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죽음과 삶

Photo by Kim Dong Won


마당에 넝쿨 장미가 한그루있다. 해마다 봄이 되면 먼저 가지마다 무성한 잎사귀를 내밀어 허공에 초록의 만찬을 마련한다. 그리고 어느날 그 사이로 빨간 장미 하나가 고개를 내밀고, 그 뒤로 하루가 멀다하고 그 불꽃이 번져나가 빨간색으로 마당의 허공을 뒤덮는다. 그렇게 되면 분명 초록의 잎사귀가 받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날부터인가 그 빨간색의 자극적 아름다움만이 우리 눈에 들어오곤 한다.
해가 지고, 빛이 세상의 모든 색깔을 거두어 들이고 나면 장미도 예외없이 어둠에 묻히고 만다. 하루내내 우리 눈에 머물렀던 그 빨간색의 자극적 아름다움은 밤에는 이제 우리 눈 속에서 낮과 같은 호사를 누리지 못한다. 하지만 밤이라고 하여 장미가 사라진다고 오해하지 마시라. 한밤에 그 장미 넝쿨 아래 몸을 누이고 있으면 장미는 그 진한 향기로 후각 세포를 자극하며 그저 우리의 망막을 겉도는 정도가 아니라 온몸을 파고 든다. 부드럽게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그 향기는 우리의 온몸을 휘감고 돌아가며, 그러면 마치 향기의 욕조에 몸을 담근채 노근하게 그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느낌이다.
해마다 그렇게 초록색 이파리로 시작하여 빨간색의 장미로 퍼져나가고 밤마다 향기로 찾아드는 넝쿨장미가 있어 그것이 내게는 남다른 행복의 하나였다.
그런데 올해, 장미는 무슨 병이 들었는지 여름에 들어서는 초입에서 그 무성하던 잎을 모두 떨어뜨려 버렸다. 꽃이 지는 것이야 세월의 탓으로 돌리며 어느 정도 마음의 이해를 구할 수 있지만 가을이 오기도 전에 마주한 잎사귀를 모두 떨어뜨린 넝쿨장미와 그 가지의 앙상함은 마음을 매우 스산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러더니 10년만의 무더위라는 여름을 넘기고 난 어느 날 여기저기서 새잎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어코는 꽃까지 몇송이 피워올렸다.
아직 가지 끝에는 여름이 오기 전에 떨어지다 가지 끝에 걸린 잎사귀와 꽃의 잔해들이 그대로 걸려있다. 그 위에 초록의 이파리들이 새롭게 돋아 이제는 말라 비틀어진 죽은 잎들의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채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올해 넝쿨장미의 그 자리엔 죽음과 생이 함께 있다. 그 생은 알고 보면 무슨 병인가를 얻었을 때 이파리를 모두 떨어뜨린 장미의 죽음이 키워낸 삶이다. 혹 삶이란 이렇게 죽음 속에서 잉태되는 것은 아닐까. 나를 버리는 것이 혹 나의 죽음이 아니라 나의 삶으로 새롭게 고개를 드는 것은 아닐까. 오늘 장미 넝쿨 아래서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다. 내가 버려야 하는 것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Photo by Kim Dong Won
한창 때는 장미가 온통 집을 뒤덮어 버린다

4 thoughts on “장미의 죽음과 삶

  1. ….베란다에 있던 열대식물이 며칠째 조용하여 죽을줄 알고 버릴까를 고민한 적이 있었습니다…기다려보라는 어머니 말씀에 그냥 두었더니 마침내 모르는 어느 시간에 움이 트고 있는것을 보고 ..마음이 움찔했었습니다…..기다릴줄 모르는 무지의 몸뚱어리를 탄하며….

    1. 이사를 오는 바람에.. 이제는 오래전의 아득한 추억이 되어 버렸어요.
      지금은 아파트 베란다의 화분에서 이런저런 꽃들과 놀고 있습니다.
      저는 식물은 그냥 잡초도 좋아하는 편이라 거의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어요.

  2. 엮으셨군요. ^^

    동워니님 집 장미도 정말 대견스럽네요.
    저럴 때 죽은 줄 알고 뿌리 째 케버리는 사람들도 있던데…잘 기다리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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