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사동에 있는 인사아트프라자의 5층에서 그녀를 만났다.
입구를 들어서고
오른쪽 벽면을 타고 간 시선이
막 방향을 꺾으려는 한쪽 구석에서 멈추었을 때,
바로 그 자리에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흙에서 형상을 얻어내고 불의 시간을 건너왔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몸 어디에서도 불의 흔적은 보이질 않았다.
그녀는 불의 시간을 건너왔다기 보다
차라리 지금 막 흙에서 일어서서
그 자리로 와 있는 듯했다.
그녀는 머리를 온통 비워놓고 있었다.
비워놓은 머리 속에선 흙이 물결처럼 찰랑거렸다.
그녀의 생각이 빚어낸 문양이리라.
우리들의 머리 속 생각도 모두 제각각 어떤 문양을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생각은 물결 문양을 그린다.
그것도 조용히 소리없이 일렁이는 물결이다.
그리고 그 생각의 물결은 한쪽으로 흘러내려
그녀의 머리결이 되었다.
흘러내린 물결은 그녀의 가슴에 이르렀을 때쯤
그녀의 한쪽 가슴을 가릴 듯 말듯 덮어주며 엷게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물결은 그녀의 나머지 한쪽 가슴은 모른척 슬쩍 비켜가고 있었다.
그녀는 생각이 찰랑거리다 흘러내려 머리결이 되고
그 머리결이 한쪽 가슴은 엷게 적시지만
나머지 한쪽 가슴은 그대로 방치해놓는 여자였다.
머리를 비우지 않았다면
그녀의 생각은 머리 속에서 여전히 갇혀 있었을 것이다.
생각을 머리 속에 가두어둔 그녀는
가슴으로 흘러내릴 머리결도 갖기 어려웠을 것이며,
그러면 우리는 머리결에 젖은 그녀의 가슴도 만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머리를 비운 뒤 생각을 물결로 일으키고
그 물결을 제 몸으로 흘린 그녀가
그 감촉을 맛보며 엷게 웃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구석의 그녀를 만나고 나오다
들어오는 입구의 왼쪽에서 또다른 그녀를 만났다.
그녀 역시 흙에서 형상을 얻고 불의 시간을 건너왔지만
그녀가 불의 시간을 건너왔으리란 것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차라리 그녀에게선 점성이 높아 습기가 그대로 붙잡혀있는
찰진 진흙의 느낌이 났다.
처음 만난 그녀가 머리를 비워두었다면
이번에 만난 그녀는 얼굴의 반을 비워두고 있었다.
비워둔 자리에서 내가 본 것은 이번에도 역시 물결이었다.
처음본 그녀의 머리 속 물결이 찰랑거리다 넘쳐난 반면
이번에 만난 그녀에게서 한쪽 얼굴을 채운 물결은
수직으로 서 있어
한꺼번에 쏟아질 위험이 아주 커보였지만
머리결로 번진 이번의 물결은
쏟아지기 보다 위로 솓아올라
다시 그녀의 머리결을 이루어가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 그 물결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한쪽으로 기울인 그녀의 고개가
그녀 속의 또다른 그녀에게 몸을 기대고
자기 속을 헤엄치고 있는 그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아니라 차라리 그녀는 제 속의 그녀를 그 물결 속에 부드럽게 안고 있었다.
제 속의 또다른 그녀를 안은 그녀는
제 속의 그녀가 그녀의 온몸을 헤엄치도록
자신의 몸을 모두 물결로 일렁여 주었다.
그녀가 그렇게 제 속의 또다른 그녀를 안고 물결로 일렁일 때
나는 그 앞에 서서 물결이 된 한 여자의 속을 유영하는
또다른 어떤 여자의 헤엄치는 소리를 상상했다.
그녀는 언뜻보면 혼자 같았지만
그 앞에 서 있다보면
그녀의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어떤 여자의 유영소리가 들리는
여자 속에 또다른 여자를 안고 있는 여자였다.
전시회: 2010 다도예가회 10주년 정기전
전시 기간: 2010년 10월 20일(수)~10월 26일(화요일, 오전 12시까지)
전시 장소: 서울 인사동의 인사아트프라자 5층
관람료: 없음
9 thoughts on “테라코타로 만난 그녀, 둘 – 한미의 도예 작품 두 점”
역시 동원님이시네요.
꿈도 해몽도 다 좋네요.
작품 속에 담긴 언어들을 꼭 찝어 내시는군요.
도톨님은 좋겠다…요…
그날 뒷풀이 자리에 이규배 시인이 먼길을 달려와 합석해주는 바람에 아주 분위기 좋았어요. 즉석에서 시인의 시낭송 시간도 가졌죠. 죽음을 마주한 절벽을 노래하는 좋은 시간이었어요. 먼지깡통님도 합세하여 더욱 고마웠죠. 먼지깡통님은 도토리님하고 구면이더군요.
와따 작품도 훌륭합니다만
눈도 같은 눈이 아님을 생각합니다.
작품속에 몰입된 또 다른 느낌입니다.
글로 또 이렇게 맛깔스럽게 맛을 내버리시니 감동입니다.
좋은 시간에 좋은 인연 그리고 훌륭한 작품과 글에 감사드립니다.
행복만 가득한 날만 함께 하시길요…………
작품들마다 글로서 넘어갈 수 있는 세상으로 가 있는 듯 합니다.
덕분에 글도 경계를 넘어 그 세계로 갈 수 있어 좋습니다.
생각이 일렁이는 느낌을 이런 경우가 아니면 어떻게 보겠나 싶었어요.
와… 제 작품보다 멋져 보이네요 감사해요^^
쓰신 글을 찬찬히 읽어 보았어요
여인을 빚는다는것은 …행복한 일이었어요
그것이 저의 모습의 한 부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것이 늘 설레기도 하지요
그러나 글로 표현하기에는 늘 서먹하기도 하고 마음을 빙돌다가는
흙으로 주저앉고 ..그러는데…
김동원님이 이렇게 글로 써주시니…미쳐 몰랐던 어떤 의미를
제가 다시 느끼게 되네요
부족함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동원님과 forest님…두 분을 함께 뵈어서 참 반가웠어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
즐거운 자리였어요.
작품보고 작가까지 만나다니.
흙에서 작품이 일어서고 그 작품에서 다시 글이 싹처럼 돋아날 때 아주 기분이 좋은 것 같아요.
담달에 플님 올라오시면 그때 또 얼굴뵐 수 있기를요.
그나저나 그렇게 미모가 뛰어나실 줄이야.
도토리님, 저도 반가웠어요.^^
그날 뒷풀이도 재미났구요.
좋은 작품 많이 만드시구요, 다음 전시회 때도 기회되면 뵈어요~^^
*^___^* 네 저두요!
그렇게 시간을 내서 오신다는게 쉬운게 아니에요
저도 다른 작가들 전시회에 못갈때가 얼마나 많은데요
정말 감사하구요~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다음 전시회에 여유가 되신다면…저는 무척이나
기쁘겠어요…
앗! 참요…왜 이리 한번에 못보는지요
덜렁 덜렁….^^;;
그래요 담달에 플샘 올라오시면 플샘을
이번엔꼭 뵈을꺼에요
플샘께도 그리 말씀 드렸구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