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꽃이 예쁜 해가 있는데
올해는 가을에 만나는 코스모스가 무척 예쁘다.
오후 늦은 시간에 길상사에 들른 길에
절의 한쪽 구석에서 만난 코스모스도
시선을 끌어가더니 놓아주질 않았다.
이때다 싶어 시선을 맡긴 채
잠시 코스모스와 놀았다.
엇, 이빨 빠지셨네.
-어떻게 이게 이빨이니? 위쪽인데.
머리털 벗겨진 거면 몰라도.
그럼 혹시 네가 벗겨진 머리털?
-아래쪽으로 흘러내렸는데 어떻게 머리털이니?
수염이면 몰라도.
으이구, 헷갈린다.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니고, 넌 또 뭐니?
-난 바람에게 길을 알려주고 있는 중이야.
항상 바람은 길을 몰라 갈팡질팡 하거든.
그래서 바람이 지날 때마다 내가 길을 알려주고 있어.
저리로 가라고.
이건 뭐 어디서 많이 본 거 같기는 한데…
-머리를 위로 묶어서 한 쪽으로 넘긴 거 아냐.
멋좀 부린 거지.
이건 뭐지?
한국에서 카메라 들이대면 예외없이 나오는 그 브이인가?
-아닌데. 난 아예 만세 부르듯 기지개켜고 있는 건데.
그럼 너도 기지개?
-뭐든 하나를 알려주면 왜 거기서 맴돌이를 해?
난 좀 귀엽지 않아?
난 토끼같은 자식이야.
얘, 얘, 거기 뒤에.
너는 왜 자꾸 뒤로 숨는 거니?
-부끄러워서 그렇지.
얼굴 빨개진 거 보면 모르니.
너는 왜 이렇게 후줄근 한 거니?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춤좀 추었더니 너무 과했나봐.
이젠 완전히 축 쳐지는 구만.
여기도 좀 과하게 흔드셨나 보군.
-몸이 늘어질 때는 역시 누군가에게 기대어 쉬는 게 최고야.
이상하게 휴식은 기대어 갖는 휴식이 가장 달콤해.
햇볕 좋은 오후네.
-그래, 정말 햇볕이 좋다.
아흠, 햇볕 좋은 가을엔 이렇게 가슴을 열고
가을을 맘껏 호흡해야 해.
햇볕도 좋은데 너는 왜 그렇게 움추리고 있어.
가슴을 펴고 가을을 즐겨.
-무슨 소리야.
난 지금 옷깃을 세우고 있는 거야.
가을에 이렇게 옷깃을 세우고 걸어야 가을 분위기 물씬 난다구.
이런 저런 코스모스들의 얘기로 꽃밭이 왁자지껄했다.
그 얘기들에 귀 기울이며 한참 동안 코스모스와 즐겁게 놀았다.
8 thoughts on “성북동 길상사에서 코스모스와 놀다”
코스모스 잘 봅니다^^
모양이 다 다른 코스모스 상태(^^)를 재미있게 풀어 주셔서
웃으면서 보게 되네요*^_^*
가끔 어디가면 이렇게 꽃이랑 혹은 갈매기들이랑 놀곤 해요.
덕분에 심심하지는 않죠.
담에는 바다에 가면 파도랑 한 번 놀아봐야 겠어요.
저는 어제 개쑥부쟁이랑 놀다 왔는데
여기는 코스모스 천지네요..^^
저도 다니면서 올해 코스모스가 참 곱다 생각했는데
하나하나 재미있는 이야기들 잘 보고 듣고 갑니다.
역쉬 가을은 좋은 계절이에요….^^
꽃이 아무리 예뻐도 두 따님의 미모에는 발끝도 못따라가요. ^^
재미난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ㅎㅎ
지난주에 딸내미들 중간고사가 있었는데
명절 지나고 계속 바빠서 봐줄 수가 없었더랬죠.
하여 시험은 평소실력으로 보는 거라며
알아서 잘 보라고 했더니
작은 딸내미가 자기는 백점 맞을 자신이 있다는 겁니다.
공부도 못했는데 어떻게 백점을 맞을거냐 했더만..
시험이 국어, 수학 두 과목이니
한 과목에 50점씩만 맞아도 된다고 하더군요….!!
미모의 그 딸내미가 말이죠…ㅋㅋ
ㅋㅎㅎ 예쁜데다가 유머 감각까지.
자기만의 셈법을 갖기가 어려운데 그걸 갖고 있다니요.
아이를 아주 잘 키우고 계시군요.
언제 아이들 보고 싶어요.
아.. 하나 더 하려고 했는데…ㅎ
이번엔 큰딸내미 이야기입니당.
조금 전에 문자를 한통 받았는데 그 내용이..
—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만큼 눈이 온다면
봄은 오지 않을거야…..!
—
캬~ 어디서 이런걸 주워들었는지…..ㅋㅋㅋ
오늘 따님 생각 너무 나게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언제 한번 아이들을 데리고 두분 뵙고 싶사옵니다.
그런 날이 멀지 않기를..
오늘은 이만하옵고 물러갑니다….^^
어디선가 본거군요, 요즘식의 사랑 고백을.
예쁜 짓안하고 곁에 있기만 해도 좋은데…
옆에 있으면서 예쁜 짓까지 하면 완전 사람 녹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