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다니고 있는 와세다 대학의 캠퍼스는 하나가 아니다.
내가 딸과 함께 갔던 곳은 와세다 캠퍼스로 불리는 곳으로
와세다역에서 나와 마주하게 되는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나오지만
그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다른 캠퍼스를 만난다.
그 곳은 도야마 캠퍼스라고 불린다.
거리의 안내판에는 문학부 캠퍼스라고 나와 있었다.
딸은 자신은 주로 그곳에서 공부를 한다고 했다.
그밖에도 또 니시와세다역에서 내리면
그 근처에는 니시와세다 캠퍼스가 있다고 들었다.
딸이 공부한다는 도야마 캠퍼스를 가보고 싶었다.
길을 잘못들어 정문 방향이 아니라 학생회관이 있는 곳으로 찾아들었다.
학교의 정문으로 들어가야 학생회관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길에서 곧바로 학생회관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있었다.
어디로나 드나들 수 있게 입구를 다양하게 내놓았다는 인상이 들었다.
학생회관의 입구에서 학생 하나가 무슨 유인물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학생회관 안이다.
딸의 얘기를 들으니
캠퍼스는 길을 건너 여기저기로 나뉘어져 있지만
학생회관은 이곳 하나 뿐이라고 한다.
안을 자세하게는 구경하지 못했다.
돌아다니면 구경할만한 독특한 인물들이 많을 것 같았다.
학생회관 바로 옆에
도야마 공원이라고 도야마라는 이름을 같이 나누어쓰는 공원이 있다.
그 공원과의 사이에는 언덕으로 오르내리는 길이 하나 있다.
바로 이 길이다.
그다지 길지 않은 길이었지만 산책로로 걸어볼만 했다.
종종 차들이 줄을 지어 가곤 했다.
정문쪽으로 가보니 커다란 건물이 나타났고
그 건물 앞으로 자전거가 운집해있다.
자전거 도망갈까봐 울타리에 가두어 놓은 건가.
철재 펜스로 구분해놓은 자전거 주차장이 독특하다는 느낌이었다.
하긴 강의가 길건너 캠퍼스에 있으면 자전거 타고 가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이 나무의 오른쪽으로 정문이 있다.
물론 내 눈길을 끌어간 것은 이곳의 정문이 아니라 가을빛에 물든 나무였다.
아마도 딸은 일본에 와서 본고사를 치를 때
이 도야마 캠퍼스에서 시험을 본 것 같다.
그때 이 건물에 대해 마치 컨테이너를 쌓아놓은 듯한
가건물같다는 인상을 받은 것 같다.
그래서 사실은 무슨 대학이 이렇게 후지냐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중에 와세다와 게이오를 놓고 저울질을 하다가
결국 와세다를 선택하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실망스런 느낌이 있었던 듯 싶었다.
하지만 나는 딸이 공부하는 곳이라서 그런지
와세다의 본캠퍼스보다 이곳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건물의 지붕 위로 머리를 내민 나무들의 인상도 내게는 아주 좋았다.
나무 밑에 수구리고 있는 건물이라니…
그런 건물을 경험하기는 쉽지 않을 듯 보였다.
한 건물의 바깥으로 마련된 야외의 휴식 공간이다.
학생이 한 명밖에 보이질 않는다.
파라솔이 다 접혀 있어서 그런지 철지난 해수욕장 분위기이다.
여름이 가면 어디서나 철이 지나는 것일까.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어서
마구 돌아다니기는 조금 조심스러웠다.
사진을 찍다가 공부하다 바깥으로 눈을 돌린
교실의 학생과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이동 통로에 서면
그렇게 교실이 아래쪽으로 내려다 보였다.
아까 지나올 때 본 건물 위로 솟은 나무들이 이곳에서도 보인다.
항상 위력적인 것은 오는 계절이다.
겨울은 오는 봄 앞에 무력하며 봄은 오는 여름 앞에 무력하다.
말해 무엇하랴.
여름은 또 오는 가을 앞에 무력하다.
잎들의 초록이 여전했지만
내 눈을 끌어당긴 것은 오는 계절, 바로 가을이 물들여 놓은 노란 잎이었다.
내 딸 문지는 다가올 계절이다.
다가올 봄, 다가올 여름, 다가올 가을, 다가올 겨울을 살며
문지는 한동안 계절을 다가올 계절로 살아갈 것이다.
