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마지막 날 아는 분과 술을 마셨다.
딱 한 잔만 더 하자는 4차의 유혹을 만류하고
집이 먼 그 분을 택시에 태워보낸 뒤
밤 두 시의 동네 거리를 터덜터덜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산지사방에서 번뜩이는 불빛의 매서운 눈초리를 피해
어둠이 여기저기서 자리를 비집고 검은 몸짓을 웅크리고 있는 거리에
짙은 안개가 잔뜩 몰려와 있었다.
그는 갔다.
그를 태운 차가 안개 속으로 묻혀 사라지며
꼬리등을 점점 지워가고 있을 때
건너편 길로 눈에 불을 켠 택시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택시는 속도를 줄이며 나를 힐끗거렸다.
술이 흔들어놓은 내 걸음은
나를 힐끗거리는 택시를 무시하고는
그냥 거리를 따라 휘청휘청 걸어가고 있었다.
아직, 나를 지울만큼 안개가 몰려오진 못했나 보군.
신호등은 붉은 빛과 초록빛,
그리고 가끔 노란빛을 점멸시키며 깜빡거렸지만
그러다 어느 한 순간
이 밤엔 어디도 가지 말라는 듯
일제히 붉은 등을 켜들었다.
차들은 멈추어 섰지만
내 걸음은 개의치 않았다.
기계를 버리면 아무데도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정지라고 말하며 막아서는 붉은 빛의 등을 싸그리 무시하고
어디든 내 마음대로 갈 수 있었다.
노란 등이 깜빡거린다.
무엇으로 바뀔지 기대하라는 듯이.
아무리 그래도 난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차에 올라있었다면 눈을 맞추지 않을 수 없었을 노란 등도
나에게 완전히 무시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거리엔 안개가 잔뜩 끼었고,
안개는 앞이 안보인다는 듯
거리를 더듬더듬 거리며 자리를 찾고 있었다.
안개가 앞을 더듬거리는 거리에서
우리의 세상도 앞이 보이질 않았다.
안개가 점령한 거리에서
가로등 불빛은 마치 비상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처럼 쏟아져 내렸다.
붉은 등이 차들을 멈춰 세웠지만
택시도 이제는 그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사거리에서 눈치껏 방향을 틀어 제 갈길을 서둘렀다.
큰 도로를 버리고 작은 길로 들어섰다.
저만치 동네 아파트가 보인다.
아파트가 내게 속삭인다.
‘몰랐지? 나는 사실 등뼈동물이야.
내 등뼈는 밤에만 형광색으로 빛을 발하지.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내 속을 파먹으며 살고 싶어 안달들이지.’
등뼈의 한켠에서 불을 환하게 켠 어느 집이
그 거대한 등뼈 동물의 속을 밤늦게까지 파고 있었다.
횡단보도 건너는 곳에서
치우기 위해 모아둔 쓰레기를 만났다.
쓰레기가 내게 속삭였다.
‘난 버림받았어.
하지만 난 울지 않을거야.
독한 맘 먹고 생의 마지막 길을 달려가고 말거야.’
정말 독한 마음을 먹은 것일까.
독한 냄새가 났다.
거리의 가로등들은
분명 눈을 고정시킨채
한곳만을 응시하는 굳은 시선을 가졌지만
마치 무엇인가를 쫓는 탐조등의 불빛처럼
여기저기를 힐끗거리는 듯했다.
그 불빛 속에서
속도를 먹고 사는 기계들이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녔다.
4 thoughts on “밤 두 시의 안개낀 동네 거리”
정말 경추,흉추, 요추, 천추, 미골까지 다 드러나네요.
당신을 ‘척추해부학자’로 임명합니다. ㅋㅋ^^
그렇다면 저야 말로 돌팔이가 되겠습니다. ㅋㅋ
사진의 느낌이 참 좋습니다.
사실 어제 밤늦게 우연히 본 홈쇼핑에서 Canon EOS 550D의 방송을 끝까지 보고 말았습니다. 주문버튼을 몇 번을 누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옆에 누운 마눌님의 포스가…ㅠㅠ
550D가 무게도 가볍고 사진도 잘나오고 아주 좋은 거 같아요.
DSLR로 바꾸면 아이 사진이 확 달라지긴 합니다.
사진은 악천후 때가 오히려 아주 분위기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어요. 대신 사진찍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렇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