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한번도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었다.
한두 번의 기회는 있었다.
한 잡지사의 편집장을 하던 시절, 미국에 갈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내 수중에는 여권이 없었다.
급하게 결정된 일이라 여권만들 시간의 여유가 주어지질 않았다.
결국 불발되고 말았다.
무슨 여권도 없는 사람이 있냐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중국에 갈 기회가 한번 있었다.
여행가는 사람들 따라가 사진을 찍어주기로 했었다.
물론 내 비용을 전담해주고 촬영비는 따로 받는 조건이었다.
그것도 비용 문제로 불발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난생 처음으로 해외에 나가게 되었다.
행선지는 딸이 살고 있는 일본의 도쿄였다.
이번 여행도 급작스럽게 결정된 일이었다.
동생이 비행기표를 예약해주었고
나는 그 표를 들고 딸을 보러 도쿄로 향했다.
출국날은 11월 8일 월요일이었다.
번역일이 와 있어서 심적으로 다소 부담이 되었다.
일은 금요일날 넘어와 있었지만 첫 해외 여행이라는 부담감에
딸을 만나러 간다는 설레임이 겹쳐 일이 잘 진척이 되질 않았다.
결국 일을 외장 하드에 담아서 일본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미리 딸에게 연락하여 일본에 가 있는 동안 딸아이 맥북을 쓸 수 있냐고 했더니
자신은 거의 학교에서 과제를 하기 때문에 집에선 양보할 수 있다고 했다.
비행기 시간은 오전 11시 30분이었지만 집을 나선 것은 아침 6시 30분쯤이었다.
그녀가 차에 태워 데려다 주었다.
며칠째 계속된 안개 때문에 그렇게 일찍 나선 것이었지만
그날따라 하루 전날 비가 흩뿌린 끝에 안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날이었다.
차는 올림픽대로를 내달려 순식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가면서 언젠가 조심스럽게 안개를 한풀한풀 벗겨가며 이 길을 가
딸 아이를 공항에 데려다 주었던 얘기를 나누었다.
정말 이 길에 지독하도록 안개가 낀 날이었다.
매번 이 길은 일본을 가고 오는 딸을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길이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해외로 나가고 들어오는 길이 되어 있었다.
비행기 표를 끊고 짐을 수화물로 부쳤다.
가방 속엔 옷가지와 가서 먹을 라면, 그리고 햇반이 잔뜩 들어 있었고,
커다란 김상자도 하나 챙겼다.
딸은 갖고 오면 짐이 된다며 조금씩만 가져오라고 했지만
어차피 들고 가는게 나이니 괜찮다고 생각하며 있는대로 챙겼다.
카메라와 렌즈 가방은 메고 들어가기로 했다.
그녀가 간단하게 빵과 음료를 먹었고,
그때 내 여권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하나 찍었다.
이제 처음으로 여권을 이용해보게 되었다.
그녀가 어떻게 해외에 나가면서 아무 것도 알아보질 않고
그냥 옆동네 놀러가듯이 가냐고 걱정을 했다.
딸아이가 집까지 가는 방법은 잘 알려주었고
아이 집까지만 가면 딸이 그곳에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답했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서 출국 수속을 밟고 있었다.
너무 일찍 나왔지 않았나 싶었지만
이 긴 줄의 뒤에 서서 기다리는 시간 때문에 그리 넉넉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검색을 할 때는 신발까지 벗어야 했다.
빨리 웜홀 여행이 생기던가 해야지 너무 번거롭다.
제주도 갈 때 김포 공항은 몇 번 이용해본 적이 있었지만
인천공항의 안쪽으로 들어와 본 것은 처음이었다.
유리창이 모두 바깥으로 숙여져 있다.
비가 와도 비에 젖지 않을 것 같다.
오는 손님이나 가는 손님에게 공손하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인가.
안쪽으로 들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면세점에 들러 그녀가 사오라고 한 립스틱을 하나 산 것이었다.
하늘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구름은 하늘이 인상을 구길 때 생기는 주름살인 것인가.
그 구름 사이를 뚫고 빛 하나가 내려온다.
자세히 보면 구름에 탑승구라는 글자가 거꾸로 새겨져 있다.
유리창 바깥의 모습이어서 안쪽의 글자가 비쳤나 보다.
아님 빛들이 구름을 헤집고 지상으로 내려올 때의 착륙구인 것일까.
어쨌거나 내려온 빛들은 아무 무리 없이 착륙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벨트를 타고 이동한다.
말을 이렇게 해서 그렇지 아마 사람들이 벨트에 실려 끌려간다고 했으면
이 많은 사람들이 불쌍하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실려서 끌려가는 느낌이 싫어서 였는지는 몰라도
그냥 옆으로 걸어가는 사람들도 여럿 보였다.
나는 타보기도 했고 걸어보기도 했다.
실려서 끌려가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난 영월에서도 40리를 더 들어가야 하는 산골에서 자랐다.
때문에 내게는 하늘에 까마득하게 떠가는 비행기도 구경거리였다.
그러니 비행기가 바로 눈앞에 있다면 그건 엄청난 구경거리이다.
이제 그 구경거리가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아무도 신기해하지 않는 비행기였지만
아직도 촌스런 구석이 남아 있어서
나는 얼마든지 비행기를 구경거리 삼아 즐길 수 있다.
촌에서 자라면 이런 것은 아주 좋은 것 같다.
세상이 시큰둥하거나 지루할 구석이 없다.
사실 비행기를 구경하기도 했지만
비행기 뒤쪽으로 보이는 산의 윤곽이 더 좋았다.
조금 뒤 나는 저 산을 뒤로 할 것이다.
우리 나라에 여행왔다가는 아들과 어머니인가 보다.
어머니는 찍고, 아들은 찍힌다.
난 그 둘을 찍는다.
나만 그 둘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옆을 지나는 사람들 가운데 둘의 시선이 그 둘에 모아져 있었다.
하늘은 이제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시커멓다.
집에서 나올 때도 그랬었다.
그래서 급하게 우산도 하나 챙겼었다.
가방의 옆에 찔러넣어 화물로 붙쳤는데
부실해 보였는지 비행기표를 끊을 때 테이프로 붙이라고 했다.
테이프로 붙인 것마저 엉성해 보였는지 우산 잊어버려도 책임 못진다고 했다.
좀 단단히 붙이라고 한마디 더 하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구름은 시커멓게 하늘을 뒤덮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
난 마치 버리듯이 이 나라를 한번쯤 떠나보고 싶었는데
오늘 그걸 한다고 생각하니 다소 즐겁기까지 했다.
드디어 내가 타고갈 비행기가 왔다.
아시아나 항공 OZ104편이었다.
아시아나는 기내식이 좋다고 들었다.
그녀가 맥주도 준다고 했다.
당연히 나는 맥주를 달라고 할 거다.
드디어 비행기에 탔다.
갈 때 올 때 모두 창측으로 앉았다.
갈 때의 자리는 날개의 뒤쪽이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가는 내게
창측이 아닌 자리는 너무 지루하다.
이제 곧 비행기가 떠날 것이다.
2 thoughts on “떠나는 날의 인천공항 – 9일간의 도쿄 여행 Day 1-1”
드디어 장도에 오르시는군요.
첫 해외여행이 가져다 주는 이런저런 속내들을 담담히 옮겨놔
어쩔 수 없이 예전 생각이 났습니다.
누구나 어리버리하고 신기해 하기 마련인 그 날.
마치 제가 옆에 동행, 동승하는 기분인데요.^^
아무래도 며칠 갔다온 여행을 보름 동안은 울궈먹을 거 같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