위력적일 수밖에 없다.
어느 계절을 펼치든 문지의 계절이 될 것이다.
나는 이제 가는 계절이다.
가는 계절은 항상 슬픈 법이지만
오는 계절이 또 내 계절 같기도 하여 마음이 뿌듯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그것도 도쿄에서만 단 8일을 머물다 온 사람이
일본에 대해서 무엇을 말할 수 있으랴.
여행기를 적으면서도 조심스럽다.
그런데 그 짧은 기간에도 일본의 가을은 한국과는 미세하게 달라보였다.
아마도 그것은 여전히 여기저기에 흔하게 남아있는
여름 빛깔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기억 속에 담겨있는 한국의 가을은
나뭇잎에서 붉게 혹은 노랗게 물들어 그 아름다움을 뽐냈는데
이상하게 일본의 가을은 떨어져서 예쁜 경우를 더 흔하게 접했다.
와세다의 문학부 캠퍼스를 돌다가 들어서서
어느 소로의 옆에서 접한 가을도 그 점에선 예외가 아니었다.
푸른 이끼의 한여름 초록빛을 배경으로
가을이 몸을 눕힌채 그 아름다움을 그려내고 있었다.
도야마 캠퍼스는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긴 했지만
그 건물들 사이의 이런 작은 소로는 아주 운치있었다.
길이는 짧았지만 나는 천천히 걸어서 길게 즐겼다.
건물과 건물은 아무리 가까이 붙어 있어도 냉랭한 법이다.
나무는 그 둘의 사이를 부드럽게 녹여준다.
둘의 사이가 냉랭해졌을 때는 카페의 탁자보다
자연으로 나가 나무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서 볼 일이다.
캠퍼스의 한쪽 구석에 예쁜 정원이 있다.
규모는 아주 작다.
정원은 규모가 크면 자랑삼아 내놓은 듯하고,
규모가 작으면 비밀스럽게 숨겨놓은 듯하다.
작은 규모 때문인지 마치 이 캠퍼스의 은밀한 비밀같았다.
나뭇가지가 창문을 두드릴 듯 가까이 붙어 있다.
정문을 들어서자 마자 보게 되는 건물이다.
아무래도 나무보다 늦게 들어섰나 보다.
건물이 그 몸을 들이밀고 있는 공간은 원래는 나뭇가지의 자리였을 것이다.
나뭇가지들은 건물이 들어서자 가지를 쳐주며 자리를 물렸을 것이고,
그렇게 가지를 물려준 자리로 건물이 들어서면서
둘은 거의 붙어있는 듯 같이 서게 되었을 것이다.
건물은 그러고 보면 한쪽 면을
오래전 그 자리에 있었던 나뭇가지의 푸른 기억 속에 담그고 있다.
나무의 푸른 기억 속에 기대고 있는 건물이라…
나는 이 건물이 좋았다.
부르기는 도야마 캠퍼스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정문의 현판을 보니 와세다 대학 문학학술원이라고 되어 있다.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아 돌아보는데 부담도 없었다.
마치 숨겨놓은 듯한 건물과 건물 사이의 소로들과 한적한 벤치가
무슨 비밀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런 분위기가 좋았다.
4 thoughts on “와세다 대학의 도야마 캠퍼스 – 9일간의 도쿄 여행 Day 6-2”
건물 사이의 작은 소로에 뒹구는 낙엽은 누가 일부러 정성들여
하나하나 자리잡아 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걷는 재미가 크셨겠어요.
지붕 위로 머리를 내민 여섯 그루의 키 큰 뾰족나무들도 재치 있는 친구들이네요.
사진마다 나무가 있어 보기 좋습니다. (첫 번째 사진엔 유리창에 비취고 있죠.^^)
도심에 있는 나무들은 많이 부럽더군요.
우리는 성황당에 있던 소나무들도 뿌리가 뽑힌 경우가 더러 있거든요.
고향가면 제일 아쉬운게 뿌리뽑혀 없어진 나무들이다 보니 나무들은 무척 부러웠어요.
저 학생회관 지하로 내려가면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나오는 아이들처럼
구석구석에서 악기 연주하고 있는 친구들 만날 수 있는데…
그런 친구들 보니까 많이 부럽더라구.
그것도 때를 잘타야 볼 수 있는 듯.
옆의 공원에서도 그걸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시즌이 끝난 느낌이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