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구경에 나선 것은 아니었지만
금강산 마저도 일단 식사로 배를 채운 뒤에 놓는 우리의 오랜 전통에 따라
학교 근처에서 만난 딸과 나는 가장 먼저 늦은 점심을 같이 하기로 했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을 하다 그래도 딸의 학교에 왔으니
학생 식당에 가서 학교밥을 한번 먹어보자는 쪽으로 합의가 되었다.
딸은 정문쪽 길이 아주 혼잡하다며 뒷길을 택했다.
딸이 안내한 학생 식당은
내가 미리 둘러볼 때 보았던 유니 카페 125가 있는 곳에 있었다.
식당의 자리는 아울러 오쿠마 강당의 바로 옆이기도 했다.
미리 둘러본 길이었기에 눈에 익었다.
들어가는 입구의 창에 나무들이 가득 차 있다.
유리창에 비친 모습이다.
3층으로 올라갔다.
점심 시간이 지나면 3층만 한다고 했다.
시간은 오후 3시 가까이 가고 있었다.
골라서 계산하고 그 다음에 들고 들어가서 먹는 식으로 되어 있었다.
식당의 창에 가을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가을과 마주 앉아 혼자 식사를 하는 것도 괜찮을 듯 싶었다.
나는 딸과 함께 하여 더욱 좋았다.
3층에선 1층이 내려다 보였다.
3층보다 훨씬 높이가 높아 창에 담긴 가을도 더 깊어 보였다.
1층의 바깥으로 베란다형의 휴식 공간이 식당을 둘러싸고 있는데
누군가 그곳의 벤치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이곳의 가을을 전송해 주고 싶기는 했다.
딸이 내 점심으로는 오쿠마 정식이라 부르는 밥을 가져왔다.
반찬으로 샐러드와 생선이 곁들여져 있었다.
딸은 그래도 아빠 대접을 한다고 김치를 따로 챙겨왔다.
딸의 것은 닭고기로 만든 것인 듯 했다.
소스를 적당히 부어 간을 맞추어야 하는데
나는 그만 그걸 샐러드에 모두 다 들어붓는 것인 줄 알고
아무 생각없이 다 들어붓고 말았다.
내게는 조금 짰다.
둘이 먹은 점심값이 1,000엔이 되지 않았다.
차는 원하는대로 가져다 먹을 수 있었다.
점심먹고 나오다
1층 식당의 바깥으로 마련되어 있는 베란다형 공간에서
딸의 사진 하나 찍었다.
식당의 바로 앞이 사실은 오쿠마 정원이다.
그러니까 식당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은 오쿠마 정원의 나무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무들이 너무 무성하여 오쿠마 정원은 보이질 않았다.
오쿠마 정원과 학생 식당은 함께 있었지만 동시에 경계를 나누어 따로 있었다.
식당을 나오다 돌아보니
나무들이 무성하여 좌우의 나무들이 서로 가지를 맞대면서
식당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마치 터널처럼 보인다.
일본에선 언제쯤 나무들이 가지의 잎을 다 털어내는가 모르겠다.
겨울 문턱이라 여기고 왔는데 푸른 잎들이 많다.
중고생들이 많이 견학을 온다.
이 학생들은 중학생들이다.
학교 돌아보다가 점심 먹으러 식당으로 가나보다.
아이들 이끌고 온 여선생이 예뻤다.
식당앞 나무들 가운데 은행나무가 많아서
꼬리꼬리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나무 밑에는 정말 은행들이 엄청나게 떨어져 있었다.
한자리에서 왕창 긁어 모을 수 있는 양이다.
이거 이렇게 버리는 것은 아니겠지.
유니 카페 125 앞에 있는 거대한 크기의 은행나무이다.
도대체 넌 그만한 높이를 갖기 위해 얼마나 긴 세월을 견딘 거니?
우린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도 세월이 지겨울 때가 있는데
너는 한자리에서 그 오랜 세월을 어떻게 견디는 거니?
나무가 불을 환하게 켜들고 있는 듯했다.
뻗어나간 가지는 마치 필라멘트 같았다.
자기가 드리운 그늘을 밝히려 불을 켜는 것일까.
하긴 내가 드리운 그늘은 보지도 못하고
하늘의 빛만 구하는게 우리들이기도 하지.
식당에서 밥먹고 난 뒤
유니 카페 125에 들러 기념품을 몇가지 샀고,
그 다음에는 딸이 즐겨 이용한다는 생협으로 슬슬 올라갔다.
생활협동조합이 학교 내에 있는데 학생들은 식당 앞의 기념품점 보다
그곳을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가다가 보니 은행나무가 홍해처럼 사이를 갈라
하늘과 구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위로는 하늘이 흘러가고 밑으로는 우리가 흘렀다.
다시 또 오쿠마 시게노부의 동상앞을 지난다.
캠퍼스를 돌다보면 이 곳에 여러 번 들르게 되지만
빛과 모여있는 사람에 따라 풍경의 느낌이 많이 다르다.
난 이 오쿠마란 이름을 잘 외울 수가 없어서 사실은 고구마로 외우고는
그러나 성씨를 고씨에서 오씨로 개명했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지명이나 성씨는 내게는 너무 어렵다.
오후의 햇살이 기운다.
