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장소라고 항상 풍경이 같은 것은 아니다.
그 풍경이 자연일 때는 더더욱 그렇다.
자연의 풍경은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철이 바뀌면 그 곳의 풍경도 계절을 따라간다.
그 때문에 같은 곳에 서도 같은 곳이 아니다.
와세다는 자연이 아니라 대학이지만
그 또한 자연만은 못해도 갈 때마다 풍경을 달리 내주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와세다 캠퍼스를 찾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같은 공간의 캠퍼스에서 내게 달리내준 풍경들과 함께 했다.
오쿠마 시게노부의 동상이 있는 곳에서
오늘은 나이 지긋한 분들이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실 이 날은 학교를 돌아다니며 이곳이 대학이냐 관광지냐 싶었다.
심지어 가이드를 대동하고
설명을 들으며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딸의 얘기에 따르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이 많아서
종종 안내자를 동반한 관광객들이 눈에 띈다고 했다.
학교를 탐방오는 고등학생들은 거의 1년내내 끊이지 않는다고도 했다.
한 분은 오쿠마의 동상 바로 앞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림이나 사진이나 자리를 잡는 것이 중요하긴 하다.
나름대로 자리를 찾는 것은
아름다움을 내 나름대로 찾아보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자리의 각도에 따라 보는 대상의 아름다움이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 분의 그림을 슬쩍 들여다 보았다.
노란 가을이 담기고 있다.
아직은 다 담기질 않아서 노란색이 엷다.
가을은 그의 눈에 담긴 뒤
그의 손이 이끄는 안내를 따라 도화지 위에 몸을 눕힐 것이다.
그럼 그곳에 물감에 섞어 풀어놓는 또다른 가을의 결실이
그림이란 이름으로 맺어질 것이다.
그가 그 결실을 가꾸기 위해 천천히 손을 놀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그림 속에 담기고 있는 풍경은 바로 이 풍경이다.
사흘 전에 왔을 때보다 노란색이 더욱 완연해 보인다.
멀리 보이는 오쿠마 강당의 시계탑도 마치 가을빛에 맞추어 단장을 한 듯 싶다.
오쿠마 시게노부의 동상 뒤쪽에서 보니
은행나무의 가을빛을 감상하는데는 동상의 자리가 가장 명당이다 싶다.
우리네 옛날 사람들의 소원 중에
죽고 나면 양지바른 곳에 묻어달라는 소원이 있곤 했었는데
오쿠마는 죽고 나면 은행나무의 가을이 가장 예쁜 자리를
자신의 자리로 내줄 수 없겠냐고 소원했던 것일까.
물론 알 수가 없다.
그저 내가 꿈꾸는 낭만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낭만에 값할만큼 자리는 좋아 보였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공중으로 이어서
통로로 삼아놓은 곳을 여러 곳 보았다.
이곳은 그 통로가 투명하다.
건너가면서 잠시 즐길 수 있는 바깥 풍경이 괜찮을 듯 싶다.
이 통로에서 은행나무가 좌우로 늘어선 풍경이 마주 보일 듯하기 때문이다.
통로로 올라가보진 않았다.
나에게도 나무가 있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교정의 한 켠에 서 있던 버드나무였다.
곧게 자라질 않아 등이 굽은 나무였다.
그 굽은 등 때문에 우리는 손쉽게 버드나무의 등을 타고
나무 위로 오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들이 쉽게 업힐 수 있도록
몸을 숙여 등을 내준 것인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
난 어릴 때 그 교정의 버드나무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놀았다.
어느 해 내려갔는데 학교 운동장에서 그 나무가 보이질 않았다.
마음 한켠이 휑하니 비어버렸다.
와세다 교정에서도 자꾸만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다.
그 밑에서 보내는 세월이 길어지면 나무는 친구가 된다.
이 나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졸업하고 몇 년 뒤 다시 이 학교를 찾았을 때
이 나무에게서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를 보게 될 것이다.
난 안타깝게도 고향의 학교 교정에서 그 친구를 잃어버렸다.
이 건물은 마치 성냥갑 같은 것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느낌이 났다.
절묘하게 균형이 맞고 있었다.
