마포의 살롱 드 마랑
2 thoughts on “동네사진관 Memory 2010 – 마포 성미산 마을의 사진 전시회”
딱 한번만 권하는.. 흐.. 맞아요.
친절하지 않은(사실은 낯을 많이 가리는) 우리 마을의 컨셉이죠.
엉기지 않아서 좋은, 그렇지만 새로운 사람들에게는 참 뻘쭘한..
사진상영도 너무 관객을 배려하지 않은 우리만의 발표회는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멀리서 와주신 관객께 제대로 감사인사도 못했어요. 뒷북이지만.. 너무 감사했어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이미 익혀놓은 이름이어서 어색함이 좀 덜했어요.
동네마다 사람들이 맞는 마음들을 모아서 요런 사진 모임을 가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좋은 자리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