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세다를 돌아보면서 확연하게 느낀 것은
아무리 가을이라지만
일본의 도쿄에선 너무 일찍 해가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같은 시간대에 있어 도쿄는 시차적응의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밤낮이 홀딱 반대로 뒤집힌 것은 아니었어도
도쿄 역시 시차적응의 문제에 있어 예외가 아니었다.
원래는 딸이 수업을 많이 듣는다는 문학부 캠퍼스도 돌아볼 생각이었으나
와세다 본 캠퍼스를 돌아보는 것만으로 오후의 짧은 시간이 다 가고 말았다.
오후의 햇볕이 길게 늘어놓았던 꼬리를 거두어들이는
그 짧은 시간을 아쉬워하며
도서관에서 나와 캠퍼스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이케부쿠로를 거쳐 주조로 다시 돌아와 하루의 여정을 마쳤다.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여름엔 마치 식물처럼 푸르게 살아 있었을 것만 같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여름날,
얇은 한겹의 옷도 모두 벗어버리고 싶은 것이 우리들의 심정이지만
콘크리트 건물은 오히려 담쟁이의 푸른 옷을 걸치고 있어
그 여름이 시원했을 것이다.
보통은 가을과 겨울에 껴입고 여름에는 벗게 되지만
담쟁이옷은 여름에 껴입고, 가을과 겨울에는 벗게 된다.
그러나 다 벗지는 않는다.
가을과 겨울에는 실오라기 패션으로 바꾸어 걸친다.
건물은 속을 채우면 안으로 밀폐되지만
기둥만 세우고 공간을 비우면 비를 막아주는 야외가 된다.
비를 막아주는 야외에선 비내리는 날 비내리는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아울러 어느 정도의 아늑함도 비와 바람을 막아주는 야외의 장점이다.
한쪽에 매점이 있어 더더욱 편리해 보였다.
오쿠마 시게노부의 동상 뒤쪽에서 오쿠마 강당 쪽으로 바라본 풍경이다.
오후 4시경이었는데 학생들이 많이 붐볐다.
강의가 끝나는 시간대인가 보다.
풍경도 사람이 없으면 쓸쓸할 때가 많은데
학생들이 붐비자 갑자기 이곳에 생기가 넘쳤다.
때로 사람들이 풍경에 숨결을 불어넣기도 한다.
석양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동쪽이다.
오쿠마 강당의 시계탑이 가까이 보이지만
사실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
카메라가 원근감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고 있다.
자전거 한 대가
대학원 사무소라고 되어 있는 건물의 벽에 기대어
주인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자전거식으로 하면 잘 접혀져 있는 상태였지만
우리식으로 하면 쪼그리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주인이 오면 몸을 쭉펴고 얼른타라고 엉덩이를 내밀 것이다.
정치경제학부의 게시판 앞에 학생들이 모여
무엇인가를 열심히 들여다 보다가 간다.
건물 한가운데를 뻥 뚫어서 통로로 활용하고 있었고,
그 통로에 게시판이 있었다.
붉게 단풍든 나무 하나가
황색빛 건물의 벽을 나무가 그릴 그림의 화판으로 삼았다.
단풍의 색과 화판의 배경색이 조화롭게 보였다.
은행나무가 하늘을 독차지하고
대신 그 잎으로 하늘을 이룬 길이다.
사이를 약간씩 비워두어 하늘이 그 사이로 쏟아져 내려온다.
잎이 다지고 나면 어지러운 가지 사이로 하늘이 마구 쏟아질 것이다.
벤치에 앉은 학생이 내가 무엇을 찍나 계속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게 말을 걸지는 않았다.
다시 또 오쿠마 동상 앞이다.
동상의 등뒤로 해가 지고 있다.
경관이 트이질 않아
뒤쪽으로 해가 지고 있어도
해지는 서쪽의 느낌을 담아내기는 어려웠다.
학교를 나서다 보니 남문 앞에서
이동식 차량으로 된 간이 음식 코너에서 도너 케밥을 팔고 있다.
케밥이 터키 음식이니 팔고 있는 사람은 터키 사람일지도 모른다.
외모는 터키 계열로 보였다.
장사는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수위 아저씨가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학교 버스는 어디를 돌아오는지는 몰라도
서는 곳은 항상 여기 오쿠마 강당 앞인 듯하다.
버스가 들어오고 나갈 때 건물의 수위 아저씨가 교통 정리를 해주었다.
대학 근처의 동네를 여기저기 돌아보았다.
대개 학생들의 자취방이나 사설 기숙사가 많은 듯했다.
내 눈에 띈 것은 거리의 한가운데 서 있는 커다란 나무였다.
길은 좁았지만 나무와 함께 있어서 그런지 오히려 넓어 보였다.
날이 훤할 때 와세다역 도착하여 이 거리를 눈에 익혔는데
이제 완연하게 어둠이 깔려 있었고,
상점과 가로등이 일제히 켜든 불빛으로 그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주조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케부쿠로에 들렀다.
딸이 전기 꽂는 곳이 없어 불편하게 전기 기구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케부쿠로역은 엄청 복잡했지만
다행히 그 복잡한 곳의 출구 가운데서 동쪽 출구를 택했다.
그곳으로 나가자 딸이 말했던 가전 제품 파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Bic Camera란 곳이다.
이름만 들으면 카메라파는 곳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온갖 가전 제품을 다 팔고 있었다.
이곳에서 콘센트 두 개를 샀고, 건너편으로 건너가 USB 허브를 샀다.
가격은 상당히 비쌌다.
전자 제품이나 컴퓨터 용품은 우리 나라가 무지하게 싸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리는 좁은 도로에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 때문인지
마치 건물로 거리를 밀봉해놓은 느낌이었다.
고만고만한 건물의 높이도 그런 느낌에 한몫했을 것이다.
주조에 도착하여 시장 골목을 걸어가다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포즈좀 취해봐라고 한 마디 했더니
다리 한쪽을 슬쩍 들어준다.
설마 내 말을 알아들은 건 아니겠지.
나름 귀여운 녀석이었다.
이제 집에 다왔다.
신호등 바뀌길 기다리며 사람들이 서 있다.
그 중에서 아버지와 딸이 눈길을 끈다.
약간의 장난을 하며 기다리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동네에 오니 가족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있다.
4 thoughts on “와세다 보고 이케부쿠로 거쳐 주조로 귀가하다 – 9일간의 도쿄 여행 Day 3-4”
담쟁이를 보니 저는 씨줄과 날줄로 얽혀진 망사무늬로 보입니다.
여름은 한껏 감싸고 있다가 겨울에 숨겨놓은 비밀을 보여주는 듯…
저 고양이 데려 오시죠. 쓰임새가 꼭 있을 것 같은데요!
고양이 때문에 살 수 없어 도망친 쥐새끼 때문에
애꿎은 우리만 고생이다 싶기는 했습니다. ㅋㅋ
아 와세다가 이렇게 생겼네요.
정말 궁금했는데.
정말 궁금했던 대학교 사진 잘보고 가요.
고냥이는 참. 거만해 항상. ㅋㅋ
와세다가 나무는 엄청 많더군요.
고양이는 째려볼 때가 많은데… 그래도 이 고양이는 째려보지는 않았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