분명 내 앞의 건물이 배고픈 눈빛으로
퀭하니 뚫린 입을 벌리고 있었다.
누군가 그의 입으로 걸어 들어갔으나
미처 그를 집어 삼키기도 전에
그는 입의 저편으로 빠져나가고 말았다.
그 무엇도 삼키지 못하는 입은
여전히 배고픈 눈빛으로 퀭하니 열려 있기만 했다.
이 나무는 제 것입니다.
나무 뒤의 건물이 말했다.
아니예요, 이 나무는 제 것이예요.
나무 옆의 빈 공간이 말했다.
난 솔로몬왕이라도 되는 양,
나무를 딱 반으로 나누어
반은 건물에게, 반은 텅빈 공간에게 내주었다.
둘 모두 내 판결을 받아들였다.
나무를 둘로 가르면서도 쪼개지 않은 아주 현명한 판단이라 자위하며
나는 기분이 매우 흐뭇해졌다.
그러나 나무를 반으로 가르는데도 내 판단을 받아들인 것을 보면
둘 모두 나무의 어미는 아니었다.
나무를 가르면서도 쪼개지 않은 나의 판단에
휴우하며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숨을 내 쉰 것은
나무의 아래쪽 땅이었다.
학교 다닐 때,
어느 하루 창에 밀려와 어른대고 있는 바깥의 날씨가 너무 좋았다.
우리는 교수님한테 말했었다.
“공부하기에는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아요?”
그때가 어느 봄날이었다.
강의실 바깥에서 봄날의 따뜻한 햇볕에
꽃들이 폭죽처럼 터지고 있었다.
와세다의 이 길에선 가끔 강의실 창밖에서
은행나무가 창을 두드릴 것이 분명하다.
바깥에 지천으로 몰려온 가을이
공부하기에는 너무 좋은 계절이 왔다고 알려주는 소리이다.
그때는 공부를 제끼고 가을을 마중해야 한다.
나는 그랬었다.
화창한 봄날 수업을 제끼고 창경궁으로 날랐으며,
그곳으로 가자 낯모르는 여자가 함께 봄을 맞겠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함께 마중한 봄을 술잔에 담아 퍼 마셨다.
창을 두드려도 가을 마중을 나오지 않고
그저 책만 파고들며 교수님 수업에 붙잡혀 있으면
창을 두드리는 소리를 더욱 커질 것이다.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창을 내다보면
은행나무의 노란 빛이 더욱 짙어져 있을 것이다.
빨리 수업을 제껴야 한다.
가을을 그냥 보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어떤 수업으로도 그 어리석음을 채워넣을 수는 없다.
난 학교다닐 때 수업은 제껴도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나만 은행나무의 가을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아니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고
열심히 와세다의 가을을 사진에 담고 있다.
가을도 어느 해 봄날의 꽃처럼 노랗게 터지고 있었다.
4 thoughts on “와세다 캠퍼스 – 9일간의 도쿄 여행 Day 6-4”
그림을 못 그리는 저로선 몹시 부러운 풍경입니다.
저런 동호회가 있다면 기꺼이 가입하고 싶어지는..
와세다 정도 되면 전국에서 구경 또는 탐방 오는 학생, 일반인들로
캠퍼스 투어가 성황일 것 같습니다. 모르긴 해도 학교측에서
투어 가이드를 마련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림을 잘 그리는 분을 옆에 두고 계시니 부러움이 많이 해소될 것 같습니다.
딸에게 물어봤더니 그림그리는 사람들은 종종 본다고 하더군요.
방문객들은 그냥 알아서 오는 사람들인거 같아요.
와세다 캠퍼스는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이네요.
딸의 학교를 거닐며 학창시절 추억여행을 많이 하셨군요.
하긴 그게 저절로 되는 일이긴 하죠.
건물 사이의 투명한 통로, 한번 올라보고 싶게 생겼어요.
통로가 한 다섯 군데는 되는 거 같아요.
동네랑 뒤섞여서 가끔 어디가 동네고 어디가 학교인지 헷갈리기도 하더라구요.
그냥 여기저기 숭숭 뚫어놓았다고 보면 될듯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