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세다 대학의 문학부 캠퍼스 바로 옆에는 공원이 하나 있다.
공원의 이름은 도야마 공원이라 불린다.
한문을 우리 식으로 읽으면 호산공원(戶山公園)이 된다.
호자가 집호자나 지게호자이니 원래는 집만한 작은 산이 있었던 곳이었을까.
일본어에서는 호산이 영험한 산을 뜻하기도 하는 모양이니
이 공원의 산이 영험한 곳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공원에 산이 하나 있다고 나와 있는데 산을 본 기억은 없다.
나중에 살펴보니 산의 높이가 44.6m이다.
산이 흔한 나라에서 왔으니 그 높이가 산으로 보였을리가 없다.
문학부 캠퍼스와 함께 바로 옆의 공원도 구경했다.
일본의 공원에선 어딜가나 야구였다.
우리는 대개 어딜가나 축구이다.
스포츠의 차이로 보면 우리는 뻥뻥 차는 걸 좋아하고
일본은 딱딱 맞추는 걸 좋아하는 셈이다.
도야마 공원에서도 야구 풍경은 예외가 없다.
가끔 공원에서 달리기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지만 드물었다.
거의 대부분 야구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 어린이들이지만 어른들도 눈에 띄었다.
한 어린이가 열심히 볼을 맞추고 있다.
카메라 들이댔더니 볼 던져주는 코치 양반이 긴장한다.
한번 웃어주었더니 이내 긴장을 푼다.
웃음은 긴장의 이완재이다.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갔더니
나무에 둘러쌓인 정자가 하나 나온다.
사람이 몇 앉아 있다.
외국인이었다.
난 일본에 오면 구별되지 않는 외국인인데
이들 외국인은 일본에 와도 확연하게 구별되는 외국인이었다.
작은 연못이 하나 있고
노랗게 물든 나무 하나가 연못의 한귀퉁이에 서 있다.
내가 나무에게 한마디 한다.
“머리좀 자주 감어.
비듬 떨어진 것좀 보라구.
지저분하기는.”
나의 내막을 알고 있었다면 당장 사돈 남말한다는 소리가 나왔겠지만
나무는 나의 내막을 모르는 듯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춘 남녀가 모여 열심히 응원 연습을 하고 있다.
와세다 학생들은 아닌 것 같다.
어느 학교인지 이 학교는 깃발 응원이 특징인 건가.
그래도 하나 둘 셋 넷은 영어로 쓰고 있었다.
공원의 나무들이 좋다.
하늘은 흐려있었지만 나무들은 흐리고 맑음이 없다.
흐린 날에도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으로 만날 수 있는 나무들이 있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다.
흐린 하늘이 마음을 가라앉혀도 나무가 일으켜 세워주곤 한다.
아이들의 놀이 기구들도 여러가지가 있다.
이 놀이기구는 줄이 평행으로 흐를 것 같은데
자세히 보니 평행은 아니다.
밑에 매달린 나무 둥치의 무게가 기울면서
줄도 약간씩 몸을 기울이고 있나 보다.
줄들은 다함께 매달려 있었지만
그렇다고 매달려서 무엇을 하소연하고 있지는 않았다.
멀리 나무 하나가 그 색깔로 내 눈길을 끈다.
가을이라 색깔로 내 눈을 끌었지만
평상시였다면 높이로 내 눈길을 끌었을 듯 싶다.
아이 하나가 그 나무 앞에서 날아올 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무도 잎들을 모두 펼친 채 아이와 함께 공을 기다렸다.
야구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는 동안
그냥 아무 생각없이 남자 아이들이려니 했다.
치고 달리는 동작들에서 달리 어색한 구석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가까이 뛰어와 헬맷을 벗은 아이들을 보니
이 빨간 유니폼의 아이들은 모두가 여자 아이들이다.
일본에서 야구는 남녀가 따로 없었다.
여자 아이들은 동작이나 자세가 이상하게 약간씩 어색한 데가 있는 법인데
야구하는 아이들에게선 그런 차이를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공원 구경을 하러 들어왔는데 야구 풍경이 가장 흔했다.
딸은 와세다가 음대는 없는데 학생들이 만든 오케스트라 동아리는 있다고 했다.
그 동아리의 학생들이 종종 이 공원에서
연습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심 기대를 했었는데 악기 연주하는 학생들은 보지 못했다.
내가 구경할 때는 잘 맞추는 편인데 이번에는 그렇지 못했나 보다.
이 곳은 도야마 공원은 아니다.
와세다의 본 캠퍼스로 가는 길에 골목 안쪽에서 이 건물을 보았다.
낡은 느낌이 완연하게 바깥으로 드러나 있는 목조 건물로 보인다.
낡은 느낌은 오래된 느낌과 겹친다.
현대식 건물들의 사이에서 이런 건물을 보면 절로 눈길이 간다.
화려하고 새로운 것만 눈길을 끄는 것은 아니다.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집이나 건물에 축적이 되며
그 축적된 시간이 때로 우리의 눈길을 끌어당긴다.
2 thoughts on “도야마 공원 – 9일간의 도쿄 여행 Day 6-3”
나무들이 하나같이 키가 크고 울창하네요.
외야 수비하는 소녀 선수 뒤에 서 있는 노란색 나무는 정말 키가 큰데요.
관리(managing)의 천국 일본이라 나무들도 잘 가꾸어서인가요?
뻥축구와 딱야구로 한일 양국을 한칼에 정리하신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소녀인줄 몰랐다가 헬맷 벗는 순간 드러나는 긴머리에 많이 놀랐어요.
첫날도 긴머리 휘날리는 여성 타자에게 놀랐는데 왜 여성 축구는 뜨는데 여성 야구는 뜨질 않는지 좀 궁금하기도 하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