기운 햇살은 가지 하나가 나뭇잎에 받아 허공으로 내밀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은 이럴 때가 가장 예쁘다.
걸음을 멈추고 잠시 나뭇잎을 투명으로 물들인 그 햇살을 즐긴다.
나무가 있고, 그 아래 빈공간에 있다.
그 빈공간을 탁자와 의자에게 내주자
학생들이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공부를 하기도 한다.
강의실에 앉아 있었다면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을 텐데
이런 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면
곁의 나무와 아주 조화롭게 어울리는 느낌이다.
풍경의 힘이다.
딸은 과제를 해야 한다고 하여 먼저 보냈다.
그리고 혼자서 캠퍼스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나무의 키가 커서 건물보다 웃자란 나무가 흔했다.
우리 집도 풍채가 좋은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지붕을 넘어가면 집안에 안좋다는 말에
어머니가 자꾸만 걱정을 하셨다.
결국 어머니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나지막하게 가지를 치고 말았다.
좀 아쉬웠다.
키를 있는대로 뽑으며 자란 나무를 보니
우리 집 은행나무가 생각났다.
나무를 좋아하긴 하는데 어머니는 이기질 못하겠다.
한 건물이 한 층에
마치 영화 스크린처럼 통유리를 두르고 있었고,
그러자 구름 좋은 하늘이 즉각 그 스크린을 차지하고
영화의 한 장면을 담아냈다.
끝까지 다 보질 않아 영화가 무슨 얘기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시간 여유가 되면 몇 시간 정도
하늘의 즉흥 영화를 감상하는 것도 괜찮을 듯 싶었다.
한 건물 앞에서
나뭇잎이 사선으로 밀려든 오후의 햇볕을 받아 빛에 젖어있었고,
빛에 젖자 나뭇잎은 그 촉촉이 젖은 빛으로 빛을 내고 있었다.
뒤의 건물도 비슷한 색깔을 가졌으나
지천으로 쏟아지는 빛에도 하나 젖지 못하는 무덤덤한 몸을 가졌다.
나뭇잎의 오후는 찬란했고,
건물의 오후는 쏟아지는 빛의 세례 앞에서도 별다른 감각이 없었다.
와세다의 중앙 도서관이다.
가운데 있지는 않았다.
내가 다니던 대학의 중앙 도서관도 중앙이 아니라
사실은 가장 깊숙한 곳의 한쪽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렇다고 귀퉁이 도서관이라고 할 수는 없는 거니까.
도서관의 출입구가 1층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층을 올라가야 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앞쪽 풍경은 이렇다.
나무가 늘어선 터널같은 길을 따라 도서관으로 오는 길은 좋은데
도서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들쭉날쭉한 건물들로 어지럽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모두 대학 건물은 아니다.
도서관을 들어서면 커다란 창이 맞아준다.
이제 여기서 더 이상은 들어갈 수 없다.
들어가려면 학생증이 있어야 한다.
사진은 어둡지만 실제로는 넓은 창 때문에 환했다.
에어콘도 안들어오는 도서관에서 땀을 쏟으며
여기저기 응모할 글을 쓰며 보냈던 대학 시절의 여름 방학이 생각났다.
이제 타임머신을 타고 거슬러 올라도 한참을 거슬러 올라야 할
그때의 대학 시절을 기억으로 환기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짠했다.
나와 보니 건물의 유리창으로
먼훗날 숙성될 기억을 쌓아가고 있는 학생들이 보였다.
6 thoughts on “와세다 학생식당과 중앙 도서관 – 9일간의 도쿄 여행 Day 3-3”
드뎌 문지양 얼굴이 … 하하하~
교복만 입혀놓으면 중학생이랑 별반 구분이 안갈 거 같아요. ㅋㅋ
캠퍼스 전경 참 좋군요.
듣던대로 커다란 나무들이 운치를 더하구요.
갑자기 울딸이 불쌍해지는군요 ㅠ.ㅜ
늦을 오후 햇살은 정말 빛깔이 이쁘지요 나무에서도 건물에서도 잘 잡으셨네요.
캠퍼스는 참 좋다는 느낌은 들었어요.
그래도 제가 다니던 대학만은 못했지만요.
우리 대학은 뒤에 산이 있었으니까요.
1학년 때는 뽕나무밭도 있었죠.
옛날 같으면 무슨 일이 날 뽕밭이 있었다는 거 아니겠어요.
잔뜩 떨어진 은행들을 보니 부산 용두산 올라가는 은행나무길이 생각이 납니다.
물론 은행길보다는 예전부터 그냥 항상 편하다고만 생각해온 대학동기여학생이랑
남포동 극장가를 거닐다가 용두산 전망대에 올라서 야경을 볼려고 그 길을 걷는데
참 분위기는 싱숭생숭인데 하필이면 그 시기의 그 향긋한 냄새로 인해 추억으로만
남는 길이 되어버렸습니다. ㅠ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은행을 잘 안먹어요 ㅋㅋ
저는 은행 좋아하는데…
나무를 흔들어서 털어내기 전에는
저렇게 많이 떨어져 있는 경우를 본 것 같지를 않아요.
일본이 여기저기 온통 벚꽃이란 느낌이 드는데…
여긴 온통 은행나무라는 느낌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