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사는 세월은 그 세월을 함께 하는 둘의 사이에서 날선 각을 부드럽게 무마해주는 풍화작용을 하곤 한다. 그렇게 본다면 나와 나의 그녀는 아직도 그 날선 각의 서늘함을 그대로 간직한채 강원도 어느 산골 계곡 꼭대기의 물속에서 날카로운 머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는 돌멩이가 아니다. 이제 우리 둘은 세월의 등쌀에 밀려 멀리감치 떠내려온 뒤 유속이 눈에 띄게 느려진 한강 중류 어디쯤에선가 만나게 되는 둥글둥글한 돌멩이임에 분명하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풍화작용을 하면서 그렇게 둘은 세월의 흐름을 타고 서해로, 혹은 동해로 흘러간다.
바다에 가면 속이 트이는 느낌은 그렇다면 어떤 것일까. 비록 세월에 마모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결국 삶이란게 모난 각을 세우며 계곡의 꼭대기에 붇박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리며 함께 하는데 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깨달음의 종착역이 바로 바다인 것은 아닐까. 그래서 바다에 가면 사실은 나를 잃은 것이 아니라 우리를 찾은 것이며, 그래서 지금의 인생이 더 값진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그 깨달음 속에서 오늘의 마모된 우리들 삶으로 다시 돌아가 부대낄 힘을 얻게 되는 것일까.
아직도 한쪽 구석으로 서슬푸른 각을 가진 나는, 그 각의 마모 때문에 힘들어질 때마다 곧잘 바다를 생각하곤 한다. 바다는 어찌보면 내가 힘들 때마다 나를 버리고 그녀의 웃음을 지켜줄 수 있도록 나에게 삶의 잠언으로 작용하는 공간인 셈이다.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어쨌거나 그녀의 웃음을 지켜주고 싶다. 지금까지 지켜본 세월의 끝자락에서 보면 그 웃음이 그녀의 행복이니까. 하지만 그 행복을 지켜주고픈 마음의 한끝에서 종종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드는 것이 나의 현실인 것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앞으로도 나는 가끔 바다에 가서 나의 마모된 삶을 도닥이며 그렇게 자신을 내놓고 우리를 얻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속삭여주는 파도의 얘기를 듣고, 그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러다 다시금 힘을 얻어 내 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을 갖고, 그러면서 살아가겠지…
2 thoughts on “세월, 그리고 그녀”
돌은 부드럽게 닳아 오래되면 누구나 높은 값을 매겨주는 존재입니다….그러나 조금이라도 깨진?부분이 있다면 아무도 찾지않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맙니다…닳고 닳아 바다로 가는 길에 혹여 깨져버리면 우리는 또 얼마나 그 부분의 상처가 마모되기를 기다려야 할까요?
경험의 한계 내에서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거기까진 제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듯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