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맴돌이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8일 일본 도쿄의 주조역 앞에서


8일 동안 일본 도쿄에 다녀왔다.
여행은 아니었고 딸을 보러 간 길이었다.
11월 8일에 나갔다가 16일날 돌아왔다.
도쿄에 있는 동안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시간의 흐름이 감지되지 않는 것이었다.
이틀이 지나고 사흘, 나흘이 지나가고 있는데
계속 어제 도착한 듯한 느낌이었다.
여드레가 지나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도
마치 어제와서 오늘 가는 느낌이었다.
왜 도쿄에 있는 동안 시간이 감지되지 않은 것이었을까.
왜 시간이 계속 어제와 오늘을 맴돌며 흐를 생각을 않는 것일까.
딸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여행을 왔어도
이렇게 시간의 흐름이 감지되지 않았을까.
16일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룻밤 자고 나자 이제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도쿄에 있는 동안
왜 내 몸의 감각은 시간의 흐름을
어제와 오늘의 이틀 동안에 묶어두고 있었던 것일까.
딸은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다니는 대학에서 전철로 1시간 정도 되는 지역에 방을 얻어 혼자 살고 있다.
당연히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
자유는 본인에겐 달콤하지만
멀리있는 부모는 딸이 자유로울수록 불안할 수밖에 없다.
딸에게 다른 건 몰라도 자유를 주고 싶었지만
실상 아이가 그 자유를 손에 넣자
나도 부모인지라 마음의 한켠으로 아이를 구속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마음의 욕망은 암암리에 내 몸에 새겨져 있었던 것이 아닐까.
부모는 곁에 있는 것만으로 아이에게 구속이 되고 또 규제가 된다.
부모는 아이를 구속하고 규제해야 마음이 놓인다.
아이는 반대로 그 구속과 규제가 숨이 막힌다.
혼자 살고 싶다는 욕망은 알고 보면 자유에 대한 욕망이다.
자유가 있는 곳에선 시간이 정상적으로 흘러가고
구속의 욕망은 그 시간의 흐름을 멈추려 든다.
난 항상 아이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지만
한번도 그 아이의 자유와 대면한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내 집에서 자랐고,
대학은 도쿄로 유학을 갔지만
그 뒤로 아이를 보러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도쿄에 가서 만난 아이는 내 곁의, 또 내 품의 아이가 아니었다.
그 아이는 이제 자유를 손에 넣은, 내가 오래 전에 꿈꾸던 바로 그 아이였다.
아이를 자유로운 인간으로 키우고 싶었지만
실상 한번도 자유로운 인간으로 홀로 선 아이와 대면한 적이 없었던 나는
도쿄에 가서야 비로소 그 아이를 마주했다.
그건 첫대면이었다.
때문에 내 몸은 아이의 자유 앞에 당혹스러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의 시간은 아이의 자유와 함께 흐른다.
그런데 나는 함께 하고 있는 어제와 오늘의 이틀 속에
아이의 시간을 영원히 그대로 담아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아이의 곁에 있고 싶다는 욕망 같아 보이지만
알고보면 아이를 내 곁에 구속해놓고 싶다는 욕망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부모는 곁에 있는 것만으로 많은 것을 구속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구속의 욕망이 도쿄에 있는 동안
시간을 정지시켜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다음에 만나면 나는 내 마음의 깊숙한 곳에 내재된
나의 그 은밀한 욕망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 아이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의 힘으로
자신의 시간을 밀며 성장해 갈 수 있다.
그러나 생전 처음 마주한 아이의 자유 앞에서
내 몸은 내 마음과 달리 그 자유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에게도 아이의 자유를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리라.
다음에 다시 만나면 그때는 아마 도쿄에서의 내 시간도
정상적으로 흘러갈 수 있을 것이다.
공항이 아니라 아이가 사는 동네의 주조역에서 아이를 처음 만났고,
또 그 역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만났을 때는 반가움에 사진찍는 것도 잊어먹고 역의 모습만 사진으로 남겼지만
돌아올 때는 손흔들어주는 아이의 모습을 남겨갖고 올 수 있었다.
도쿄에서 나의 시간은 내내 이틀의 시간 속에 밀봉되어 있었지만
아이의 시간은 학교와 서클 활동, 아르바이트를 넘나들며
정상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딸은 제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자신의 시간을 밀고 가고 있었다.

4 thoughts on “시간의 맴돌이

  1. 저도 항상 떠나 보내는 것 보다 고향에서 떠나오며 이런 풍경에 익숙하지만 그 대상이 부보님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딸아이를 어디를 보내는 것과 제가 그 배웅을 받는 느낌이 어떨지 아직은 상상이 가질 않습니다. 언젠가는 그 풍경에 익숙해지겠지만요.

    1. 그게 집에 와서 잠시 있다 갈 때와는 많이 다르더군요.
      다들 아이들 유학을 어찌보내나 싶을 정도로 안스러운 측면이 있기도 한 거 같아요.
      밥은 먹고 다녀야 할 거 아니냐는 잔소리에 어쩌다 너무 바쁠 때 아빠가 와서 그런 거라는데… 좀 걱정이 되기는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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